본문 바로가기

본문

한국축구 뿌리부터 썩고 있는데 독일 이겼다고 취할 땐가

중앙선데이 2018.06.30 00:03 590호 18면 지면보기
축구계 쓴소리꾼 신문선 교수의 작심 비판
신문선

신문선

“독일전 승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축구가 뿌리부터 썩고 있다. 축구의 공정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한국축구는 망한다”
 
축구계의 대표적 쓴소리꾼인 신문선(60·사진) 명지대 기록정보과학 전문대학원 교수가 절규하듯 말했다. 세상을 놀라게 한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가 끝난 뒤, 학회 일정으로 제주도에 내려가 있는 신 교수와 두 차례 통화했다. 그는 “독일전 승리는 정말 자랑스럽다. 그러나 이 승리로 인해 한국축구가 환골탈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축구협회가 이 우산 속에 숨어버린다면 한국축구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후배들인 이영표·안정환·박지성 같은 방송사 해설위원들이 용기 있게 축구협회의 준비 부족과 난맥상을 지적해 줘서 고맙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의 힘으로 이번에야말로 축구협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축구 세계랭킹 1위 독일을 꺾었지만 16강 진출에는 실패한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표선수들이 29일 귀국했다. 인천국제공항에는 많은 팬들이 나와 선수들을 환영하고 격려했다. [뉴스1]

축구 세계랭킹 1위 독일을 꺾었지만 16강 진출에는 실패한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표선수들이 29일 귀국했다. 인천국제공항에는 많은 팬들이 나와 선수들을 환영하고 격려했다. [뉴스1]

러시아 월드컵은 실패한 대회인가.
“당연하다. 월드컵 본선에서 몇 위의 성적을 거둘 건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맞게 훈련 계획, 선수 선발, 전지훈련과 평가전, 상대 정보 수집 등을 해야 한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이 준비에 실패했다.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도 실패한 것이 스웨덴과의 1차전 무기력한 패배로 드러났다.”
 
신태용 감독의 책임이 가장 큰가.
“물론이다. 역대 월드컵에서 수비수를 이렇게 많이 데려간 적이 없었다. 그건 대표팀 수비의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반증이다. 퇴장·부상이나 되풀이되는 실수로 인한 불안 등에 대비해 예비인력을 데려가는 건데 1,2차전에서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또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이렇게 대표팀을 꽁꽁 숨긴 적이 없다. 4년 주기의 월드컵은 국내 축구산업 활성화의 좋은 기회인데 이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신태용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부터 잘못됐다. 외국인 후보를 포함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뽑았어야 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뒤 유럽 평가전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도쿄 동아시안컵에서 정예멤버가 뛰지 않은 일본을 4-1로 대파하고 우승했다. 거기에 취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축구에 대한 관심이 예전같지 않은데.
“월드컵이나 대표팀 경기에만 관심 갖는 사람을 ‘국뽕’이라고 욕한다. 그런데 그 국뽕마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A매치 시청률이나 관중 수 추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미 축구는 국내 스포츠 시장에서 야구에 한참 밀려 있다.”
 
왜 이렇게 됐나.
“한국에서 ‘축구’라는 스포츠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해졌다. 축구협회가 비리와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심판 비리와 매수, 승부조작 등으로 몇 사람이 죽었다. 학교축구 현장에서도 각종 비리와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 공정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한국축구는 망한다.”
 
현 정몽규 회장의 책임이 크나.
“1993년부터 시작해 범(汎) 현대가에서 회장(정몽준-조중연-정몽규)을 맡은 게 26년째다. 사람들은 축구협회를 ‘정가네 축협’이라고 부른다. 그 분들이 이룬 성과를 인정하지만 문화단체인 축구협회가 너무 오랜 기간 특정 세력에 의해 지배됐다. 그렇다고 이들이 협회에 사재를 내놓은 것도 아니다. 현대가 떠난다고 해서 한국축구가 쓰러지겠나. 이젠 바뀌어야 한다.”
 
 
사람 몇 명 바꾼다고 될 일 아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경기 끝에 예선탈락한 뒤 귀국한 대표팀을 향해 분노한 팬이 던진 엿이 날아드는 장면. [연합뉴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경기 끝에 예선탈락한 뒤 귀국한 대표팀을 향해 분노한 팬이 던진 엿이 날아드는 장면. [연합뉴스]

신 교수는 서울체고와 연세대를 졸업했고, 국가대표 수비수로도 뛰었다. 방송 해설위원과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축구계에 끊임 없이 쓴소리를 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논란이 된 스위스전 프라이의 골을 “오프사이드가 아니다”고 소신 발언했다가 SBS 해설위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선거에 단독 출마했으나 대의원 23명 중 5표만 얻어 낙선했다. 
 
축구협회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축구를 잘 아는 축구인이 협회를 맡아야 한다. 정몽규 회장은 2013년 선거 때 ‘1000억원이 안 되는 협회 예산을 3000억원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참패 때 ‘협회가 환골탈태하겠다’고 사과하며 홍명보 감독만 잘랐다. 이젠 그가 스스로 용퇴하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다. 독일에 이긴 ‘카잔대첩’과 별개로 축구협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람 몇 명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한국축구의 개혁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한국축구 사랑해 주세요’ ‘프로축구장에 와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캠페인을 했다. 그럼에도 프로축구 K리그는 점점 침체됐다. 지금 그런 소리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 지금 K리그는 일본·중국은 물론 중동과 동남아에도 밀리는 형국이다. 축구라는 콘텐트의 질을 높여야 하고, 축구에 드리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야 한다. 축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축구인이 나서야 한다. 이대로 시간을 더 끌면 한국축구는 분명히 망한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관련기사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