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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 ‘젖은 장작’ 말려야지 휘발유 뿌려서야

중앙선데이 2018.06.30 00:02 590호 23면 지면보기
부부의사가 쓰는 성의학의 정석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필자의 진료실을 찾은 30대 후반의 여성 S씨는 누가 봐도 대단한 미모다. 물론 깎아놓은 듯한 얼굴선이 흔히 보는 성형미인 특유의 인조미도 있긴 하지만, 남자들의 시선을 충분히 끌 만한 매력이 있었다.
 

상황성 발기부전 겪는 남성들
야동 볼 땐 팔팔, 본게임선 비실
배우자에게 성형 등 무리한 요구

더 강한 자극에 매달리면 더 악화
성기능 불안 원인 찾아 치료해야

“주변에서는요. 제가 성형수술에 환장한 것처럼 오해해요. 하지만 사실은 저희 남편이 성형중독입니다.”
 
그 말을 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S씨. 그는 왜 성형수술 문제를 성기능장애를 주로 보는 필자에게 얘기하는 걸까. 게다가 본인이 성형수술을 해놓고 남편이 성형중독이라니….
 
“저, 원래도 그리 외모가 빠지는 사람 아니었어요.”
 
S씨는 성형 전 자신의 사진을 필자에게 꺼내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원래도 상당한 자연미인이었던 S씨. 성형 전엔 아주 세련되고 고상함이 묻어났는데, 성형 후엔 무척 야한 이미지로 바뀌어 있었다. 필자의 시각엔 차라리 성형 전이 훨씬 매력적이었고 지금은 흔히 보는 야한 얼굴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S씨의 반복된 성형에는 실제로 남편이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아내가 성형욕구가 강했던 게 아니라 아내를 집요하게 설득해서 성형수술대에 계속 올린 것은 남편.
 
“제가 좀 눈이 높아서 말이죠. 아내는 좋은 사람인데, 저와는 안 맞으니 제가 흥분이 안돼서…. 제가 번 돈으로 성형해서 점점 예뻐지니 아내도 뭐, 나쁠 게 없잖습니까? 허허.”
 
자초지종인즉, 아내에게 성적으로 흥분이 잘 안된다며 남편은 이런저런 사진을 꺼내놓고, 코는 연예인 누구처럼 고쳐라, 눈매는 누가 매력적이라며 성형수술을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이다.
 
“얼굴만이 아니에요. 얼굴 성형 하고 나니, 가슴을 키우랍니다. 제가 C컵이었는데, 외국 여성처럼 D컵 이상이 되어야 흥분될 것 같다며 말이에요. 가슴 성형이 끝인 줄 알았는데 그 다음엔 종아리가 굵어서 흥분이 안된다며 또.”“내가 당신을 사랑하지만 늘 똑같은 아내와 흥분이 안되는데 어쩌겠어. 그래도 딴 데 눈 돌리고 바람 피우는 사람보다는 백 번 낫잖아?”
 
신체·심리적 긴장 탓에 성반응 무더져
 
필자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기 급급한 남편. 사실 남편은 발기부전을 겪고 있다. 발기부전에도 여러 형태가 있는데, 남편은 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자위하면 발기는 잘된다. 그런데 실제 아내와 성행위에서 발기가 되지 않는 것을 모두 아내의 외모 탓으로 돌린다. 또 속궁합이 안 맞다며 무고한 배우자에게 결별을 요구하거나, 요상한 시술을 요구해서 ‘네가 바뀌어야 잘될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강요하는 발기부전 남성도 제법 있다.
 
문제가 있는 남성 당사자들은 자위나 아침발기는 잘될 때가 있으니 자신의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 탓 저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발기부전의 또 다른 형태다. 자위 때는 큰 문제가 없고 특정 상황이나 상대에겐 안되는 경우를 ‘상황성 발기부전’이라 하는데, 주로 심리적인 이슈나 심리적 신체적 긴장으로 인해 적절한 성반응이 실제 성행위에서 제한되는 것이다.
 
“젖은 장작인데, 휘발유만 뿌리셨군요.”
 
뜬금없는 필자의 지적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남편. 그는 필자가 발기부전 남성에게 자주 거론하는 별명, 이른바 ‘젖은 장작’이다. 장작이 물에 젖어 불이 잘 붙질 못하는데, 장작을 말릴 생각은커녕 억지로 불을 지피려다보니 휘발유만 뿌린 꼴이다.
 
실제로 발기부전인 S씨 남편은 자신이 발기부전에 빠진 심신의 원인을 찾아 고쳐야 하는데, 원인치료는 내버려두고 아내가 성적으로 더 매력적이면 발기가 잘될 것이란 착각에 빠져서 아내에게 집요할 정도로 성형수술을 요구해왔다. S씨의 남편 외에도 소위 ‘젖은 장작’ 남편들은 성행위 때마다 흥분을 더 시키겠다고 야한 동영상을 틀어놓고 아예 아내의 얼굴은 외면한 채 화면 속의 야한 여자의 천박한 행위와 신체부위를 보면서 억지로 성행위를 하는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느낌이 잘 안 온다며, 아내가 잘 조이지 못해서 그렇다며 아내에게 성행위 내내 조여보라는 식의 엉뚱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젖은 장작 남성은 그나마 여성상위에서는 발기가 된다는 이유로 끝까지 여성 상위만 고집하기도 한다. 아내가 신혼여행에서 인생의 첫 성경험을 하는데도, 남편은 주도하기는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는다. 아직 성경험이 제대로 없어서 부끄럽고 수줍은 아내의 입장은 아랑곳없이 남편은 똑바로 누운 채 첫경험의 아내가 마치 성매매 여성처럼 적극적으로 모든 걸 다 해결해주길 바라는 식이다.
 
 
자신의 문제 인정해야 ‘회춘’ 길 보여
 
보통 ‘젖은 장작’ 남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내 탓으로 돌리거나 강한 자극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구박한다. 결국 뻔한 곳에서 인공발기나 도와주는 발기약을 처방받아 살 뿐 자신의 원인문제를 잘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병원을 찾아서 제대로 원인치료를 받을 의지가 없는 경우도 많다. 결국엔 아내의 설득에 전문가를 찾아도 처음엔 적반하장 당당하다가 자신의 성기능 불안정이 전문가를 통해 진단되고 실제 원인을 찾는 진료과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다행히 S씨 남편은 진료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조금씩 인정하게 됐다. 필자의 치료를 잘 받아 지금은 자연스런 발기반응을 되찾았고, 더 이상 아내에게 성형수술 요구를 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한국엔 성기능장애를 상세히 배우지 못한 채 성문제를 보는 자칭 전문가들이 많다보니 전문가란 사람조차 이런 남편의 내막을 모르는 경우가 잦다. 그래도 남편이 바람피지 않고, 성형수술을 요구하는 게 다행인 줄 알아라고 조언했던 곳에서 S씨는 마음의 상처를 심하게 받은 적도 있다고 토로한다.
 
성기능의 저하에 자꾸 상대 여성 매력탓만 하거나, 더 낫거나 젊은 여성을 만나면 회춘할 것이라 여기는가. 또 평범한 자극에 반응이 없어서 강한 자극에 급급하거나, 아내의 얼굴은 외면한 채 성행위 때마다 야동을 틀어놓고 그 야한 영상만 쳐다보고 있는가. 아니면 자위 때는 그마나 괜찮은데 실제 성행위에서 반응이 흔들리고 있는가. 혹시 ‘젖은 장작’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상대 탓만 하지말고 자신의 문제를 세밀히 훑어볼 필요가 있다.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가
서울대 의대 출신 전문의(醫) 부부. 한국인 의사 최초로 미국 킨제이 성 연구소와 보스턴·하버드 의대에서 정신과·비뇨기과·산부인과 등 성(性) 관련 분야를 두루 연수, 통합적인 성의학 클리닉·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강 박사는 2005년 국제학회에서 발간한 여성 성의학 교과서의 공동집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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