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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안개 속의 북 비핵화, 안보 무장해제 조짐 섣부르다

중앙일보 2018.06.29 00:14 종합 26면 지면보기
특별기고 │ 김희상
시간이 흐를수록 안보전문가로서 더욱 불안한 느낌이다. 북한 비핵화 추진이 점점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우리 안보 상황은 위기로 가는 듯하기 때문이다. 6.12 미·북 정상회담을 한 지 보름이 지나도록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정상회담에 이어 곧바로 북한에 가서 비핵화 실무협상에 나선다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비핵화 일정을 못 박지 않겠다”고 뒷걸음치는 모양새다. 그런 가운데 한·미는 각종 연합훈련을 중단 또는 연기해 연합방위체제의 약화까지 우려된다.

미, 북한 비핵화 시기 불특정
김정은, 동북아 핵심인물로

북핵 폐기 더 어렵게 됐다
핵은 북한의 적화통일 만능열쇠

연합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 우려
군, 킬체인 등 3축체제 추진 보류

 
 
지난 두 달간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미북 정상회담이 연이어 이뤄지면서 한반도 상공의 어두운 핵 그림자가 일순간 사라질 듯 보였다. 그러나 환호와 기대 속에 열린 파티의 뒷장은 허전하다. 위기에 빠진 북한 김정은 체제를 구해내는 대신 자칫 대한민국의 미래가 위기로 바뀌는 전략적 실수가 될까 우려된다. 우리의 생사를 가름할 북한 핵무기가 완성단계에 들어섰으니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때였다. 그러나 이미 20여년간 실패해온 게 북한과의 핵 협상이다. 더욱이 예측하기 어려운 미·북 지도자들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차이가 너무 크고, 전문가들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상황이다. 이런 회담의 성공에 한국의 미래를 거는 것이 어떻게 두렵지 않았겠는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핵 폐기 더 어려워졌다=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동분서주하면서 새로운 지도자로 거듭났다. 그는 참혹한 인권 유린 등으로 악명 높은 깡패국가(Rogue State)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군’(미 상원 군사위 표현)에서 ‘재능있는 지도자’(트럼프 대통령)로 변했다. 그는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도 예의를 다해 정중히 모시는 존재가 됐다. 김 위원장은 어느새 동북아를 좌우하는 주역이 되고, 한국은 종속변수가 돼버린 모양새다.
 
그런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입으로 ‘북한 비핵화’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목적으로 주장해왔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비핵화에 노력’한다는 합의를 얻어냈다. 반면 미국이 줄기차게 강조하던 CVID(완전하게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 비핵화)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북한 비핵화 일정도 ‘1년 반→2년 반→시기 불특정’으로 오리무중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김 위원장이 완전한 핵 폐기를 약속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북핵 폐기 전까지는 최대압박을 지속하고, 폐기하면 북한에 대규모 경제보상과 체제 안전을 보장할 테니 북한도 폐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아무리 봐도 북한이 핵을 쉽게 폐기할 것 같지 않다. 이유야 많지만 무엇보다도 북한으로서는 한반도 적화통일 외엔 체제위기를 극복할 길이 별로 없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가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본질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화통일의 ‘만능열쇠’라는 핵미사일을 어떻게 폐기하겠는가. 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만 폐기하면 한국처럼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했지만, 북한이 경제를 회생시키려면 체제를 바꾸고 사회를 개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김 위원장이 체제 위기 또는 붕괴의 위험을 안고 개방과 체제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의 실효성도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  ‘북한의 친미화’ 또는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을 통한 대북 개입 확대’ 등 내밀한 구두 약속 가능성도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문서화된 합의문도 지키지 않았던 북한이 구두 약속에 무게를 둘까 싶다. 북·중동맹도 무시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미·북회담 직후 시진핑 주석을 찾아가 협력관계를 굳혔다. 결국 그는 미국과의 비핵화 합의를 지키는 척 하면서 과거처럼 기만할 가능성도 있다. 그때서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속았음을 깨닫고 ‘화염과 분노’를 다시 찾을 수도 있다.
 
◆한미동맹 태세는 이상 없나=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느닷없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했다. 또 당장은 아니라면서도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해 큰 충격을 줬다. 시진핑 주석이 연합훈련 중단을 위원장에게 교사했다는 말도 있지만 북·중 모두 기대하지 못한 엄청난 선물이었다. 사실 훈련중단 그 자체만도 치명적이다. 훈련을 그만두면 동맹군의 결속력과 유사시 대응 능력의 약화된다. 장기화될 땐 주한미군 위상 약화와 자연스러운 감축·철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물론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는 못 할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그러나 지금은 펜타곤에선 주한미군을 주일미군에 통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고 한다. 실은 남북이 판문점 선언에서 추진키로 한 종전선언은 유엔사의 존속 명분을 없애고, 평화협정은 주한미군이 존재할 근거를 흔든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서두르는 전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되면 한미연합사가 자동 해체된다. 한미동맹의 핵심 수단인 연합사가 해체되면 한미동맹 자체는 껍데기만 남고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정부가 의도했든 아니든 연합훈련 중단과 특히 전작권 전환은 ‘연합사 해체→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와해’로 이어지는 통로의 문을 여는 단서가 될 것이다. 이런 문제가 우려돼 미 상원 군사위는 지난 26일 주한미군은 북 비핵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법안을 발의했다.
 
◆안보태세 서둘러 재정비해야=과정이 어찌 됐든 연합사가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 북한의 핵 등 대량살상무기도 여전히 치명적이지만 더 큰 우려는 따로 있다. 한미동맹이 해체되고 주한미군까지 철수하면 겨우 유지되던 한반도 전략균형은 일시에 무너진다. 한미동맹이 와해된 한반도는 저절로 중국의 배타적 영향권에 들게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 군의 병력 감축과 복무 기간 단축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재래식 전력의 특성상 병력 감축은 군사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훈련은 줄이고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할 ‘3축(킬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체계’같은 전력 혁신도 유보시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 안보태세의 근간이 통째로 흔들릴까 우려된다. 그런데도 ‘평화’를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참된 평화는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 안보태세는 물론 연합사로 연결된 한미동맹체제를 서둘러 재정비해야 때다.
 
◆김희상
노무현 대통령의 국방보좌관을 지낸 대표적인 안보전략가. 육사 24기 출신으로 수도군단장과 국방대 총장을 거쳤다. 『중동전쟁』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예비역 육군 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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