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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에도 아이들 생각한 아내 … 그 꿈 전하는 인형 배달부

중앙일보 2018.06.27 00:27 종합 23면 지면보기
박성일 장금신아트워크 대표가 우체부 고마 인형을 안고 웃고 있다. [사진 컴패션]

박성일 장금신아트워크 대표가 우체부 고마 인형을 안고 웃고 있다. [사진 컴패션]

북극에 사는 곰 ‘고마’의 직업은 우체부다. 아이들의 잃어버린 인형을 집집마다 찾아다주는 게 고마의 일이다. 고마가 배달해준 인형 하나 하나는 아이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다.
 

수호랑·반다비 제작한 박성일 대표
어린이들 보낸 그림대로 인형 제작
9월에는 아프리카 꼬마들 찾아가

우체부 고마는 박성일(51) 장금신아트워크 대표가 만든 그의 분신 곰인형이다. 20년 넘게 인형 만드는 일을 해온 박 대표는 아이들에게 그런 인형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릴 땐 친구가 돼 주고 어른이 돼서도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하는 인형을 말이다.
 
지난 18일 박 대표를 서울 한남동 컴패션 사옥에서 만났다. 박 대표는 지난 평창올림픽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스코트 수호랑·반다비 인형을 제작한 주역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지난해 FIFA U-20 월드컵 마스코트 인형들도 그의 회사가 만든 작품이었다. 그렇게 쉴 틈 없이 달려왔지만, 본업과는 별개로 그가 매년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보낸 그림 편지를 인형으로 구현해 선물하는 ‘나만의 인형’ 기부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장금신아트워크의 설립자이자 박 대표의 부인 장금신씨는 암 투병 중이었다. 장씨가 입원해 있던 국립암센터 8층 암병동 바로 윗층이 어린이병동이었다. “그동안 인형으로 먹고 살았으니까 나 병 다 낫고 우리 둘 다 60 넘으면 정말 필요한 아이들에게 인형 선물해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어린이병동의 아이들을 보며 나만의 인형 프로젝트를 제일 처음 제안한 건 장씨였다.
 
자신의 그림과 똑같이 만들어진 인형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아이. [사진 컴패션]

자신의 그림과 똑같이 만들어진 인형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아이. [사진 컴패션]

이후 암센터 어린이병동 학부모회를 통해 아이들의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그림편지’를 받아 그 그림과 꼭 닮은 인형 40여 개를 만들었다. 박 대표는 “아내와 병실에 앉아 1년 내내 인형을 만들어 그해 크리스마스가 임박했을 때쯤 인형을 아이 부모님들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인형을 산타 할아버지가 준 거라 믿었다. 부부가 그걸 원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며 부모들이 병실에 들러 고마움을 전할 때마다 부부는 큰 행복감을 느꼈다. 앞으로도 꾸준히 아이들을 위한 인형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재작년 11월 장씨는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박 대표는 나만의 인형 프로젝트를 꿋꿋이 이어갔다. 이제 어린이병동의 아이들 뿐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가끔 회사에 그림편지를 보내오는 아이들까지 모두 챙기고 있다. 박 대표는 “인형을 보낸 아동의 부모들에게는 ‘제가 아니라 우체부 고마가 주는 거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회사 직원들 모두 힘을 보태 지난해에만 300개가 넘는 인형이 주인을 만났다.
 
오는 9월 박 대표는 우체부 고마와 함께 탄자니아 북부에 있는 킬리만자로로 간다. 탄자니아는 박 대표가 올해부터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후원하는 낸시(5)가 사는 곳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6월 또 다른 후원 아동 굴리(11)에게 인형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그는 “아내와 사별한 뒤 5년 간 후원해 온 굴리에게 사진과 그림편지를 받았다. 사진 속 아이는 어느덧 훌쩍 커 있었고 왠지 그 모습에 눈물이 펑펑 났다. 이후 컴패션에 양해를 구해 굴리가 그린 인형을 보냈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고마 인형 500개를 현지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박 대표는 나이가 들어서도 ‘회사 한구석에서 인형 만들고 있는 사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다음달 열리는 캐릭터 페어에서 박 대표는 우체부 고마를 소개하면서 인형으로 제작할 아이들의 그림을 받을 예정이다. 모두 선물용이다. 나만의 인형 프로젝트로 제작한 인형들은 앞으로도 판매용으로는 제작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에게 ‘왜 그렇게까지 이 프로젝트를 하는 건지’ 물었다. “첫째는 아내와의 약속, 둘째는 내 또래 친구들이 취미로 골프나 등산을 좋아하듯 난 이 일이 좋고 이걸 할 때 제일 행복하기 때문이다”는 담백한 답이 돌아왔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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