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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논두렁 시계 보도 지시 … 노무현, 시계 버렸다 진술”

중앙일보 2018.06.26 01:16 종합 3면 지면보기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중앙포토]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중앙포토]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60·사법연수원 14기) 전 대검 중수부장이 25일 당시 불거졌던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2점’(2억원 상당) 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인규 당시 중수부장 주장
“노, 박연차에게서 시계 받았다 시인
보도 나오자 권여사가 버렸다 말해

원, 언론 흘려 망신 주자 했지만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이 거절”

미국에 체류 중인 그는 이날 서울중앙지검 기자단에 e메일로 A4 용지 4장 분량의 입장문을 보내 “노 전 대통령 서거 직전 불거진 이른바 ‘피아제 시계’ 보도는 원세훈 전 원장 재임 시절 국가정보원이 기획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원세훈 전 원장이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급 시계를 받은 사실을 언론에 흘려 달라’고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이는 지난해 국정원 개혁위원회 산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팀(TFT)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약 2주 앞둔 2009년 4월 14일 강모 국장 등 국정원 직원 두 명이 대검 중수부장실에 찾아온 사실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당시 국정원 인사들이 ‘원세훈 원장의 뜻’이라고 전제한 뒤 “부정부패 척결이 좌파 결집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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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정원 직원들의 방문 이후 노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고 설명했다. 2009년 4월 22일 KBS는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피아제 시계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전 중수부장은 “당시 보도 과정에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30일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올라와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미국 버지니아의 한 식당에서 포착됐다. [미시유에스에이(MissyUSA) 캡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미국 버지니아의 한 식당에서 포착됐다. [미시유에스에이(MissyUSA) 캡처]

노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 약 2주 뒤인 2009년 5월 13일에는 SBS가 “노 전 대통령 측이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 열흘 뒤인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입장문에서 이 전 중수부장은 “국정원의 그간 행태와 SBS 보도 내용, 원 전 원장과 SBS의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 볼 때 국정원이 배후에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적었다. SBS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으로 SBS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한 점에 대해 이 전 중수부장에게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자신이 ‘논두렁 시계’ 보도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전면 부인했지만 이 전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 부부의 고액 시계 수수 혐의 자체는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팩트’라고 주장했다. 2009년 박연차 전 회장의 진술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 역시 검찰 조사에서 “언론에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된 이후 권양숙 여사가 밖에 내다 버렸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전 중수부장에 따르면 박연차 전 회장은 검찰에서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아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원에 구매해 형 노건평씨를 통해 전달했다. 이듬해 봄 청와대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 부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관련 내용이 담긴 조서에 날인까지 했으며 해당 조서는 영구보존 형태로 검찰에 남아 있다”며 “1억원 이상의 고가 시계를 받는 행위는 뇌물수수죄로 기소돼 유죄로 인정될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고 적었다. 9년 전 수사를 둘러싼 이 전 중수부장의 주장에 대해 검찰은 이날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 전 중수부장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인 지난해 9월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 19일 한 진보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가족과 함께 식사 중인 이 전 중수부장의 사진을 공개하자 그를 둘러싼 책임론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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