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도·강간·절도 10명이 한 방에 … 범죄학교 된 교도소

중앙일보 2018.06.26 01:13 종합 4면 지면보기
매력 코리아 │ 2018 교도소 실태 보고서 ②
한국의 교도소·구치소에선 혼거가 일상화돼 있다. 과밀 수용이 가장 심각한 대전교도소는 재소자 6명을 정원 3명인 방(10.08㎡)에 몰아넣었다. [특별취재팀]

한국의 교도소·구치소에선 혼거가 일상화돼 있다. 과밀 수용이 가장 심각한 대전교도소는 재소자 6명을 정원 3명인 방(10.08㎡)에 몰아넣었다. [특별취재팀]

한국의 교도소·구치소는 심각한 정원 초과 상태다. 온갖 범죄자가 한 방에 뒤섞여 지낸다. 전국 교도소 53곳 중 1인 1실 독거 수용 원칙을 지키는 곳은 없다. 혼거가 일상화된 교도소는 역설적이게도 ‘크라임 스쿨(범죄 학교)’이 된다. 재소자 수에 비해 교정시설이 부족하거나 노후화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국내 교도소·구치소 중 절반(25곳, 47%)은 40~50년 된 노후 건축물이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대한민국 교도소 실태 보고서’ 두 번째로 낡은 수용시설, 무분별한 혼거의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봤다.
  

전국 53개 교정시설 ‘콩나물 수용’
범죄 수법 서로 배우며 ‘악풍 감염’
좀도둑이 출소 뒤 조직 절도범으로

1인 1실 독거 원칙 지키는 곳 전무
정원 3명 10.08㎡ 방에 6명 수용
불쾌지수 높은 여름철 싸움 잦아

박찬우(38·가명)씨에게 교도소는 익숙한 공간이다. 원주교도소 접견실에서 지난달 12일 만난 그는 “이번이 여섯 번째 수감”이라고 말했다. 첫 범죄를 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방학 때였다. 친구들 여러 명과 어울려 놀다 빈 상가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 나왔다. 액수는 크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고 먹는 데 쓸 정도면 족했다. 그러다 성인이 된 뒤 비슷한 상가털이를 하다 붙잡혔다. 하지만 소년범 전과가 있는 데다 범행 당시 상가 셔터 자물쇠를 끊으려고 절단기를 사용한 게 문제였다. 특수절도죄가 적용돼 징역 1년을 살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잡범’ 수준이었다. 그러다 두 번째 수감 생활을 하던 공주교도소에서 전환기를 맞았다. 고추장 공장에서 교도 작업을 하던 동료 7명과 한방을 쓸 때였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절도·강도 전과자였다. 한 사람을 찍고 수개월간 생활 패턴을 지켜보다가 범죄를 실행하는 설계형 강도, 동료들과 역할을 나눠 고급 주택을 털었던 빈집털이단 일원, 폐쇄회로TV(CCTV) 없는 골목길만 노리는 정보형 절도범 등이 함께 먹고 자고 일했다. 돈을 훔치거나 빼앗는 방법은 다양했다. 이른바 ‘범죄 스킬’은 그렇게 공유됐다.
 
그러던 중 ‘감방 동료’ 네 명이 의기투합했다. 믿고 의지하던 맏형이 먼저 출소한 뒤 편지로 안부를 묻고 접견을 해왔다. 마지막 동료의 출소일에 맞춰 서로의 연락처를 공유했고 합숙할 주소가 전달됐다. 며칠 뒤 네 명은 천안에 모였다. 미리 물색한 고급 아파트 주변 약도를 펼쳤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에서처럼 각자 역할을 나눴다. 경험 많은 형님 2명이 ‘빠루’(노루발장도리)와 절단기를 사용하는 ‘침투조’, 가장 어린 막내는 ‘운전’, 박씨는 망을 보기로 했다. 계획된 조직 범행은 잘 들키지 않았다. 1년간 89곳을 털며 3억원을 챙겼다. 박씨는 “교도소에선 동료들끼리 합이 맞으면 서로의 범죄 수법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스킬을 전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박씨처럼 절도로 시작해 절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청송교도소(경북북부제1교도소)에 수감된 김모(37)씨는 16년 새 강력범죄자로 변했다. 그는 중학교 때만 해도 친구들과 어울리다 동네 오토바이를 훔쳐 타는 전형적인 소년범이었다. 하지만 반복된 절도와 수감 생활로 사람이 변했다. 6년 전인 2012년 19번째 범행 때 흉기를 갖고 들어간 연립주택에서 돈을 훔치면서 30대 여성을 강간했다. 김씨를 수사한 경찰은 “범죄 이력을 보면 입소와 출소를 반복할 때마다 범죄 스케일이 커진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국 교도소 53곳에는 박씨와 김씨 같이 교도소에서 범죄를 배워 나오는 이가 적지 않다. ‘진화형 범죄자’다. 교정·교화를 통해 새 삶을 찾아줘야 할 교도소가 도리어 새로운 범죄를 모의하고 결행하는 범죄 학교로 변질된 셈이다. 윤옥경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재소자들을 관리 편의를 위해 혼거시키는 것이 가장 큰 위험 요소”라며 “형집행법에서 1인 1실 독거 수용을 원칙으로 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교도관들도 실정을 잘 알고 있다. 원주교도소의 한 보안과 직원은 “우리끼린 재소자가 새 범죄 수법을 배워 나가는 걸 ‘악풍감염’이라고 부른다. 나쁜 바람에 감염돼 새로운 범죄자가 된다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혼거를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국내 교도소 53곳의 평균 수용률은 114.6%에 달한다. 100명이 들어갈 공간에 14.6명이 더 들어간 셈이다. 수용시설의 정원에 맞게 운영 중인 데는 단 두 곳에 불과하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은 법무부에 요청해 지난 한 달간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 12곳을 방문해 과밀로 인한 혼거 실태를 점검했다. 과밀 수용(136.1%)이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대전교도소는 정원 3명인 방(10.08㎡)에 6명이 혼거하고 있었다. 거실 문 앞에는 수용자가 늘면 8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다고 적어 놨다. 과밀 수용이 두 번째(122.3%)로 심한 대구교도소에선 10명이 한 방(17.09㎡)을 쓰고 있었다. 이 방에는 공무집행방해로 징역 8개월을 받고 수감된 초범 A씨, 강도죄 징역 4년의 초범 B씨, 강간죄 징역 8년의 전과 7범 C씨, 절도로 징역 2년을 받은 전과 6범 D씨 등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이 한 데 묶인 이유는 사고 방지를 위한 경비 편의를 우선해서다. 이 방 철문 위에는 ‘운영 작업(사동 청소 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교도소의 한 보안과 직원은 “작업별로 묶어야 교도관이 한번에 개방·폐방을 할 수 있다. 재소자가 많아 이렇게 관리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일상화된 혼거 때문에 재소자끼리의 사건·사고도 갈수록 늘고 있다. 대구교도소의 경우 지난해 교도소 내 사고 건수가 1658건에 달했다. 그중 징벌로 이어진 게 1283건이었다. 최근 3년 새 43%가 증가했다고 한다. 대구교도소 관계자는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철이면 서로 다투다 폭행으로 이어지는 사고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형집행법이 원칙대로 적용되면 혼거 수용 자체는 사실 불법”이라며 “현실을 반영한 하위 조항 몇 개로 합법 상황을 만들었는데 교도소의 본질적인 교정·교화 기능을 심각하게 저하시키는 독소조항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 재소자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채 출소시키면 결국 ‘안전 사회’가 위협받는다”면서 “법이 정한 대로 교도소를 500인 이하의 소규모 시설로 짓고 낡은 교도소는 현대화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 특별취재팀=윤호진·윤정민·하준호 기자 yoongoo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