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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인신공격 ‘놀이터’된 청와대 게시판

중앙일보 2018.06.25 01:40 종합 29면 지면보기
최규진 사회부 기자

최규진 사회부 기자

“장현수 선수와 가족까지 대한민국에서 추방해 주세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멕시코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2차전 경기’에서 1대 2로 패배한 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하나다. 일부 축구 팬들은 아쉬운 패배의 화를 선수들에 대한 극렬한 비난으로 풀려는 듯했다. 이 경기에서 핸들링 반칙으로 페널티킥 선취점을 내준 FC도쿄 소속 장 선수가 표적이 됐다. 현재까지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그를 향한 인신공격성 청원이 300여 개나 등장했다.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인신공격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의 ‘왕따 논란’도 비슷했다. 김보름 선수의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에는 60만 명이 동참했다. 문체부와 빙상연맹이 조사를 벌여 고의성이 없었다고 발표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석 달 동안 ‘왕따 가해자’로 몰린 김 선수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에는 전 국민적인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만 선수의 부진이나 실수 등을 빌미로 한 ‘온라인 테러’가 극성이다. 최근 축구 대표팀의 일부 선수와 가족들은 도 넘은 비난이 쏟아지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계정을 닫기까지 했다. 한 미디어 학자는 “우리나라는 국가대표라는 이유로 일종의 ‘사회적 살인’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지만, 그 폐해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이 드물다”고 지적했다.
 
특히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그같은 마녀사냥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최근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은 “국민청원 게시판이 ‘놀이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하지만 건전한 여론 형성의 놀이터라면 모르지만 오염된 인신공격의 놀이터라면 완전히 다르다. 취업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성인남녀 3516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6.3%가 국민청원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단순한 분노의 배출창구 가능성(17.8%), 특정 개인에 대한 지나친 공격 우려(17.5%)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차제에 청와대가 무차별적 인신공격성 글을 걸러낼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태극 전사에 선발되는 건 영광이다. 월드컵 경기에서 졌다고 졸지에 고통으로 변질돼서는 안된다. 멕시코와의 경기 직후 장현수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홀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누구보다도 응원이 필요할 때다.
 
최규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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