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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의 퍼스펙티브] 혁신 가로막는 네이버 플랫폼, 근본적으로 바꿔야

중앙일보 2018.06.25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드루킹의 본질
드루킹 특검이 출범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9일간 노숙 단식 투쟁하며 요구했던 바로 그 특검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막상 특검이 출범하니 세간에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치권도, 언론도, 시민도 덤덤히 지켜보는 수준이다. 왜 그럴까. 필자는 드루킹 사건의 프레임이 처음부터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서의 매크로 조작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문제인 것은 맞는데, 핵심이 아닌 지엽적 문제가 너무 강조되었고, 그 결과 해법도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네이버가 뉴스 인링크 유지하며
게시판과 댓글이라는
15년 전 플랫폼에 집착하는 동안
드루킹은 15년 전 기술로 파고들어

네이버의 댓글 조작 방지 대책은
낚시용 기사 더 활개치게 하고
혁신생태계 자원 없앨 수 있어

매크로 조작 의존하는 후진 정치는
데이터 선거로 선진화하고
구닥다리 네이버 플랫폼 혁신해야
드루킹 사건의 재발 막는다

 
사건 초기에 가장 큰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단어 세 개를 꼽으라면 단연 드루킹·킹크랩·김경수이다. 먼저 킹크랩부터 살펴보자. 첩보 영화에 등장하는 최첨단 사이버 무기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컴퓨터가 가장 잘하는 반복 작업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로그인·로그아웃을 반복하고, 공감·비공감 버튼을 누르며, 같은 글을 도배하는 게 다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매크로 프로그램도 여럿이다. 기술 수준으로 치면 대략 15년 전 기술이다. 아마 드루킹 일당은 킹크랩 개발하느라 들인 노력보다 원시적 기술로 인해 요구되었을 수많은 수작업 때문에 들인 노동이 훨씬 많을 것이다.
 
킹크랩은 15년 전 기술. 드루킹은 망상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다음으로 드루킹이다. 그는 자신이 원조 친노라고 주장하는데, 2002년의 드루킹은 신념의 인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드루킹은 망상의 인간으로 보인다. 그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포장했던 본인의 정체성은 어느 것 하나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원조 친노라고 했지만 친문에서 반문으로 돌아서고 자유한국당에 접근하기까지 했다. 여론 조작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가 쓴 기술은 15년 전 낡은 기술이었다.
 
투자 전문가로 자처했던 그가 8년 전 쓴 투자 관련 서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서평이 가득하다. 게다가 아내에 대한 성폭행 혐의로 별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그의 말을 신뢰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스스로 대선의 1등 공신이라며 일본 대사 자리를 요구했다. 과대망상이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는 행적들이다.
 
그다음 키워드는 김경수이다. 드루킹 사건 연루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남도지사에 당선되었고 잠재적 대선 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경남도민들이 이 사건을 정치적·도덕적 타격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가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연루되었는지는 예단을 삼가고 특검의 수사 결과를 기다려 볼 일이다.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만에 하나 당선을 무효화시킬 정도라는 판단이 나온다면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것이다.
 
선거를 치러본 정치인이라면 다양한 종류의 여론 조작에 그 정도는 연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영향력이 큰 정치인일수록, 여론 조작이 판을 치던 시절 여당에 몸담았던 정치인일수록 그 가능성은 크다. 과거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매크로 조작에 가담했던 복수 증인들의 제보가 쌓여있는 상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군·경찰 등 국가기관을 시켜 대대적 여론조작을 했던 원죄가 이미 밝혀져 처벌됐거나 진행 중이다. 단식 투쟁으로 얻은 특검이 부메랑이 될까 두려워 자유한국당이 입을 다물고 있는 속사정이다.
 
판도라의 상자 열릴 것인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유탄이 어디로 튈지, 얼마나 많은 정치인이 다치게 될지 알 수 없다. 반면 김경수 당선자의 연루 의혹이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준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온다면 이 부분은 조용히 마무리될 것이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도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보다는 사건이 조용히 마무리되고 정권 실세라서 면죄부를 받았다고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활용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 속마음일 것이다.
 
정리해 보면 초미의 관심이었던 세 개의 키워드는 어느 것 하나 별 의미가 없다. 킹크랩과 드루킹은 낡은 기술과 망상가에 불과하다. 김경수라는 키워드는 김 당선자 한 사람에게 국한되는 잣대가 아니라 대다수의 정치인이 자유로울 수 없는 잣대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칼날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단두대에 함께 목을 들이밀 정치인은 여당에는 물론 야당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네이버이다. 드루킹 사건으로 졸지에 죄인이 된 네이버는 분위기상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억울한 게 많을 것이다. 사건 초기 네이버를 향했던 칼날은 드루킹의 매크로 조작을 알면서도 묵인했느냐는 것이 핵심이었다. 매크로를 이용한 댓글 조작은 소위 ‘비정상 트래픽’으로 잡힌다. 문제는 드루킹 말고도 비정상 트래픽은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주로 광고나 홍보 목적이다. 이 수많은 비정상 트래픽은 네이버가 가진 탐지 시스템에 당연히 잡혔을 터이니 네이버는 적어도 기계적인 의미에서는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비정상 트래픽 중 유독 드루킹에만 주목해서 기계적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 의미에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아 보인다.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되니 문제인데, 당시에는 문제가 될 줄 몰랐던 수많은 비정상 트래픽 중 하나였다면 왜 하필 거기에만 주목하겠는가. 이 부분은 야당의 과도한 정치적 프레임 설정에 네이버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측면이 크다.
 
15년 전 플랫폼에 15년 전 기술 파고들어
 
다음으로 문제가 된 것은 소위 인링크 방식이다. 네이버는 뉴스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뉴스를 편집하고 언론사처럼 기능할 수 있게 해주는 인링크 방식을 고집해왔다. 이것은 종종 가두리 양식장이라 비판받는 한국형 포털의 플랫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네이버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어로 된 인터넷 콘텐츠 자체가 많지 않던 시절이었음을 고려하면 네이버와 구글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구글은 이미 존재하는 풍부한 콘텐츠에 연결만 해주면 됐지만 한국의 포털은 스스로 한국어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형 포털의 가두리 양식장은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 이런 노력이 우리의 인터넷 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인정해주어야 한다.
 
문제는 가두리 양식장이 일단 만들어지고 나니 포털 입장에서는 포기하기 아까운 수익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포털에 한 번 들어온 방문자들이 사이트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안에 머물게 하는 게 돈과 영향력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돈과 영향력은 네이버를 업계의 절대 강자로 우뚝 서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혁신과 성장의 한계라는 대가를 요구했다. 한국어로 된 가두리 양식장은 5000만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그 엄연한 한계 속에서 성장을 추구하다 보니 마치 골목길 떡볶이집까지 넘보는 대기업처럼 혁신 없이 성장을 쥐어짜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네이버가 인링크를 유지하면서 게시판과 댓글이라는 15년 전 플랫폼에 집착하는 동안 드루킹은 15년 전 기술을 가지고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네이버 대책으로 혁신생태계 고사 우려
 
정치권의 공세에 떠밀려 네이버가 내놓은 대책은 솔직히 우려스럽다. 여러 대책을 제시했지만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웃링크로 전환하되 원하는 언론사에 한해 인링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인링크 유지를 원하는 언론사는 대체로 네이버가 주는 전재료에 목을 매야 하는 소규모 언론사일 가능성이 높다. 아웃링크 전환 이후 네이버 뉴스가 더는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여전히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한다면 선정적인 낚시용 기사만 양산하는 영세 언론사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 한국 언론의 수준은 더 낮아질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댓글의 수와 공감·비공감의 수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이 더 우려스럽다. 멱함수분포(power-law distribution)라는 게 있다. 온라인상의 데이터는 대부분 이 분포를 따른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분포는 정규분포이다. 평균값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고 그보다 크거나 작아질수록 해당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지는 분포이다.
 
멱함수분포는 이와 전혀 다르다. 아주 작은 값을 가지는 수많은 사람과 극단적으로 큰 값을 가지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분포이다. 소인국인 릴리풋 왕국에 표류한 걸리버를 상상하면 된다. 온라인의 역동성은 상당 부분 멱함수분포에서 나온다.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온라인 세상을 선도하는 출발점이다.
 
또 멱함수분포를 따르는 데이터는 수많은 지식 스타트업들이 함께 활용해서 혁신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댓글 수를 제한하는 대책은 걸리버를 반 토막 내고 멱함수 분포를 없앤다. 드루킹 막겠다고 혁신기업 생태계의 자원을 없애는 꼴이다.
 
지금대로라면 드루킹 사건의 결말은 허망해질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제대로 된 데이터 선거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매크로 조작에나 의존하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 그리고 당장 돈이 되기 때문에 15년 전 플랫폼을 혁신하지 않았던 기업의 경로의존성에 있다. 그 빈틈을 망상가가 파고들었다. 그렇다면 해법은 정치의 선진화와 기업의 혁신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 혁신기업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치는 선진화되지 않을 것이고 기업은 혁신하지 않을 것이다. 망상가는 처벌받고 음모론은 남을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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