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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金) 시대 역사 속으로…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

중앙일보 2018.06.23 10:08
김종필 전 국무총리. [중앙포토]

김종필 전 국무총리. [중앙포토]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三金)시대’를 이끌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이로써 이날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92세.  
 
김 전 총리는 이날 아침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김 전 총리는 지난 한 달 동안 노쇠현상으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지난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ㆍ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지난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ㆍ8ㆍ9ㆍ10ㆍ13ㆍ14ㆍ15ㆍ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3김 시대’의 한 축인 김 전 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ㆍ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같은 해 제1대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1963년 공화당 국회의원이 됐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컵 아시아 축구대회 선수입장식에서 박수를 보내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연합뉴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컵 아시아 축구대회 선수입장식에서 박수를 보내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연합뉴스]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증권파동을 비롯한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휘말리면서 63년 2월 ‘자의반 타의반’ 첫 외유를 떠난 데 이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의 주역으로서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종필ㆍ오히라 메모’ 파동으로 6ㆍ3사태가 일어나자 1964년 또다시 2차 외유길에 올랐다.
 
이후 민주공화당 부총재를 거쳐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제11대 국무총리로 이름을 올렸다. 총 7번 국회의원으로 재선했으며 1993년에는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연합 총재 자리에 올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제31대 국무총리를 맡기도 했다.  
사진은 1989년 1월년 서울 마포가든호텔에서 만난 3김. 왼쪽부터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 [연합뉴스]

사진은 1989년 1월년 서울 마포가든호텔에서 만난 3김. 왼쪽부터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 [연합뉴스]

3김은 YS(김영삼),DJ(김대중), JP(김종필)란 애칭으로 불렸다. 이들의 정치 행보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야당 정치인으로 국민의 기대를 받았고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의 후계자를 꿈꿨던 인물이었다.  
사진은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그에 따라붙는 여러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영욕과 부침을 거듭해왔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예리씨 1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노제를 지낸 뒤 고(故) 박영옥 여사가 있는 부여 선산으로 안장될 예정이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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