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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이후 열흘

중앙선데이 2018.06.23 02:23 589호 6면 지면보기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안보 정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미국민의 지지 여론(CNN 조사, 정상회담 결과에 응답자 중 만족 52%, 불만족 36%)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9~20일 세 번째 방중과 전례 없는 수준의 북·중 밀착 행보를 통해 대미 협상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북·미 간 후속 협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열흘이 지난 22일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네 가지 장면을 통해 정리해봤다.
 
트럼프 “마이크가 북에 갔을지 모른다”
각료회의서 협상 지연 비판에 농담
“북 전면적 비핵화 시작” 셀프 홍보 
 

21일 각료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농담에 미소 짓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연합뉴스]

21일 각료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농담에 미소 짓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오후 백악관에서 진행된 각료회의.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환상적이며 마이크와 함께 일하고 있는 볼턴(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환상적”이라며 두 사람을 한껏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어디 있나”라고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바로 오른쪽 옆자리에 앉아 있는 폼페이오 장관의 어깨를 툭 치며 “여기 있네”라고 농담을 건넸다. 이어 “북한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북한에서 매우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여기에서 보다니 놀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농담에 폼페이오 장관은 멋쩍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농담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후속 실무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연결돼 있다는 해석이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정상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적절한 북한 고위급 인사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후속 협상을 한다”고 합의했다. 그런데 북한은 22일 현재까지 폼페이오 장관의 협상 파트너도, 후속 협상 일정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후속 협상 지연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셀프 홍보전에 적극 나섰다. 그는 각료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면적 비핵화(total denuclearization)이며 이미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매우 빨리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북·미) 관계는 매우 좋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멈췄고, 엔진 시험장을 파괴하고 있고, 3명의 인질도 돌아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있어 매우 기쁘다”고 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그 이후에도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 “우리가 한 일로 인해 아시아 전역이 미국과 사랑에 빠졌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폼페이오 뜨자 ‘절친’ 강경화도 떴다
강 장관, 폼페이오와 수시로 전화
이젠 안보실이 외교부에 문의


14일 청와대에서 인사를 나누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14일 청와대에서 인사를 나누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제는 강경화-폼페이오 라인이 뜨고 있다. 국무장관 취임 이후 폼페이오 장관과 강 장관 사이의 ‘케미스트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평창 겨울올림픽, 남북 정상회담 등 초대형 이벤트가 이어지는 동안 외교부는 늘 ‘패싱’ 논란에 시달려왔다. 실제 청와대-백악관 직통 라인이 이런 흐름을 주도했고 주축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볼턴 보좌관의 선임자였던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이 과정에서 비핵화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정보 부재에 시달렸고, ‘조선은 정의용 실장이 책임진다’는 뜻으로 정 실장 이름을 빗댄 ‘조선의용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 부임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전임인 렉스 틸러슨 장관과는 달리 자타가 공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이자 북·미 협상의 실무 총괄을 맡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가 강 장관이기 때문이다. 특히 강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 사이가 매우 가깝다는 사실은 외교가 안팎에 널리 알려져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내정된 4월 말 이후 두 장관은 세 차례 만났고 공식 통화만 일곱 번을 했다.
 
두 장관의 ‘케미’는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비공개 소통에도 잘 드러난다는 전언이다. 강 장관이 지난 5월 초 방미해 폼페이오 장관을 만난 후 두 장관은 휴대전화로 수시로 통화하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보안을 요하는 공식 전화회담은 배석자를 두고 유선전화로 하지만 통화시간 조율 등 간단한 의사소통은 휴대전화 통화나 문자메시지로 종종 이뤄진다고 한다. 강 장관은 지난 18일 내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7일로 예고한 북·미 정상 간 통화 여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추진 중이지 않다는 답을 폼페이오 장관에게 들었다”고 말했고 실제 트럼프-김정은 통화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이제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외교부에 북·미 협상 관련 문의를 할 정도로 상황이 역전됐다.
 
김정은 “시진핑은 탁월한 수령” 극찬
석 달 새 세 번이나 방중, 밀착 행보
북·중, 미국 겨냥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북한 조선중앙TV는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세 번째 중국 방문을 담은 기록영화를 공개했다. 시진핑 주석에게 거수경례하는 사람은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2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세 번째 중국 방문을 담은 기록영화를 공개했다. 시진핑 주석에게 거수경례하는 사람은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은 이제 일상이 됐다. 3월 25~28일, 5월 7~8일에 이어 6월 19~20일까지 석 달 사이에 세 번째다. 북한 조선중앙TV가 김 위원장 귀국 후 하루 만인 21일 공개한 기록영화에서도 북·중 밀착 관계는 두드러졌다. 중앙TV 아나운서는 지난 19일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환영 연회 후 김 위원장 부부와 시진핑 주석 부부가 작별하는 장면에서 “김정은 동지께서는 형제적 인방(隣邦)의 ‘탁월한 수령’이시며 자신과 조선 인민의 가장 친근하고 위대한 동지이신 습근평(習近平) 동지의 건강을 축원했다”고 설명했다. 연회를 마치고 걸어 나오는 장면에선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가 시 주석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도 나왔다. 북한 매체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아닌 외국의 국가수반에 대해 ‘탁월한 수령’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북·중 밀착 행보는 역시 미국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중 간 무역 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이뤄진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방중을 통해 북·중은 ‘누이 좋고 매부 좋았다’는 평가다. 중국으로선 미국이 가장 꺼리는 대북제재 해제 가능성을 비치면서 무역 전쟁에서 미국의 예봉을 꺾을 유효한 수단을, 정상회담 과정에서 제재 완화를 강하게 희망해온 북한으로선 북·중 경제협력 카드를 내비침으로써 미국의 완고한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해제’ 입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인희 건국대 중국연구원장은 “무역 전쟁에서 중국이 미국에 타격을 줄 수단이 마땅치 않았는데 향후 대북제재 완화 카드를 통해 대미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 전쟁 승리와 북한 비핵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각료회의에서 “유감스럽게 현재 (북·중) 국경이 조금 약해졌지만 괜찮다. 괜찮다”고 반복해 말했지만 영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볼턴 “북 빨리 움직여야” 목소리 높여
후속 협상에 미온적인 북한에 촉구
트럼프 “볼턴 환상적” 신뢰 재확인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서명식을 준비 중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AFP=연합뉴스]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서명식을 준비 중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AFP=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 개최 과정에서 대화파인 폼페이오 장관에게 밀렸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후속 협상에 미온적인 북한의 태도를 빌미로 다시 한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북·미 확대 정상회담에서 이용호 외무상의 맞은편에 자리 잡아 건재함을 보여준 데 이어 지난 20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길게 늘어지고 지연되는 회담은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빨리 움직이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도 진지하다면 마찬가지로 빨리 움직이길 원해야 할 것”이라고 특유의 펀치를 날리면서다.
 
볼턴 보좌관은 이어 “우리는 폼페이오와 다른 사람들이 그들(북한)과 만나서 그것(비핵화)에 대해 논의하는 걸 보게 될 것”이라며 “그들이 (핵무기 등을 포기할) 전략적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각료회의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볼턴 보좌관도 ‘환상적’이라고 언급, 그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했다.
 
회담 공동성명에서 후속 협상 대표로 명시됐던 대화파 폼페이오 장관의 행보는 다소 주춤거리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다음주 언젠가는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발언해  이번 주 제3차 방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하지만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이번 주나 다음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는 발표할 만한 회동이나 방문 계획은 없다”고 답변했다. 일각에선 세 번째 북·중 정상회담이 이제 종료됐기 때문에 북한이 곧 후속 협상에 나설 것이라든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송환과 맞물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지만 아직은 불투명하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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