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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가 꾸는 환상적인 꿈 속을 걷는 듯

중앙선데이 2018.06.23 02:00 589호 14면 지면보기
초현실주의 작가 달리가 직접 설계한 미술관
달리 극장-미술관의 외관

달리 극장-미술관의 외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북동쪽을 향해 차로 2시간 가량 달리면 피게레스라는 소도시를 만나게 된다. 인구가 4만 5000명밖에 안 되는 조그만 도시이지만,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모두 이 도시에 있는 기이하기 짝이 없는 건물을 찾아온 사람들이다.
 
그 건물의 한 동은 장밋빛 설탕옷 또는 햄을 입힌 듯한 벽면에 줄줄이 금빛 빵 모양 조각들이 붙어 있다. 지붕에는 거대한 삶은 달걀 같은 게 늘어서 있다. 뾰족한 연필처럼 다듬어진 암록색 나무들이 둘레에 줄지어 서 있어서 더욱 동화적인 분위기다. 이어진 다른 동의 지붕에는 삼각형 격자로 이어진 거대한 유리 반구(지오데식 돔)도 있다.  
 
달리 극장-미술관의 하이라이트 '아파트로 사용될 수 있는 메 웨스트의 얼굴'

달리 극장-미술관의 하이라이트 '아파트로 사용될 수 있는 메 웨스트의 얼굴'

놀이공원에 무척 어울릴 법한 이 건물은 놀랍게도 이 도시에서 탄생한 유명 미술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이다. 게다가 그 미술가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곳이며, 별세한 후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체 어떤 아티스트가 자기 미술관을 이렇게 테마파크처럼 만들었을까. 바로 꿈과 다중 이미지의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1904~1989)다.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달리가 구현해놓은 초현실 세상에 다녀왔다.  
 
달리의 그림은 사진 같이 정밀하면서도 불합리해서 더욱 묘하고 환각적이기로 유명한데, 그런 그림들 속에는 때로 성욕과 식욕의 복합적 메타포로서,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빵·달걀·베이컨 같은 음식이 등장하곤 한다. 달리는 이 미술관이 완공되기 한 해 전인 1973년에는 이상한 요리책도 썼다. “난 모든 게 먹고 싶었다. 단단하게 삶은 계란만으로 커다란 식탁을 만들어서 식탁까지 먹어 치울 계획도 세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걸 생각하면 왜 미술관의 외관이 이토록 ‘먹음직스러운지’ 이해가 간다.  
달리 극장-미술관의 전시장 입구 '인간형 얼굴'

달리 극장-미술관의 전시장 입구 '인간형 얼굴'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달리 극장-미술관(Teatro Museo Dali)’이다. 미술관 측은 스페인 내전 중인 1939년 불타버린 피게레스 시립극장의 폐허 위에 지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또한 달리의 아이디어였다. 극장의 남은 부분인 무대를 절묘하게 활용해 투명한 지오데식 돔을 씌운 드높은 홀로 만들고, 벽에는 미국 체류(1940~48) 당시 ‘미로’라는 발레 공연을 위해 자신이 배경막으로 제작했던 거대 그림을 다시 만들어 걸었다.  
 
이 홀과 홀을 둘러싼 여러 전시실에서는 달리의 정말 다양한 작품을, 그의 의도대로 시대순과 상관없이 불쑥불쑥 만날 수 있다. 회화 중에는 파블로 피카소와 큐비즘의 영향이 역력한 초기작도 있고, 전형적인 초현실주의 시대 화풍으로 앤디 워홀에 앞서 코카콜라병을 등장시킨 ‘미국의 시’(1943)도 있다.  
 
살바로드 달리, '구운 베이컨을 곁들인 부드러운 자화상'

살바로드 달리, '구운 베이컨을 곁들인 부드러운 자화상'

날아다니는 구체들이 달리의 영원한 뮤즈인 아내 갈라의 얼굴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모 마리아 같은 모습으로 어렴풋하게 형성한 ‘구체의 갈라테아’(1952)도 있다. 달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핵무기의 세계적 충격 속에서 기이하게도 원자 이론과 가톨릭 신앙에 동시에 심취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소위 ‘핵 신비주의(Nuclear Mysticism)’ 그림들 중 대표작이 바로 이 그림이다. 또 ‘서랍이 달린 밀로의 비너스’(1964) 같은 조각부터 보석 디자인, 심지어 말년에 실험한 아날로그 홀로그램 작품까지 볼 수 있다.  
 
먹음직스러운 미술관 식욕과 성욕의 메타포
달리 극장-미술관의 중앙홀

달리 극장-미술관의 중앙홀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설치작품 ‘아파트로 사용될 수 있는 메 웨스트의 얼굴’(1974)일 것이다. 진홍색 벽에 흐릿한 흑백 풍경 이미지가 두 점 걸려 있고, 그 사이에 장식 탁상시계가 놓인 벽난로가 있다. 그 앞 마룻바닥에는 붉은 소파가 놓여 있다. 앞쪽 금빛 휘장이 드리워진 곳으로 가서 이 사물들을 함께 바라보면, 마릴린 먼로보다 한 세대 앞서 블론드 섹스심벌이었던 배우 메 웨스트의 얼굴이 사물들에 걸쳐 떠오른다. 달리가 1930년대 초현실주의 그림에서 집중적으로 발휘한 ‘편집광적 비판 방법(paranoiac critical method),’ 즉 물체들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 기법을 스케일 큰 입체로 구현한 것이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지하 전시실에 있는 ‘구운 베이컨을 곁들인 부드러운 자화상’(1941)이다. 가죽 가면 같은 얼굴이 목발에 받쳐져 흘러내리는 가운데 오로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만 꼿꼿하다. 달리는 이 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건 반심리학적인 자화상입니다. 영혼을, 내면을 그리는 대신 나는 오로지 외면을 그리고 싶었다고요. 겉포장을, 나 자신의 거죽을 말이에요. 물론 먹을 수 있는 거죽으로요.”  
 
달리가 그린 자화상과 피카소의 초상화가 마주보고 있다.

달리가 그린 자화상과 피카소의 초상화가 마주보고 있다.

자화상은 달리의 의도대로 그가 그린 ‘피카소의 초상화’(1947)와 마주 보고 걸려있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감긴 염소뿔-뇌와 만돌린은 피카소의 천재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경의를 담아 그렸다고 하지만, 어째 자기 자화상보다 더 괴물 같은 모습이다. 사실 피카소는 달리가 평생에 걸쳐 존경하면서 또한 의식하고 견제하는 대상이었다. 달리는 1951년에 이런 연설을 하기도 했다. “피카소는 스페인인이다. 나도 그렇다. 피카소는 천재다. 나도 그렇다. 피카소는 72살이다. 나는 48살이다. 피카소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나도 그렇다. 피카소는 공산주의자다. 난 결코 아니다.”  
 
이처럼 달리 극장-미술관에서는 작품의 배치까지 달리의 의도를 담아 드라마틱하다. 어느 코너에서는 미켈란젤로 ‘모세’ 모작의 풍성한 수염과 그 위에 비슷한 모습으로 늘어진 문어발을 만나게 된다. 또 어느 층계참에서는 말린 옥수수와 플라스틱 인형으로 장식된 전시실 입구를 보게 되는데, 멀리서 보면 입을 떡 벌린 사람 얼굴이다. 이래서 ‘극장-미술관’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살바도르 달리 평전을 쓴 로버트 래드포드의 말처럼 “달리식 오페라의 꿈 속 공간”인 것이다.  
 
‘쇼맨’의 충만한 재능이 곳곳에
살바로드 달리, '구체의 갈라테아'

살바로드 달리, '구체의 갈라테아'

전시작 중에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무대를 개조한 중앙홀과 극장-미술관 현관 사이에는 중정이 있는데, 그곳엔 달리와 갈라의 마네킹을 태운 캐딜락과 뒤집어진 보트가 얹힌 거대 기둥으로 이루어진 설치작품 ‘비 내리는 캐딜락’이 있다. 자동차에 1유로를 넣으면 자동차 안에 비가 내리고, 기둥 위 보트에 붙은 우산이 천천히 펴진다! 차 위에는 오스트리아의 미술가 에른스트 푹스의 원시 지모신상 같은 조각이 우뚝 서 있다.  
 
사실 극장-미술관이라는 명칭과 공간은 ‘쇼맨’이라는 달리의 별명에 참 잘 어울린다. 이 별명은 달리에 대한 복합적 시각을 함축한다. 그가 한때는 천재적으로 독창적이었으나 점차 “달러에 환장한” 진부한 흥행사로 전락했다고 보는 앙드레 브르통(초현실주의 창시자 시인) 같은 이들의 시각이 있다. 반면 추상과 순수성에 치우친 20세기 전위미술계에서 구상화와 각종 퍼포먼스 및 새로운 매체를 실험하고 광고 같은 대중적·상업적 영역을 넘나듦으로써 팝아트 등 포스트모던 아트에 영감을 주었다는 시각도 있다. 이 모든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쇼맨’이 펼쳐보이는 환상극장이 바로 달리 극장-미술관인 것이다.  
 
살바로드 달리, '미국의 시'

살바로드 달리, '미국의 시'

달리는 심지어 죽음 이후까지 드라마틱했다. 극장-미술관 중앙홀 지하에 자리 잡은 그의 무덤은 최근에 한 번 열렸었다. 어떤 타로카드 점술사가 달리의 숨겨진 딸이라고 10년 넘게 끈질기게 주장하면서 마침내 법원 명령으로 DNA 샘플 체취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친자가 아니었다. 사실 처음부터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들이 점술사의 주장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달리가 아내 갈라에게 충실하기도 했고, 또 스스로 성불능에 가깝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무덤을 열어봤더니 미라화된 달리 시신의 콧수염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10시 10분 시계침 방향을 정확히 유지하며 . 이 한바탕 촌극을 달리답게 웃어주려고 콧수염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피게레스(스페인) 글·사진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사진 갈라 살바도르 달리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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