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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다고 대단한 건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8.06.23 02:00 589호 34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통영놀이 
 봄날이 지나 잠시 주춤하던 통영이 다시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7월 장마를 넘어 8월 초 한산대첩 축제까지 끊임없이 몰려들 터다. 주말에는 강구안과 동피랑, 케이블카와 루지 타러 가는 길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몸살을 앓는다. 통영 시장이 나서서 전단지를 돌려가며 차량 2부제를 시민들에게 호소하지만, “택도(어림)” 없다. 통영이 좋아 멀리서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고생스럽게 온 만큼 편히 즐기다 가면 좋겠는데, 앞뒤로 꽉 막힌 좁은 도로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통영을 검색하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나 ‘꼭 맛 봐야 하는 음식 베스트’ 같은 정보로 넘쳐난다. 명소로는 동피랑·강구안·케이블카와 루지·한산도와 욕지도·달아공원 정도고 음식은 충무김밥과 꿀빵, 회와 매운탕, 시락(시래기)국, 봄 도다리쑥국, 여름 하모(갯장어)회, 겨울 굴 요리 등이다. 유튜브나 방송에 나오면 사람들이 더 몰려든다. 그러다 보니 통영 여행은 색다르거나, 낯선 만남보다는 ‘갈 곳과 먹거리의 가성비 높은 조합’에 가깝다. 몰리는 곳만 몰릴 수밖에 없다. 요령 좋은 카페 주인은 관광객들이 “어디가 맛있어요?” “어디가 좋아요?”라고 물으면 “거기 가면 사람 참 많아요”라고 대답한단다. 단순히 길 넓히고 주차장 늘린다고 지독한 교통 체증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사색기행』에서 “여행의 패턴화는 여행의 자살”이라고 잘라 말했다. 여행과 먹방을 엮은 프로그램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유명한 맛집을 찾아 소문난 주인이나 셰프를 만난다. 재료가 얼마나 좋은지 요리 실력은 얼마나 뛰어난지 자랑한다. 출연자는 매우 맛있다며 야단을 떤다. 요즘엔 방송뿐만 아니라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까지 이것을 한껏 거든다. 조금만 진기하면 여지없이 패턴이 따라붙는다. 이런 걸 믿고 따라왔다가는 실망하기 일쑤다.  
 
지난달 ‘통영, 과학자를 만나다’ 두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멀리서 찾아왔다. 통영 시민을 위한 과학 강의와 더불어 과학자와 보내는 1박 2일 프로그램을 덧붙였다. 세 분이 참여했는데 과학자와 함께 저녁으로 마른 메기찜을 먹었다. 통영 시민들과 카페에서 강의를 듣고 다찌에서 뒷풀이를 한 다음 믿는구석통영에서 묵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동네 명소(?)를 다녔다. 케이블카도 타지 않았고 섬에도 다녀오지 않았다. 충무김밥이나 꿀빵도 먹지 않았다. 대신 평인일주도로와 충무교를 건너 옻칠미술관과 미륵산 숲길을 다녀왔고 통영 식재료를 써서 셰프가 만든 프랑스 요리로 점심을 즐겼다. 가격은 방송에서 “이 정도 금액으로 1박2일 즐겼다”며 감탄해 마지않던 수준이었다.  
 
유명하지만 대단하지 않은 세계 3대 명소로 덴마크 인어공주상, 벨기에 오줌싸개 동상, 싱가포르 멀라이언을 꼽는다. 며칠 전 대만에서 본 지우펀도 비슷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덕분에 유명해져 가뜩이나 좁은 골목은 질식할 만큼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도 폐광 마을이 상상력을 덧댄 애니메이션 하나로 되살아났다. 통영은 굳이 애니메이션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처음부터, 지금도 여전히 매력 넘치는 도시다. 바닷길과 숲길에 데크를 까는 대신 통영의 보석같은 골목과 섬과 바다에 상상력을 덧붙이면 어떨까 싶다. 유명한 곳은 다 둘러본 도시, 문화 예술의 도시였던 통영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
 
작가ㆍ일러스트레이터ㆍ여행가. 회사원을 때려치우고 그림으로 먹고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 40일』『밤의 인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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