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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동행, 아름다운 기억

중앙선데이 2018.06.23 02:00 589호 27면 지면보기
an die Musik: 자클린 뒤 프레의 엘가 첼로협주곡
 
 자클린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이 1970년 협연한 엘가의 첼로협주곡 음반. 70세의 바렌보임이 사인을 했다.

자클린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이 1970년 협연한 엘가의 첼로협주곡 음반. 70세의 바렌보임이 사인을 했다.

 낡은 사진은 세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자클린 뒤 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 원래는 흑백사진이었던 것 같다. 물감을 입혔는데, 뒤 프레의 금발이 창백한 노랑이다. 사진을 사용한 음반에는 1970년의 엘가 첼로협주곡 협연 실황이 담겨있다. 사진도 그 무렵에 찍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1967년에 결혼했으니까 사진을 촬영할 무렵은 부부연주회로 한창 바쁠 때였다. 그래서 그럴까. 첼로를 끌어안은 뒤프레가 지쳐 보인다. 겨우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빛에 생기가 없고 맥없는 얼굴에는 다가오는 병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반면 바렌보임은 강인해 보인다. 지휘자로, 피아니스트로 한창 이름을 알릴 때였다. 세상으로 달려나가기 바빴던 그는 아내가 운동 능력을 잃는 불치병에 걸린 걸 알아채지 못하고 연주 중 실수를 하면 호되게 나무랐다.  
 
2011년 바렌보임이 한국에 왔을 때 이 음반을 들고 갔다. 사인을 받고 싶었다. 정치인이든 음악가든 같이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웬일인지 이 음반에는 사인을 받아 두고 싶었다. 그는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왔다. 나흘에 걸쳐 베토벤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마지막 날인 8월 15일에는 무대를 임진각으로 옮겨 ‘합창’을 다시 연주했다. 사인을 받기 위해 고른 음반은 두 장이었다. 뒤 프레와의 사진이 실린 엘가 첼로협주곡과 쇼팽의 녹턴이었다.  
 
바렌보임의 쇼팽 녹턴은 라이선스였지만 클래식 입문 초기부터 들어 정이 들었다. 재킷의 붉은 황혼에 연주자의 서명을 받아 더욱 아껴 듣고 싶었다. 그런데 엘가는 신경이 쓰였다. 옛 사진을 보고 바렌보임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뒤 프레와의 인연을 두고 바렌보임을 비난했다. ‘유대인이 영국 여자를 ’ 식의 인종차별적 언사부터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버렸다는 험담까지, 유명세만큼이나 다양한 비판이 평생 따라다녔다.  
 
그러나 기우였다. 바렌보임은 환하게 웃으며 음반을 받아 뒤 프레의 금발 위 빈 공간에 거침없이 이름을 써 나갔다. 그에게 뒤 프레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40년 전 사진에 사인을 하는 바렌보임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사인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깊이 들어보았다. 이전에는 선이 약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던 음악이었다. 첼로협주곡이라면 드보르작을 즐겨들었다. 삐에르 푸르니에와 야노스 슈타커의 연주가 다 훌륭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근육질의 드보르작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엘가를 듣게 됐는데, 예전에 단점이었던 ‘선이 약한’ 성질이 오히려 편안했다. 엘가는 저현(低絃) 악기인 첼로를 살리기 위해 관현악을 줄였는데 결과적으로 협주곡이 실내악처럼 맑게 울린다. 엘가는 62세에 이 곡을 완성했다. ‘인생에 대한 한 인간의 마음가짐’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3악장의 명상적 선율은 여느 협주곡의 느린 악장과는 다른 품격이 있다.  
 
노인이 쓴 작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젊은 여성 연주자 뒤 프레 덕분이었다. 그녀는 1963년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연주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데, 이로써 곡의 가치가 알려지고 그녀의 최대 장기 레퍼토리가 되었다. 뒤 프레의 엘가 협주곡은 바비롤리/런던심포니 협연 음반이 명연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바렌보임이 반주한 음반에 먼저 손이 간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곡을 연주한 방송 영상이 남아 있는데, 뒤 프레는 코앞에서 지휘하는 바렌보임과 눈을 맞추며 즐겁게 연주한다. 더 없이 편안한 모습이라 보는 사람도 행복해진다.  
 
바렌보임은 뒤 프레가 죽은 뒤 무덤에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타인들이 이런 걸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습다. 두 사람의 동행은 짧았지만 아름다웠다. 꽃도 잠시 피었다 진다.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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