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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업계로 번진 탈원전 후폭풍 … “1년 새 직원 30% 떠나”

중앙선데이 2018.06.23 01:50 589호 17면 지면보기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자력발전 로드맵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원전 부품업계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수급 계획을 믿고 관련 기술 개발에 투자했는데 졸지에 회사가 존폐기로에 놓였다는 하소연이다. 원전 납품 기자재 업체 A사의 B부사장은 2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를 믿고 원전 기술에 투자했는데 앞날이 막막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불이익을 우려해 회사명과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한숨
정부 믿고 수백억원 투자했는데
정권 바뀌었다고 계획 뒤집어서야

떠나는 엔지니어들 차마 잡지 못해
인력 공급망 깨지면 복구 불가능

500~600개 부품 납품업체 직격탄
절대적인 ‘을’이라 손배소 어려워

 
원전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과거 원전 사업은 미국 웨스팅하우스 등 선진국 업체로부터 원자로와 부품을 턴키로 들여왔다. 부품을 2~3년마다 교체해야 하는데 독점 공급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두세배로 뛰었다. 다른 산업 분야 부품을 생산하다가 원전 분야에 진출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지난 15일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월성원전 1호기의 조기 폐쇄와 천지·대진 등 신규 원전 4기 사업 종결을 의결했다.
“정부가 (2015년 발표한)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30년까지 원전 8기를 짓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사람과 설비, 공장 부지 확대 등에 수백억 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그중 2기만 짓겠다고 하니 참담하다.”
 
 
원자력을 이념으로 보지 말아야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정부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과 12월 수립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에 따라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백지화했다.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이유로 “경제성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이사 12명 가운데 유일하게 월성 1호기 폐쇄를 반대하고 사퇴한 조성진 경성대 에너지학과 교수는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한수원은 7000억원을 들여 월성 1호기를 2022년까지 운영하도록 보수했다. 2015년 가동률이 95%에 달했지만 2016년 경주 지진으로 가동률이 53%에 그쳤고, 지난해 하반기에는 정기 점검으로 가동을 중단한 후 재가동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는 가동률이 낮아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원자력 산업은 지는 것인가.
“원전에 기기를 납품하다가 직격탄을 맞은 업체가 500~600개쯤 된다. 이 가운데 폐업 위기에 있는 회사도 있다.개별 기업의 존폐를 떠나, 오랜 기간 키워 온 산업과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더 안타깝다. 원자력 산업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다.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유지가 안 된다. 인력이 떠나기 시작하고 공급망이 깨지면 다시 복구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게 상황이 심각한가.
“30대 엔지니어들은 이미 회사를 떠나고 있다. 정부가 원전을 안 짓는다니 조금이라도 빨리 다른 분야 일자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최근 1년 새 직원의 30%가 회사를 떠났다. 젊은 엔지니어가 사표를 들고 오면 붙잡을 명분이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원전 가동률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한수원의 모기업인 한전에 따르면 2016년까지 국내 발전량의 30%를 차지하던 원전의 비중은 지난해 27%로 떨어졌다. 올들어 원전 가동률은 54.8%에 그쳤다. 예년(80%)의 3분의 2 수준이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선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한전이 구입하는 단가는 킬로와트시(㎾h) 당 원전이 60원, 액화천연가스(LNG)가 110원이다. 지난해 전체 발전량 52만 기가와트시(GWh)를 기준으로 원전 비중이 10%포인트 낮아진다면 2조6000억원이 더 드는 셈이다. 올들어 LNG 가격이 20% 정도 오른 것까지 감안하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그만큼 한전의 적자가 늘어나는 것을 감내하거나 전기요금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대안은 없나.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시간이라도 벌었으면 좋겠다.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체코·영국에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계획인데, 이상적으로 잘 되더라도 수주까지 시간상으로 너무 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중국·러시아·프랑스·미국이 우리나라와 경쟁하는데, 우리가 따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아직 운명이 결정되지 않은 신한울 3·4호기를 지어야만 한다. 신고리 5·6호기는 2020년에, 신한울 3·4호기는 2022~23년에 납품하게 되는데 이렇게 5~6년이라도 버티면서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으로써는 너무 절망스럽다.”
 
조 교수 역시 “북한 전력 지원과 원전 해외진출 등을 감안하면 원전 폐쇄보다 가동을 중단하되 언제든 재개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강조했다. 직원 1만2000명인 한수원이 월성 1호기를 유지하기 위한 200명의 인력을 감당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B부사장도 전문인력을 유지할 시간을 벌어야한다는 입장이다.
 
 
국산화 기술 들고 중국 가야할 판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단체들의 모임인 원자력정책연대 등은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에 정부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정부 정책 변경으로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 청구 계획은 없나.
“한국 경제가 급속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가 정부의 일관된 정책을 공기업이 꾸준히 뒷받침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미 정한 계획까지 뒤집는 것은 처음 겪는다. 하지만 손해배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부와 공기업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인 납품업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기는 어렵다.”
 
조 교수는 한국형 원전의 개량형인 최신형 APR1400플러스 원전 관련 기술을 다 개발해놓고도 시험할 기회를 놓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원자력 보조기기 업체 C사의 D사장은 “원자력을 산업이나 에너지·경제가 아니라 이념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에 답답하다”며 “사람·기술 다 끌고 중국으로 가야할 판”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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