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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차례 방북한 이노키 “북, 표현 거칠지만 늘 대화 원했다”

중앙선데이 2018.06.23 01:34 589호 22면 지면보기
지난 11일 일본 도쿄에 있는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안토니오 이노키 의원이 중앙 SUNDAY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영재 기자]

지난 11일 일본 도쿄에 있는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안토니오 이노키 의원이 중앙 SUNDAY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영재 기자]

안토니오 이노키를 기억한다고? 그러면 당신은 아마도 1970년대 TBC(동양방송, JTBC의 전신)의 흑백 화면을 통해 김일 선수와 피 터지게 싸우는 모습을 봤을 것이다. 190cm의 큰 키와 잘 생긴 얼굴,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한 이 일본 프로레슬링 선수는 김일의 필살기인 박치기를 맞고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브라질 이민자 출신인 이노키는 은퇴 후 엔터테이너로 변신한 데 이어 ‘스포츠평화당’을 창당해 참의원 선거에 당선되는 등 정치인으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현재도 참의원 무소속 의원인 이노키는 북한을 30번 넘게 방문한 친북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함경남도 출신인 스승 역도산(力道山)을 변함 없이 존경했고, 그의 사위 박명철(전 북한 체육상) 등 북한 정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류를 해 왔다.
 

레슬러 출신 일본 참의원 의원
스포츠는 교착 상태서도 열린 문
정치에 이용 당해도 교류해야

스승 역도산 고향이 함경남도
1994년부터 매년 북한 찾아

한방 썼던 김일, 날 많이 챙겨줘
역도산 정신 가진 우리는 ‘쇼’ 안 해

북·미 정상회담 전날인 지난 11일,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314호실에서 안토니오 이노키 의원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다리를 심하게 절며 접견실로 들어왔다. 몸은 불편해 보였지만 트레이드 마크인 빨강색 롱 스카프를 멘 모습은 여전히 의욕적이었다.
 
 
‘매년 방북에 감사’ 김정은 메시지 받아
 
2014년 8월 국제 프로레슬링 대회 유치를 위해 평양에 간 이노키 일행. [중앙포토]

2014년 8월 국제 프로레슬링 대회 유치를 위해 평양에 간 이노키 일행. [중앙포토]

빨강색 스카프는 어떤 의미인지.
“레슬러 시절 링 위에서 싸울 때 가운을 입었는데, 그때는 수건을 목에 두르곤 했다. 은퇴를 한 뒤 수건을 두를 수 없으니 스카프로 대신한 거다.”
 
다리를 저는데, 건강은 어떤지.
“목부터 다리까지 전부 수술을 받은 터라 성할 리가 있나. 특히 허리와 다리가 불편하다. 건강이 정말로 중요한 거다.”
 
정치인으로 엔터테이너로 활발히 활동 중인데, 요즘 가장 신경 쓰는 일은.
“아무래도 북한 문제가 가장 신경이 쓰인다. 내가 평양을 32번 다녀왔다. 1994년 첫 방문 이후 매년 평양을 방문하고 있고, 작년 9월에도 다녀왔다. 남북한이든 일본-북한 관계든 사람의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내 신념이다. 스포츠 교류를 통한 세계 평화! 이것이 내 일이다.”
 
최근 북한의 개방 움직임에 대한 생각은.
“난 북한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적인 만남이 아니라 술잔을 기울이면서 마음을 터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얕은 정보를 바탕으로 방송에서 떠벌이는 정치평론가들의 말, 예를 들면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대화’는 쓸모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한동안 북한에 대한 일본의 자세였다. 이제 와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나.
“직접 만난 적은 없고, 메시지를 받은 적은 있다. ‘일본과의 관계가 경색되어 있는 중에도 매년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동북아에 새 국면이 펼쳐질 것 같은지.
“몇십 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평화, 평화를 이야기해 왔다. 그것은 결국 반목과 대립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은 북한에 대해 강경 일변도로 대처해 왔다. 참으로 한심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대화를 원해 왔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말투가 다르듯 그들의 표현이 거친 부분은 있었지만 대화에 대한 갈망은 늘 있어 왔다. 이번 회담은 그것의 가장 큰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스포츠 교류에 대한 전망은.
“스포츠는 아무리 지독한 교착상태에서도 서로 왕래할 수 있는 문(門)과 같은 것이다.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는 게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진정한 교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이용해도 좋은 것이다. 남북한이 단일팀을 만드는 것도 해 보지 않으면 (효과를) 알 수가 없지 않겠나. 한 발을 내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 화제를 바꿨다. 역시 이노키에게는 옛날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현역 시절 링에서 맞붙었던 김일과 이노키. [중앙포토]

현역 시절 링에서 맞붙었던 김일과 이노키. [중앙포토]

역도산과는 어떻게 만났나.
“역도산 선생은 두 번 브라질에 오셨다. 그때 스승은 일본인(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곳을 순회하셨는데, 내가 살던 ‘마리기와’라는 곳은 너무 오지(奧地)여서 뵐 수가 없었다. 그 후 농장 일이 너무 힘들어 상파울루로 옮겨 생화(生花) 시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두 번째 방문이 있었다. 그때 ‘역도산초청위원회’ 위원장이 내가 전년도에 포환던지기 우승을 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역도산 선생에게 소개시켜 주셨다. 밤일을 끝내고 위원장의 손에 이끌려 호텔로 찾아뵈었는데 날 보자마자 ‘같이 가자’고 하셨다.”
 
역도산으로부터 어떤 트레이닝을 받았나.
“매우 힘든 훈련을 받았다. 주로 기초체력 훈련을 많이 했다. 예를 들어 브릿지(몸을 뒤로 젖혀 복근의 힘으로 아치 모양을 만드는 것) 같은 거다. 실전 기술은 외국 선수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김일·안토니오 이노키·자이안트 바바가 역도산 문하생 중 가장 유명한데.
“맘모스 스즈키라는 사람도 추가해야 한다. 김일 선수(오 긴타로)가 가장 연장자였는데 나를 많이 챙겨줬다. 김일 선수와는 같은 방을 써 더 친해졌다. 자이안트 바바는 나보다 5살 위였다. 원래 야구를 했던 분이라 입문했을 때는 실력이 형편없었는데 점차 기술이 좋아졌다.”
 
김일과 한국에서 많은 시합을 했고, 때로 선혈이 낭자한 격전을 치렀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프로레슬링은 쇼라고 생각하는데.
“시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 선수를 다치지 않게 하는 거다. 우리에게는 ‘리키도잔이즘(역도산정신)’이라는 것이 있었다. 상대가 이 정도로 승부를 걸어오면 우리도 그 정도에서 승부를 결정짓는다. 즉 상대가 걸어오는 기술에 따라 우리의 기술도 맞춰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시합은 점점 더 에스컬레이트된다. 물론 당시에도 짜고 하는 쇼 같은 것들이 있었을 거다. 그러나 ‘리키도잔이즘’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이노키 의원이 우리 일행에게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나”고 물었다. 모두가 “없다”고 하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모두 평양에 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누워서 돈 벌어” vs “아무 것도 못해” … 알리·이노키 ‘세기의 졸전’ 후 설전
이노키 의원의 명함에 인쇄된 알리와의 대결 장면. ‘원기(파이팅)가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글이 적혀 있다. [정영재 기자]

이노키 의원의 명함에 인쇄된 알리와의 대결 장면. ‘원기(파이팅)가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글이 적혀 있다. [정영재 기자]

안토니오 이노키 의원이 건넨 명함 뒷면에는 1976년 도쿄에서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의 ‘세기의 대결’ 사진이 담겨 있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 알리와의 격돌은 ‘이노키’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이벤트였다. 무려 14억 명이 TV로 지켜봤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세기의 졸전’이었다. 3분 15회전 경기 내내 이노키는 누워서 알리의 다리를 향해 킥을 시도했고, 알리는 이노키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 알리가 “세상에 누워서 돈을 버는 건 창녀와 이노키밖에 없을 것”이라고 도발하자 이노키도 “넌 누워 있는 창녀를 상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고자냐?”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사실 이노키에게 절대 불리한 규칙이 적용된 경기였다. 이노키는 로프 터치, 그래플링(상대를 잡고 던지는 것)이 금지됐고, 일어선 상태에서 허리 위 타격도 할 수 없었다.
 
이노키 의원은 “당시 시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알리 측에서 제시하는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돌아간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떻게 해서든 링 위에 알리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그 쪽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주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노키는 “당시 평가는 처참했다. 그러나 세월이 참 재미있는 게, 지금은 그 경기가 격투기의 원조라 평가받고 있지 않나”라며 웃었다.
 
도쿄=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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