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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실종자 13만 명 유해, 가족 품에 안겨야 완전한 종전

중앙선데이 2018.06.23 01:00 589호 27면 지면보기
[박정호의 사람풍경] 남상호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유가족찾기팀장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진 앞에 선 남상호 유가족찾기팀장. ’마지막 한 분을 찾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다. 전사자 매장지 제보와 함께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진 앞에 선 남상호 유가족찾기팀장. ’마지막 한 분을 찾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다. 전사자 매장지 제보와 함께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지난 19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낙성식당. 6·25 당시 북한 평남 개천군에서 전사한 고(故) 윤경혁 일병의 귀환 행사가 열렸다. 고인의 신원확인통지서와 국방부 장관 위로패가 고인의 장남 윤팔현(68)씨에게 전달됐다. 한국전쟁에서 카투사로 참전했던 고인의 유해는 다음달 미국에서 한국으로 송환될 예정이다. 고인의 시신은 2001년 미·북 공동 유해발굴 과정에서 찾아냈다.
 

발굴 1만1372구, 신원 확인 128명
170곳 조사해서 유해 1구 찾는 꼴

DNA 확보 더뎌 가족 찾기 어려움
과학적 체계, 전담 인력 보강 필요

군 생활 30년 주로 문서·병적 관리
6·25 당시 주요 전투·전장 꿰게 돼

아직도 애타게 가족 찾는 분 많아
힘이 닿는 한 그 눈물 닦아주려 해

윤 일병의 귀환은 전사자 유가족찾기 사업의 128번째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남상호(52) 유가족찾기팀장이 눈가를 훔쳤다. “평생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처음 본 장면도 아니지만 유가족들의 아픔에 저도 애간장이 녹았습니다.”
 
남 팀장은 당일 오후 경남 통영으로 내려갔다. 129번째 신원 확인을 위해서다. 또 다른 전사자 유가족의 타액을 채취했다. 국유단이 갖고 있는 고인의 유전자(DNA) 자료와 유족의 일치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수많은 전사자들의 유해가 우리 산야에 외롭게 묻혀 있습니다. 그들을 간절히 찾는 유족은 말할 것도 없고요. 모두 전쟁이 남긴 상처지요. 힘이 닿는 한 그 눈물을 닦아주려 합니다.”
 
남 팀장을 만나러 서울 국립현충원에 있는 국유단(단장 이학기)을 찾아갔다. 3층 건물 입구를 지키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석조물이 손님을 맞는다. 1층 로비에 놓인 현황판이 눈에 띈다. ‘대한민국 영웅, 명예 찾기’ 제목 아래 ‘유해발굴 1만1372구, 아군전사자 1만15명, 신원확인 128명’ 숫자가 적혀 있다. 혁대·안경·물통·숟가락 등 전사자들이 남긴 유품도 전시돼 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전사자들의 이름을 적은 동판. 총 450칸 가운데 현재 128칸이 채워졌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전사자들의 이름을 적은 동판. 총 450칸 가운데 현재 128칸이 채워졌다.

그간의 활동을 요약한 수치입니다.
“6·25 당시 전사자가 총 16만2000여 명입니다. 2만9000여 명이 현충원에 안장됐어요. 13만3000여 명이 실종됐는데. 지금까지 그중 1만여 유해를 찾은 것이죠. 아직도 12만3000여 명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128명이 가족 품에 안겼고요.
“유해발굴은 2000년 6·25 50돌을 맞아 한시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보다 체계를 갖춰 2007년 국유단이 출범했고요. 유가족찾기팀은 전사자의 본적지를 찾고, 마을을 탐문하고, 유가족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고,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고, 그리고 전사자와 유족의 DNA가 일치하면 귀환 행사를 엽니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현충원에 모시고, 그전까지는 중앙감식소에 보관합니다.”
 
예전 병적기록이 중요하겠습니다.
“전사자 명부, 인사기록표, 매장 보고서 등을 종합해야 합니다. 전투 참여 사단. 참가 인원, 전투 일지 등을 대조합니다. 예전 기록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요즘이야 전산화됐지만 처음에는 낡은 서류철을 뒤져야 했습니다. 그런 기본자료조차 없는 분도 상당수고요. 비유하자면 퍼즐 맞추기 비슷합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머릿속으로 각종 자료를 돌려봅니다.”
 
그간 128명 귀환, 숫자가 적지 않나요.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훨씬 지났습니다. 유족들도 나이가 들고, 돌아가신 분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자제가 없는 경우도 많고요. 전사자 친·외가 8촌까지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13만 실종자 전원을 확인하려면 유가족 시료가 13만 개 필요한데, 지금까지 확보한 유가족 시료는 4만 개(복수 체취 포함) 정도죠. 유가족 시료 채취율이 24%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더욱 열심히 뛰어야겠습니다.
“저를 포함해 팀원 8명이 365일 전국을 돕니다. 한 분이라도 더 많은 시료를 구하려고 해요. 주말에 전화를 드리고 가는데 종종 보이스 피싱이나 사기꾼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경찰서에 가기도 하고요. 그래도 부모나 형제를 잃은 분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남 팀장은 올해로 군생활 30년째다. 1988년 3사관학교를 나와 전방 수색소대장을 마친 다음 주로 문서·병적 보관·분류·정리 업무 맡았다. 덕분에 6·25 당시 주요 전투·전장을 꿰게 됐다. 총과 칼 대신 종이와 펜으로 나라를 지킨 셈이다. 그런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2년 소령 전역 이후 국유단에 합류했다. “군복은 벗었지만 나라를 위해 스러져간 이들을 기리는 일에는 변함이 없다”고 자부했다.
 
6·25을 맞는 느낌이 남다르겠죠.
“가족의 유해를 기다리는 분들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혹시라도 좋은 소식을 듣고 싶어 꾸준히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50~60명 됩니다. 한 분 한 분 애달프지 않은 분이 없죠. 주말에도 빠지지 않고 현충원 위패봉헌관에 나갑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무명용사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죠. 그곳을 찾는 분들의 애끓는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전사자들에 눈을 돌린 계기라면요.
“부산 육군기록보존소에 근무하던 대위 시절, 추석을 맞아 고향 밀양에 갔는데 6·25 때 큰 부상을 당해 고생하는 어르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습니다. 참전 기록이 없어 보훈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한다는 거죠. 방위병 7명과 옛날 병상일지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다른 병사의 병상일지에 끼어있는 그분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어요. 보람이 컸습니다. ‘아! 이게 내 길인가 보다’ 결심했습니다.”
 
그다지 빛나는 일이 아닌데요.
“우리가 지금 잘살고 있는 게 다 그분들 덕 아닌가요. 국가는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해요. 6·25 전사자가 묻힌 곳을 아시는 분들의 제보와 유가족들의 보다 적극적인 협조를 바랄 뿐입니다. 면봉 하나면 간단히 시료를 채취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겠습니다.
“1년에 1000구를 발굴해도 아직 못 찾은 실종자들의 유해를 전부 수습하려면 120년이 걸립니다. 통상 170곳을 발굴해야 유해 1구를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죠. 가족을 찾는 것도 힘겹습니다. 우리의 전사자 DNA 확인율이 2%를 밑도는 반면 미국은 90% 가까이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만큼 자료 축적이 부족한 상황이죠.”
 
이제 18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나마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났기에 가능했겠죠. 그래도 보다 과학적인 체계를 갖춰갔으면 합니다. 전담인력 보강도 필요하겠고요.”
 
유해발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비무장지대(DMZ) 전사자 유해발굴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약 1만 명의 한국군 유해가 DMZ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 상태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요. 정치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기대가 큽니다. 지뢰 제거가 만만치 않겠지만요.”
 
정치적 이용은 경계대상입니다.
“6·25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입니다. 완전한 종전은, 온전한 평화는 더 많은 실종자들의 유해가 그리던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날에 이뤄질 겁니다. 꽃다운 나이에 해보고 싶은 것도 다 못하고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던 그분들을 어떤 식으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에게 평화를 돌려줘야 합니다. 그게 유해발굴의 뜻이 아닐까요. 주위에서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제가 이 일에 매달리는 이유입니다.”
 
생각 떠오르면 바로 적는 메모광 … 독서·신앙·반성·업무 노트 200권
국방부 유해발굴단 유가족찾기 남상호 팀장이 사용한 현장 상황을 메모한 수첩.

국방부 유해발굴단 유가족찾기 남상호 팀장이 사용한 현장 상황을 메모한 수첩.

“제가 머리가 나빠서요. (웃음)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적어둡니다.”
 
남상호 팀장이 사무실 책상 위에 크고 작은 노트를 쭉 펼쳐 보였다. 기록을 먹고 사는 사람답게 메모 습관이 몸에 뱄다고 했다. 그는 평소 다섯 종류의 노트를 쓴다. 그날 그날 처리한 일을 쓰는 업무노트, 책에서 읽은 좋은 대목을 옮겨 적는 독서노트, 가톨릭 신자로서 마음에 와 닿는 성경 구절을 적는 신앙노트, 하루의 잘못을 돌아보는 반성노트, 본업인 유가족 찾아주기 업무개선 노트다. “보잘것없는 기록도 나중에 모아놓고 보면 훌륭한 자료가 됩니다. 메모광·기록광 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잠자리 머리맡에도 항상 노트를 두고 살죠. 좋은 아이디어도 금세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모아둔 노트가 200권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남 팀장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평생 농사를 지었던 그의 선친은 글자를 몰랐지만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이런저런 거래 내역을 빠짐없이 챙겨 두었다. “중1 때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서랍장을 열어봤는데 꼬깃꼬깃 쪽지 뭉치가 눈에 띄었습니다. 별의별 게 다 있었어요. 6·25 전사자들 기록이 그렇게 남았더라면 유가족 찾기가 훨씬 쉬웠을 텐데요.”
 
박정호 문화·스포츠 담당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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