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승의 날 제자들 손편지, 느릴수록 더 좋은 것들

중앙선데이 2018.06.23 01:00 589호 29면 지면보기
김정기의 소통 카페
손으로 쓴 글을 읽으며 따뜻한 감동이 일었다. 스승의 날에 제자들이 직접 적어 건네준 글은 인상적이었다. 금전으로 속물근성을 채우려는 일부 학부모와 자존감이 결여된 일부 선생의 결탁이 만들어낸 부정과 부패로 스승의 날에 학교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하는 희한한 한국 사회라 그 자체가 소중했다.

소셜미디어 빠르고 편리해도
인간의 향기 복제할 순 없어

 
꾹꾹 눌러쓴, 몇 군데 지우기도 한, 잘 쓰려고 애쓴 흔적을 지닌, 수줍음도 있는 편지는 어떤 그리움을 불러 오는 묘한 소통이었다. 문자·카카오톡·페이스북 등 현대사회의 소통을 지배하는 금방 읽고 답장하고 쓰고 지우는 소셜 미디어 소통과는 달랐다. 댐 건설로 살던 옛집과 앞마당 과일나무, 공부하던 교실과 뛰놀던 운동장이 물에 잠긴 실향 이주민들이 모여 사라진 고향 이야기를 나누는 그리움. 돌아가신 엄마의 포근했던 품, 야단이라도 치면 곧 위로해 주시던 아버지의 겉만 강하고 속은 연약했던 엄격.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라는 ‘옛사랑’(이문세의 노래) 같은 감회였다.
 
정보의 생산·가공·유통·이용·소비를 더 빠르고 더 편리하고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상업적인 이익과 결합하여 소셜 미디어를 포함하는 경이로운 소통수단을 만들어 냈다. 디지털혁명으로 불리는 이 변화는 현재진행형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음성, 몸짓, 표정 같은 비언어적 수단이나 말, 상형문자, 문자와 같은 언어적 수단이 지니는 시각·청각·공간·시간의 한계를 무너뜨리며 인간의 소통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4차 산업, 인공지능, 디지털 혁명의 이름으로 디지털정보기술의 개발에 국가의 명운을 건 경쟁을 벌일 정도이다.
 
그러나 인간의 소통에는 손 편지도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날로그 정보와는 다르게 모든 정보를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정보의 완전복제성(perfect duplicability)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이기에 의미를 지니는 편지의 가치를 항상 능가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쓰는 ‘즐거운 편지’(황동규의 시)를 대신할 순 없는 거다. 문자·사운드·화상·동영상 등 아날로그에서는 서로 합할 수 없는 정보를 하나의 텍스트로 융합하는 디지털 정보의 놀라운 복합성(multimodality)도 인간의 섬세한 감정과 독특한 향기를 대체할 수는 없다. 정보를 생산하면 고정적인 형태로 보관하는 아날로그와는 다르게 디지털 정보가 자랑하는 편집과 변환의 자유로움(manipulatability)이 아무리 편해도, 고치고 또 고치며 긴 밤을 지새운 손 편지의 간절함을 온전히 전할 순 없다.
 
손 편지의 소통은 디지털 과학이 채울 수 없는 인간적인 소통을 감당한다. 인간의 냄새가 담긴 소통을 기술이 대신하긴 불가능하다. 더 빠른 소통을 지향하는 디지털 시대라고 해도 사람의 숙고와 체취를 담은 느린 소통도 필요하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