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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일렁이는 마음을 따라서 …

중앙선데이 2018.06.23 01:00 589호 31면 지면보기
책 속으로
경애의 마음

경애의 마음

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창비

문단 기대주 김금희 첫 장편 발표
수수한 여성과 세 남자의 이야기
진지하되, 경쾌한 서술 눈에 띄어

시공간 가로지르는 독특한 구성
노사·남녀·양극화 갈등 뒤에 깔아

 
이전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의 후속작처럼 느껴진다. 뭔가 간절하면서도 뜨거운,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다. 평범하지 않은 제목도 마찬가지다. ‘한낮의 연애’ 만으로도 이상한 상상력이 자극되는데, ‘너무’라는 정도 부사를 갖다 붙이니 마음속에 그려지던 그림이 헝클어진다. 용인 허용치를 넘어서는, 무지막지한 시간대가 사랑에는 있다는 걸까. 이번 소설의 제목은 복고풍 이름 ‘경애’에, 성격 없이 중립적인 느낌의 ‘마음’을 연결했다. 누군가를 공경하고 사랑한다(敬愛, 실제로 소설에서 그런 의미로 한 번 사용된다)는 걸까, 아니면 사람 이름이 맞는 걸까.
 
결정적인 차이는 이번 소설이 장편소설이라는 점이다. 속물적인 비유라고 욕먹을지 모르겠지만, 요즘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우량주로 평가받는 79년생 소설가 김금희의 첫 장편이다. 물론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단편을 세공하고 잘 쓴다는 칭찬을 받다가, 장편에서 주춤하는, 이 땅의 많은 작가가 겪는 징크스를 무난 이상으로 떨쳐낸 느낌이다. 더 후한 평가를 줄 수도 있겠다. 출판사 창비는 책 광고에서 ‘2018년 최고의 기대작’이라고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가는 쓴다.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썼다.” 짧은 작가의 말이다. 장편을 완성할 수 있어 기뻤다는 얘기. 그리고 마음을 다했다는 얘기. 그러니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다. 마음을 다해 쓴 마음에 관한 이야기.
 
소설가 김금희가 달달하면서도 짠한 첫 장편소설 『영애의 마음』을 출간했다. [사진 신나라]

소설가 김금희가 달달하면서도 짠한 첫 장편소설 『영애의 마음』을 출간했다. [사진 신나라]

여기서 마음은 물론 사랑하는 마음이다(사랑 이야기라고 하지 않았나). 주인공도 역시 경애(경애는 사람 이름이 맞다). ‘너무 한낮’의 양희처럼 외모나 세련된 교양으로 어필하기보다 수수한 성격으로 상대를 사로잡는 여성인 경애를 둘러싼 세 남자, 은총(경애는 항상 은총을 E로 표현한다. 너무 간절한 대상은 차마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법이다)과 산주, 상수의 사랑 이야기인데, 주로 시공간을 가로질러 사랑 감정의 교환이 이뤄지기 때문에 삼각, 사각, 치고받는 눈에 보이는 싸움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경애의 마음이 누구에게로 흐르느냐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여기서 김금희의 참신성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수도 있겠다. 결국 사랑과 치정의 귀결은 누구를 선택하고 버리느냐, 행동을 동반하는 것일 텐데, 어떤 행동이든 행동 전에 먼저 움직이는 마음이 있었을 테니, 중요한 건 마음이다. 그렇다면 마음에 집중해보자. 그게 소설의 착목점이다.
 
이런 얘기가 사회적인 맥락에서 펼쳐진다(출판사가 역시 창비다). 회사의 부당 노동행위에 항의하는 노조의 집단행동과 1인 피켓 시위가 등장하고, 페이스북 여성 커뮤니티가 해킹당해 아마도 ‘한남충(한국남성 비하 발언)’들일 남성들의 공격에 맞선 여성 회원들의 사수전이 벌어진다. 베트남 경제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등장시켜 지구적 규모의 양극화 논리인 세계체제론을 연상케 하는가 하면, 결정적으로 세월호와 같은 어른들의 어이없는 탐욕에 의해 56명의 꽃다운 중·고등학생이 희생된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을 정면에서 건드린다. “밤이 깊어지듯이 그리고 동일하게 아침이 밝아오듯이” 남성지배에 억눌린 여성들, 호프집 화재의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의 연대는 차가운 인터넷 선을 타고 서서히 그러나 뜨겁게 이뤄진다.(319쪽)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김금희 소설의 특징으로 “경쾌한 진실함”을 꼽은 바 있다.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돼 있다. 너무 진지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소설 첫머리 상수의 인물 묘사에서 흥미를 느끼지 않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순하게 정리하기 힘든,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인데(우리는 사실 모두 단순하지 않다), 감정기복이 심한 상수는 걸핏하면 눈물을 쏟는가 하면 불만일 때 내뱉는 혼잣말도 가관이다. 김금희는 그 혼잣말이 “흐억어억 웅앵웅초키포키”로 들린다고 너스레 떤다. 전대미문의 의성어다. 아마 동갑일 텐데 직장 상사와 부하 관계로 만난 상수와 경애의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신경전도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 상하 관계가 실제로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생기 넘치는 설정이다.
 
상수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1981년 미국 영화 ‘아더(Arthur)’의 주제곡 ‘Best That You Can Do’의 가사가 흐른다. 달빛과 뉴욕시 사이에서 덜미 잡혀 어쩔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사랑에 빠지는 거라는 내용이다. 그 노래의 멜로디를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알콩달콩 짠한 사랑 이야기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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