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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넷플릭스라는 ‘괴물’

중앙선데이 2018.06.23 01:00 589호 34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인터넷에 연결되는 스크린을 갖고 있다. 우리의 시장은 거기에 있다. 전 세계의 취향, 전 세계의 시간.”
 

역대급 미디어 격변이 진행중
우리는 무슨 대응을 하고 있나

이 가공할 자신감은 누구의 것인가. 1997년 미국의 DVD 대여업체로 출발해 세계 최대의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회사이자 콘텐트 명가로 성장한 넷플릭스. 그 수장인 테드 사란도스 최고 콘텐트책임자의 말이다. ‘괴물’ 넷플릭스는 최근 시가총액이 1600억 달러(177조원)를 넘어 월트 디즈니사를 제치고 세계 최고 미디어 회사가 됐다. 미국 내 가입자 수는 5000만명, 전 세계적으로는 190여 개국 1억2500만명이다. 2030년 가입자 수는 3억6000만명으로 예상된다. 최근 디즈니가 21세기 폭스를 상대로 세기의 인수전을 펼치는 것도 넷플릭스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많다. 폭스에는 넷플릭스의 대항마 격인 동영상 스트리밍 회사 ‘훌루’가 있다.
 
넷플릭스는 ‘맞춤형 콘텐트’의 원조로 꼽힌다. 실제 시청행태를 추적해 가입자들을 2000개의 섬세한 ‘취향집단’으로 구분하는 맞춤제작으로 ‘하우스 오브 카드’ 등 히트작을 냈다. 올 한해 제작비가 80억 달러. 웬만한 재능은 다 빨아들인다. 최근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의 제작사와 손을 잡았다. 진출한 현지의 콘텐트에도 손을 댄다.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유재석 출연 예능 ‘범인은 바로 너’ 등을 제작, 공개했다. 무엇보다 TV 시청의 표준을 바꿨다. ‘전 시즌 동시공개’ 같은 새로운 콘텐트 소비 방식을 뿌리내려 지상파나 케이블TV, IPTV 같은 매체들을 구시대의 유물 쯤으로 몰아내고 있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다른 강자들도 속속 콘텐트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올해 아마존은 50억 달러, 페이스북과 애플은 10~15억 달러를 콘텐트 제작에 쓴다. 애플은 스티븐 스필버그에 이어 오프라 윈프리의 콘텐트에 투자했다. 아마존은 스포츠(영국 프리미어리그) 중계에도 나섰다. "역사상 가장 큰 미디어 재편기”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에 진출했고 가입자는 20~30만명 선이다. 아직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고전하는 편이지만, 젊은 층에 대한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안타까운 건 이런 대대적인 전환기를 맞는 우리의 대응이다. 글로벌 시장의 ‘역대급’ 지각변동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디어업계에서 눈에 띄는 어젠다란 ‘공영방송 정상화 혹은 적폐청산’ ‘공영방송 사장·이사회 선임의 시민참여’ 정도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과 관련한 방송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맞붙어 국회가 공전하는 일도 벌어졌다. 문화 콘텐트산업 전반으로 펼쳐보아도 ‘블랙리스트’ ‘남북교류’ 외에는 특별한 의제와 정책이 없다. 6개월 보류되기는 했지만 ‘주 52시간’ 근무가 시작될 경우 방송 제작현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았다.
 
주정민 전남대 교수의 말대로 “넷플릭스 같은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명확한 규제 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 사업자들은 고민에 빠져 있다. 넷플릭스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서비스를 확대해야 하는지, 아니면 전 세계적인 ‘넷플릭스화’ 현상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실체는 모호했고 결국은 국정농단의 먹잇감이 돼버렸지만 ‘창조경제’ ‘방통융합’을 내걸었던 전 정부와 비교해서도 미디어 콘텐트 산업의 큰 판을 읽는 눈과 비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세계는 대격변 중이고, 우리는 안방에서 글로벌 미디어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가 어떻게 이 파고를 헤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낼지, 정부가 과연 어떤 해법을 고민 중인지 궁금하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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