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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냉동고에서 깨어난 케인스가 놀란 이유

중앙선데이 2018.06.23 01:00 589호 35면 지면보기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북·미 정상회담과 미·중 간 무역전쟁에 가려있다 떠오른 이슈가 있다. 미국 워싱턴DC 씽크탱크에서 다시 불거진 과도부채 논쟁이다. 2018년 11월 미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프라 투자확대를 위해 미 정부가 무리해 국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부채 통해 정부지출 늘려도
성장에 좋다는 케인시안 주장에
케인스, 냉동됐다가 깨어난다면
100년 전 자신의 정책 프레임에
아직도 집착하는 모습에 놀랄 것
이젠 케인스를 떠나 보내 줄 때다

부채를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정부부채와 민간부채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신고전주의, 정부부채는 민간부채와 다르고 따라서 정부부채와 정부지출을 늘리는 게 성장에 좋다는 케인시안(Keynesian), 정부부채도 최적의 수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수준을 넘으면 단점이 장점을 압도한다는 현재 주류경제학 주장이 그것이다. 시각이 다르면 과도한 부채 문제에 대한 처방도 달라진다. 하버드대 라인하트와 로고프 교수는 정부부채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로 계산되는 정부부채비율에서 분자의 부채를 줄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케인시안 경제학자들은 분자의 부채를 줄이면 경기가 긴축되니 오히려 국재발행을 통해 재정지출을 늘림으로써 분모의 GDP를 키워 부채비율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이렇다. 과도부채 이슈에 관한 한 ‘이젠 케인스를 놓아주어야 할 때다’. 케인시안 주장에서 벗어날 때란 말이다. 케인스의 주장이 틀렸다기보다, 케인스가 이런 주장을 했던 100여 년 전과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당시는 부채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부채가 많아지면 인플레이션정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부담을 덜 수도 있었다. 정부 정책의 의도와 그 파급효과를 읽어낼 수 있는 국민들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정부가 모든 경제변수를 좌지우지하기에는 경제 규모와 복잡성이 지나치게 커졌다. 그동안 부채 문제를 계속 부채로 덮어왔기 때문에 부채가 과도해졌다.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다. 경제지식과 경험이 쌓인 국민들은 오히려 정부보다 앞서 움직인다.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케인스 시각은 미국·유럽연합(EU)·영국·일본 같이 국제통화를 갖고 있는 나라에 더 적합하다. 국제통화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기업으로 치면 은행에서 자금을 언제나 조달할 수 있는 신용라인이 있는 기업과 비슷하다. 한국은 국제통화를 갖고 있지 못하므로, 기업으로 치면 안정된 신용라인이 없어 그때그때 발로 뛰어 신용라인을 확보해야 하는 기업과 같다. 신용라인이 없는 기업은 부채 사용 전략이 확연히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우리가 과도부채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 이젠 케인스를 떠나 보내주자. 케인스가 냉동되어 있었다가 지금 깨어난다면, 100여 년 전에 제안한 자신의 정책 프레임에 아직도 사람들이 집착하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케인스의 시각은 달콤한 유혹이다. 정부부채는 민간부채와 다르고, 그래서 무한정 써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극단적인 유혹에 빠지기 쉽다. 최근의 연구결과들은 정부부채가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부채 증대를 통한 재정지출 확대가 경제성장을 유도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과도부채 하에서는 재정지출이 경제성장을 유발하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정부부채가 과도하면 오히려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고 시스템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금리상승 기조에 접어든 지금, 아직도 극히 낮은 금리를 이유로 들어 금리보다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쉬워졌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장은 정부부채를 과도하게 써도 된다는 논거로도 사용된다. 틀린 말이다. 낮은 금리, 특히 낮은 장기금리는 ‘원인’이 아니라 낮은 경제성장의 ‘결과’다. 성장률이 떨어지니까 그 결과로 금리가 떨어지는 것이라면, 금리가 낮은 상태에서 성장률만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열차가 들어오니까 새들이 날아가는 것이지 새들이 날아가니까 열차가 들어오는 게 아니다. 새들이 날아가는 것(낮은 금리)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새가 날아가는 것이 결과인데 원인으로 잘못 인식하면 우스꽝스러운 일이 생긴다. 열차가 빨리 도착하라고 막대기로 전선 위의 새들을 날아가게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경제정책도 이런 우를 범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최초’가 ‘최고’가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미 최초 재무부 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예외다. 최초의 재무부 장관이자 최고의 재무부 장관으로 지금까지 칭송받는다. 그의 생애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그는 대표적으로 국가부채를 민간부채와 동일한 차원에서 생각한 사람이다. 적절한 정도로만 사용해야 하고, 때가 되면 반드시 갚고, 국채신용도를 높이는데 경제정책 초점이 모아졌다. 조달금리가 영국보다 낮아졌고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경제패권을 쥐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한국경제도 한국판 알렉산더 해밀턴을 부르고 있다.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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