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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러·아·이’ 이변? 준비된 그들, 월드컵 판을 흔든다

중앙선데이 2018.06.23 00:02 589호 11면 지면보기
절대강자 없는 러시아 월드컵
크로아티아의 루카 모드리치(왼쪽)가 22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D조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 골문에 2-0을 만드는 골을 꽂아넣고 있다. 3-0으로 이긴 크로아티아는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니즈니노브고로드 EPA=연합뉴스]

크로아티아의 루카 모드리치(왼쪽)가 22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D조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 골문에 2-0을 만드는 골을 꽂아넣고 있다. 3-0으로 이긴 크로아티아는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니즈니노브고로드 EPA=연합뉴스]

지난 15일 개막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외국팀끼리의 경기만 취재했다. 이번 월드컵은 절대강자 없이 약체가 강호를 혼쭐 내는 대회다.

운 아닌 탁월한 전술로 실력차 좁혀
색깔 뚜렷한 팀에 전통 강호 혼쭐

랭킹 1위 독일 꺾은 멕시코 감독
히딩크 찾아가 한국전 전술 구상
스웨덴 감독 “한국 동영상 1300개”

이란은 극단적인 수비축구로 선전
어설프게 맞불 놓은 사우디는 참패

 
단순히 이변이나 혼돈이 아니다. 22일 기준 총 23경기에서 한 골 차 이하 승부가 18경기나 된다. 그만큼 대륙별, 국가별 수준 차가 확 줄었다. 공은 둥글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 결국 얼마나 철저하게 꼼꼼하게 준비를 잘 했느냐가 승부를 가르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멕시코 경기에서 멕시코 이르빙 로사노(22)가 첫 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멕시코 경기에서 멕시코 이르빙 로사노(22)가 첫 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인 게 멕시코(FIFA 랭킹 15위)가 F조 1차전에서 지난 대회 우승팀 독일(1위)을 1-0으로 꺾은 경기다. 멕시코는 독일의 양쪽 수비수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걸 간파했다. 수비를 탄탄하게 한 뒤 달라붙어 볼을 차단했다. 그러곤 번개 같은 역습 한 방으로 ‘녹슨 전차군단’을 멈춰세웠다.
 
바닥에 뭔가를 쓰면서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독려한 멕시코의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56·콜롬비아) 감독은 독일전을 마친 뒤 “6개월간 전략을 짰다”고 털어놓았다. 멕시코 선수들로부터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오소리오는 상대에 따라 팔색조 전술을 내놓는다. 48경기에 48개 다른 전략을 펼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멕시코 축구대표팀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과 경기에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오소리오 감독은 독일전에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다 기습적인 역습으로 0대1 승리를 챙겼다.   한국과 멕시코는 오는 24일 자정 멕시코와 조별 예선 2차전을 치른다. [연합뉴스]

멕시코 축구대표팀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이 지난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독일과 경기에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오소리오 감독은 독일전에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다 기습적인 역습으로 0대1 승리를 챙겼다. 한국과 멕시코는 오는 24일 자정 멕시코와 조별 예선 2차전을 치른다. [연합뉴스]

 
부상으로 26세에 현역에서 은퇴한 오소리오는 영국 리버풀 존 무어 대학에서 ‘사이언스와 풋볼’로 학위를 받았다. 당시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버풀 훈련장이 내려다 보이는 집을 빌려 훈련을 염탐할 만큼 지독한 학구파였다. F조 2차전 상대인 한국의 전력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올 초 거스 히딩크 감독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지난 18일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한국에 0-1 패배를 안긴 야네 안데르손(56) 스웨덴 감독도 철저한 연구 끝에 웃었다. 그는 “스카우트가 1300개의 한국 대표팀 비디오 클립을 가져왔고, 그걸 20분으로 압축해 선수들에게 보여줬다”고 털어놨다.
 
아이슬란드 수비진 5명이 1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러시아월드컵 D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10)를 막기 위해 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슬란드 수비진 5명이 1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러시아월드컵 D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10)를 막기 위해 주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시 PK 막은 골키퍼는 좀비영화 감독
 
약팀은 강팀과 격차를 인정하고 상대 전력을 면밀히 분석한다. 그러곤 철벽수비를 펼치다가 기습적인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과 비교해 역습은 더 정교해졌고, 수비벽은 더 두터워지고, 속도는 더 빨라졌다. 언더독의 생존 전략은 ‘선(先)수비 후(後)역습’이다.
 
월드컵 본선에 첫 출전한 아이슬란드(22위)는 지난 16일 모스크바에서 우승후보 아르헨티나(5위)와 1-1로 비겼다. 얼음성벽 같은 수비로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31)를 꽁꽁 얼렸다. 치과의사 출신 헤이미르 하들그림손(51) 아이슬란드 감독의 ‘두줄 수비’에 이은 ‘강력한 한 방’이 통했다.
 
아이슬란드 골키퍼 하네스 할도르손(34)은 후반 19분 메시의 페널티킥을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막았는데, 이 또한 준비된 전략이었다. 할도르손은 경기 후 “그 동안 메시의 페널티킥 사례를 조사했는데 그쪽으로 찰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할도르손은 광고 감독이자 좀비영화 감독으로 ‘투잡’을 뛰는데,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블록버스터급 경기를 연출했다.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33만8000명으로, 서울 도봉구 인구(34만6629명)보다 적다. 국토 80%가 빙하와 용암지대라서 축구 잔디가 많지 않고, 프로축구 선수는 자국의 화산 숫자보다 적은 120명에 불과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이란과 모로코의 경기가 15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이란 소자엘이 모로코 하리트와 볼다툼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 이란과 모로코의 경기가 15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이란 소자엘이 모로코 하리트와 볼다툼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아시아 국가 이란(37위)은 21일 카잔에서 ‘무적함대’ 스페인(10위)을 상대로 전원이 수비를 하는 ‘텐 백’을 선보였다. 스페인은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렸다.
 
이란은 비록 0-1로 패했지만 ‘늪 축구’는 위력적이었다. 이란의 ‘여우’ 카를로스 케이로스(65·포르투갈) 감독은 지난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숨 막힐 듯한 질식축구로 모로코를 1-0으로 꺾었다. 이란은 후반 추가시간 상대 자책골을 유도했다.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피시트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B조 1차전 스페인과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터트린 뒤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피시트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B조 1차전 스페인과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터트린 뒤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포르투갈도 지난 15일 소치에서 객관적 전력이 앞서는 스페인과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겼다. 실리축구를 펼친 뒤 최전방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레알 마드리드)를 활용했다. 호날두는 페널티킥·중거리슛·프리킥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개최국 러시아는 32개 참가국 중 FIFA 랭킹이 최하위인 70위다. 하지만 지난 15일 사우디아라비아를 5-0으로 대파했고, 20일 모하메드 살라(리버풀)가 버틴 이집트를 3-1로 제압했다. 매 경기 선수들이 총 115㎞ 이상을 뛰고, 미리 합을 잘 맞춘 유기적인 플레이로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후반전 러시아 아르템 주바가 팀 세번째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후반전 러시아 아르템 주바가 팀 세번째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러시아 선수들 매 경기 총 115㎞ 이상 뛰어
 
반면 사우디는 원래 역습을 추구하는데, 감독 교체 이후 전술에 혼란을 겪었고, 러시아를 상대로 맞불을 놓다가 0-5 대패를 당했다. 나이지리아 또한 역습도 압박도 아닌 어설픈 전략으로 자멸하면서 크로아티아에 0-2로 무릎을 꿇었다.
 
러시아 월드컵 현장에서 만난 김환 JTBC 해설위원은 “과거 월드컵에서 몇몇 이변이 나오긴 했지만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강팀이 잘했다. 약팀을 만났을 땐 압도하는 경기도 많았다”며 “하지만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사우디를 제외하고는 팀간 격차가 크지 않고, 한 골 차 승부가 많다.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 연구를 많이 하고 나와 강팀과 격차를 줄인 분위기다. 약간의 운이 따른 이변이라기보다는 탁월한 전술로 실력 차를 좁힌 이상적인 케이스가 많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소치·로스토프나도누=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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