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레이스 켈리가 애용 ‘알함브라’ … 50년 동안 사랑받는 네 가지 이유

중앙선데이 2018.06.23 00:02 589호 16면 지면보기
알함브라 목걸이를 한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 [사진 반클리프 아펠]

알함브라 목걸이를 한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 [사진 반클리프 아펠]

프랑스 보석 회사 반클리프 아펠은 1968년 행운을 상징하는 네 잎 클로버 모양 주얼리 ‘알함브라’ 컬렉션을 선보였다. 모로코와 스페인 남부 알함브라 궁전 같은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아랍풍 타일에서 영감을 얻었다. 기존의 하이 주얼리(원석이 크고 많이 세팅된 특징을 가진 고급 보석)보다 일상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주얼리였다.
 

122년 된 보석회사 반클리프 아펠
확장성 지닌 단순·보편적 디자인
시대 초월 세계인 누구나 알아봐

‘낮에 하는 주얼리’ 컨셉 처음 제시
여성들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대응

장인이 옛 방식대로 15단계 수작업
“작은 흠도 없게 엄격한 품질 관리”

일반인이 체험하게 발상의 전환
보석학교 열어 주얼리 강의·워크숍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알함브라 컬렉션은 출시되자마자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대 유명 인사와 패션 애호가들이 알함브라 롱 네크리스를 착용했다. 체인을 여러겹 둘러 화려한 스타일을 연출하는 게 유행이 됐다. 특히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는 70년대 다양한 공식, 비공식 행사에서 옐로 골드, 산호, 오닉스 등 여러 소재를 사용한 알함브라 목걸이를 착용했다. 일반 여성들도 일상복에 착용하는 주얼리로 알함브라를 선택했다.  
 
그레이 마더 오브 펄, 핑크 골드, 다이아몬드로 만든 알함브라 귀걸이. [사진 반클리프 아펠]

그레이 마더 오브 펄, 핑크 골드, 다이아몬드로 만든 알함브라 귀걸이. [사진 반클리프 아펠]

그로부터 5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알함브라는 반클리프 아펠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컬렉션이다. 반세기 동안 매년 새로운 컬렉션이 출시됐다. 이처럼 강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알함브라 탄생 50주년 축하 행사가 지난달 모로코 도시 마라케시에서 열렸다. 중앙SUNDAY가 국내 신문 중 유일하게 초대를 받았다. 엘바디 궁전 등 시내 곳곳에서 지난 50년간 출시된 알함브라 컬렉션을 전시하고, 보석 장인들이 세공 시연을 했다. 설립 122년 된 기업의 50년 넘은 디자인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가 궁금했다. 알함브라 컬렉션과 반클리프 아펠의 핵심 경쟁력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보석 장인이 알함브라 팔찌에 광택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보석 장인이 알함브라 팔찌에 광택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① 디자인 알함브라는 동그란 꽃잎 네 개가 열 십자 모양으로 놓여 있는 단순한 디자인이다. 꽃잎 모양은 원석이나 진귀한 재료를 얇게 가공해 만들고, 테두리는 비즈(작은 구슬)를 세공해 두른다. 애플 아이폰처럼 단순함이 알함브라 최고의 미덕이다.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최고경영자(CEO)는 “단순한 디자인이 불멸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단순하다고해도 시대를 초월하는 현대적인 감각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욱 특별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알함브라 디자인의 또 다른 경쟁력은 보편성이다. 네 잎 클로버는 세계인 누구에게나 통할 보편적인 디자인 모티브다. 보스 CEO는 “서양에서는 누구나 잘 아는 모티브이고, 아시아에도 아랍 건축 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며 “중국과 한국 일본 등지에서도 자연과 꽃을 추상적인 형태로 자주 표현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극히 우아하고 여성적이지만 동시에 강렬하고 기억에 남는, 세계 어디에서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상징이다.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다. 오닉스(검정), 말라카이트(초록), 라피스 라줄리(파랑) 등 보석 원석과 금속 소재에 따라 다양한 컬러와 질감의 조합이 가능하다. 목걸이·팔찌·귀걸이·반지 등 다양한 제품으로 변형도 쉽다. 올해 반클리프 아펠은 알함브라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그레이 마더 오브 펄, 오닉스, 라피스 라줄리, 락 크리스탈 등 원석을 사용한 ‘빈티지 롱 네크리스, 브레이슬릿, 이어링’ 세트를 선보였다.  
 
 
골드 비즈 프레임에 원석을 세팅하는 과정. [사진 반클리프 아펠]

골드 비즈 프레임에 원석을 세팅하는 과정. [사진 반클리프 아펠]

② 혁신 불과 50년 전만해도 여성들은 낮에는 하이 주얼리를 착용하지 않았다. 값비싼 원석이나 고급 세공 기술이 들어간 하이 주얼리는 주로 이브닝 파티나 특별한 날에 착용하는 제품이었다. 60년대 후반 패션과 사회 전반에 대변혁이 일어났다. 1968년은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미국에서 반전 학생 시위가 고조되던 때였다. 문화 예술계에서는 비틀스가 10번째 앨범 ‘비틀스’를 발매했고, 피에르 가르댕과 입 생로랑 등 고급 맞춤복(오트 쿠튀르) 디자이너들은 기성복(프레타포르테)을 내놓기 시작했다. 독립적이고 활동적인 일상을 즐기는 여성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반클리프 아펠은 이 같은 시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낮 시간을 포함해 언제 어디에서나 착용할 수 있는 ‘데일리 하이 주얼리’라는 컨셉을 제시한 것이다. 보스 CEO는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하이 주얼리가 어떤 방식으로 시대에 대응해 나가는지가 중요했다”며 “누가 처음인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같은 변화의 물결에 참여한 첫 주자가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알함브라 컬렉션은 하이 주얼리를 특별한 순간에만 착용하거나 수집하는 오브제가 아니라 여성의 삶에서 매일 쓰일 수 있는 일상적인 제품으로 바라보게 했다. 격식을 차린 수트는 물론 캐주얼한 의상에 매치해도 어색하지 않은 하이 주얼리가 탄생한 것이다.  
 
 
 
네 잎 클로버 모양 보석에 체인을 연결한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네 잎 클로버 모양 보석에 체인을 연결한다. [사진 반클리프 아펠]

③ 장인 정신 알함브라 컬렉션은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제작 과정은 하이 주얼리 업체로서 보유한 전문 기술을 토대로 완성된다. 저마다의 전문 기술을 보유한 보석 세공사, 주얼러, 원석 세팅 장인, 폴리싱 전문가들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해 각각의 작품을 만든다. 옛 방식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장인의 손으로 주얼리를 완성한다.
 
첫째 관문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다. 반클리프 아펠이 가장 선호하는 마더 오브 펄 소재를 예로 들어보자. 마더 오브 펄은 조개껍데기 안쪽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소재다. 은은한 무지갯빛 광채를 반사시켜 온화함, 자애로운 자연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행사장에서 세공 시연을 보인 한 장인은 “아주 작은 흠도 없는 고른 표면과 무늬, 최상의 광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부위를 찾기 위해 엄격한 품질 기준에 따라 선별한다”고 말했다.
 
1968년 출시된 알함브라 긴 목걸이. [사진 반클리프 아펠]

1968년 출시된 알함브라 긴 목걸이. [사진 반클리프 아펠]

꼼꼼하게 커팅한 뒤 폴리싱 과정을 거쳐 원석이 지닌 아름다운 분위기와 광채를 이끌어내거나, 금을 녹여 동글동글한 비즈 세팅에 적합한 형태로 가공한 뒤 주얼러의 수작업을 통해 디테일을 완성한다. 세팅 장인이 네 잎 클로버 모양 프레임에 가공된 원석을 세팅하면 마지막 폴리싱 작업을 통해 광채를 낸다. 15번 이상의 선별, 제작 및 품질 관리 단계를 거쳐 알함브라 모티브가 완성된다.  
 
알함브라 컬렉션은 반클리프 아펠에서 가격대가 비교적 낮은 ‘엔트리 레벨’ 제품이 많다. 보스 CEO는 “합리적인 가격이지만 제작 디테일에 기울이는 정성과 공정은 (고가의 하이 주얼리와) 다르지 않다”며 “알함브라를 착용했을 때도 하이 주얼리와 똑같은 가치와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테일 하나까지도 주의를 기울이는 섬세한 공예 기술과 품질이 하이 주얼리 작품에서 기대하는 바와 같다는 것이다.  
 
 
2018년 출시된 그레이 마더 오브 펄 소재 알함브라 목걸이. [사진 반클리프 아펠]

2018년 출시된 그레이 마더 오브 펄 소재 알함브라 목걸이. [사진 반클리프 아펠]

④ 발상의 전환 하이 주얼리 제작의 세계는 비밀스럽다. 원석 구매부터 선별, 세공법까지 각 업체가 고유의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클리프 아펠은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감추기보다는 하이 주얼리 제작이 얼마나 고도의 전문성과 집중력을 요하는 비즈니스인지 대중에게 알리는 길을 선택했다. 실제로 파리에 위치한 반클리프 아펠 공방에 들어가는 절차는 은행 대형 금고에 들어가듯이 까다로웠다. 문이 하나 열리고 방 안에 들어가면 뒷문이 닫히기 전까지 다른 문이 열리지 않는 구조였다. 비밀 유지 서약서도 작성해야 했다. 보안 사고를 우려해 ‘공방이 있는 정확한 위치는 기사에서도 공개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내부는 얼핏보면 제약회사 실험실 같았다. 흰색 가운을 입은 50 여 명 장인이 보석을 선별하고, 세공하고 세팅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1년 에 한 번 출시하는 컬렉션에 들어가는 보석류를 만든다. 컬렉션은 80~120개 주얼리로 구성된다.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최고경영자(CEO). [사진 반클리프 아펠]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최고경영자(CEO). [사진 반클리프 아펠]

공방은 비밀속에 숨긴 대신 2012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이 주얼리를 소개하는 보석 학교 ‘레꼴(L’ecole)’을 열었다. 레꼴은 아마추어, 주얼리 애호가 및 전문가에게 주얼리 예술사, 원석의 세계, 장인 정신을 주제로 한 교육 과정과 강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원석을 가공할 수 있는 보석학 워크숍, 주얼러의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주얼리 워크숍, 구아슈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미술사 교육을 하는 전용 교실 등이 마련됐다.
 
구아슈는 완성된 주얼리 디자인을 미리 손그림으로 그려내는 기술이자 도안을 말한다. 최종적으로 완성해야 할 주얼리가 어떤 모습인지 제작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이 미리 알아보기 쉽게 만든 일종의 가이드 그림이다. 구아슈는 빛의 각도, 그로 인한 원석의 색깔 변화까지 모두 고려해 그리기 때문에 마치 주얼리 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다. 컴퓨터로 그릴 수도 있지만, 반클리프 아펠은 122년 전 방식을 고수한다.
 
레꼴에서 짧게 구아슈 그리는 경험을 해봤다. 마음과 달리 손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물감과 물 양 조절에 애를 먹었다. 실사 사진 같이 아름다운 보석 그림을 기대했으나 손에 쥔 건 선이 삐뚤빼뚤한 그림이었다. 각 교육 과정은 2~4시간 동안 진행된다. 사전에 신청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수업을 듣고 나면 주얼리에 대한 관심이 한층 커지고, 제작 공정 디테일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다. 그러다가 ‘하이 주얼리가 비싸긴 하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이보다 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은 없을 듯 싶었다.
 
마라케시(모로코)·파리=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