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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피해자가 검찰에 고소해도 수사는 경찰이 한다

중앙일보 2018.06.22 00:59 종합 5면 지면보기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담화 및 서명식’이 21일 오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검찰 사무의 최고책임자인 박상기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이 합의문에 서명하는 모습을 이낙연 국무총리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이 지켜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담화 및 서명식’이 21일 오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검찰 사무의 최고책임자인 박상기 법무부 장관(앞줄 왼쪽)이 합의문에 서명하는 모습을 이낙연 국무총리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이 지켜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정부가 21일 발표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최종 입법되면 국민이 수사기관(검찰·경찰)에서 수사나 조사를 받는 절차가 크게 달라진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40대 남성 A씨의 사례를 통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봤다.
 

수사 어떻게 달라질까
검찰 고소·고발 사건 경찰에 넘어가
피해자가 경찰 결론에 승복 못할 땐
서장에 이의 제기하면 검찰 재수사

A씨는 보름 전 이웃 주민인 30대 초반의 남성 B씨에게 폭행을 당했다. 분리수거를 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B씨에게 10여 분간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A씨는 B씨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 서울동부지검 민원실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A씨는 며칠 뒤 동부지검이 아닌 송파경찰서 형사과에서 “고소 사건을 배당받았다. 사건 내용을 확인하려고 하니 고소인 자격으로 경찰서에 나와 진술을 해 달라”는 안내를 받았다.
 
일반적인 고소·고발 사건의 경우 검사는 일선 경찰서에 사건을 내려보내 수사토록 지휘한다. 검찰이 직접 수사를 벌일 때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날 발표한 수사권 조정 합의문이 법률로 규정되면 검찰은 이 같은 폭행 고소 사건 등을 무조건 경찰에 수사토록 넘겨야 한다.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사건이 ▶공직자 비리 사건 ▶뇌물 등 부패범죄 ▶선거범죄 ▶사기 등 경제·금융범죄 등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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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고소인 자격으로, B씨는 폭행 혐의를 받는 피고소인 자격으로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담당 형사는 B씨에게 조사 전 ‘피의자 권리’를 고지했다. “앞으로의 조사·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법 위반이나 수사권 남용, 인권침해 등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이를 신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검찰이 사건 기록 등본을 송부 받아 경찰에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안내’다.
 
A씨에게도 새로운 내용이 고지됐다. B씨에 대한 경찰 수사가 ‘죄 없음’으로 결론날 경우 A씨가 취할 수 있는 ‘이의제기권’에 대해서였다. 담당 형사는 “경찰서장에게 이의 신청을 한 뒤 검찰에서 재수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 신청·청구 절차에도 변화가 생긴다. 경찰이 B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불합리하게 기각할 경우 경찰은 서울고검에 설치될 영장심의위원회(가칭)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A씨는 이런 과정을 거쳐 수사 결과를 통보받게 된다. B씨에 대한 폭행 혐의가 인정(기소 의견)돼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이후 절차는 지금과 달라질 게 없다. 하지만 경찰이 B씨의 죄가 없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 다만 검찰에 ‘불기소 결정문’과 사건기록등본을 통지해야 한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영장 신청이 없다면 검사는 이때 처음으로 사건 내용을 접하게 된다. 고소인인 A씨가 경찰의 불기소 결정에 동의하지 못할 경우엔 두 가지 구제 방법이 있다. 스스로 송파경찰서장에게 이의제기를 신청하거나 검사가 불기소 결정문 등을 건네받은 뒤 경찰 수사의 문제점이나 위법성 등을 파악해 재수사를 요청하는 방법이다.
 
이 같은 정부안에 검찰과 경찰은 모두 불만이다. 대검찰청의 한 간부는 “수사 지휘가 폐지될 경우 검찰이 사건 기록을 뒤늦게 보게 돼 빠르고 신속한 처리가 불가능해진다”며 “사건의 실체 규명이 지연되거나 아예 불가능해지면 결국 피해는 국민 몫이 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매년 50만 건 안팎에 이르는 고소·고발 사건 대부분을 경찰이 처리토록 한 것은 엄청난 업무 부담으로 돌아오게 돼 개별 사건에 대응하는 시간을 줄이는 경찰관이 많아질 것”이라며 “수사종결권은 수사 자료와 기록을 검찰에 넘기도록 규정해 놓고 있어 ‘무늬만 종결권’인 셈”이라고 말했다.  
 
윤호진·한영익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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