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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와 다시 살림 합친 엑스맨 … 최강 ‘콘텐트 군단’ 뜬다

중앙일보 2018.06.22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엑스맨, 어벤져스

엑스맨, 어벤져스

아이언맨·헐크·스파이더맨은 ‘어벤져스’ 팀원이다. 울버린·스톰·프로페서X는 ‘엑스맨’ 멤버다. 두 그룹은 형제다.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 마블 스튜디오다. 히어로 만화책을 펴내던 마블이 창조했지만 영화에선 따로 주인을 만났다. 마블이 경영난을 겪던 시절 여러 히어로의 판권을 여기저기에 팔아서다.
 

디즈니, 21세기폭스 인수 확정
히어로 판권 확보, 영화 제작 등
디즈니 79조원 베팅, 핵심 사업 강화
넷플릭스에 콘텐트 공급 중단 계획

아이거 CEO 몸집 불리기 행보 계속
“이번 인수가 너무 높아” 비판 나와
일부선 ‘승자의 저주’ 재연 우려도

본가인 마블에는 아이언맨이 남았다. 2009년 마블은 월트디즈니 가문이 됐다. 엑스맨은 21세기폭스의 품에 안겨 컸고, 헐크는 유니버셜픽처스에서 성장했다. 스파이더맨은 소니픽처스에서 자랐다.  
 
기울어진 가세 탓에 뿔뿔이 흩어졌던 형제자매가 한 지붕 아래 다시 모인다. 이미 마블은 별도 계약을 통해 스파이더맨과 헐크를 어벤져스 영화에 출연시켰다. 이번엔 양자로 팔려갔던 엑스맨이 돌아오며 다시 한 가정을 꾸리게 됐다. 엑스맨과 어벤져스의 가족 상봉이 성사된 건 미디어·콘텐트 업계의 빅딜 덕분이다.
 
마블을 소유한 월트디즈니는 20일(현지시간) 21세기폭스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인수가는 주식과 현금을 합쳐 713억 달러(약 79조원)다. 컴캐스트가 가세하며 과열됐던 인수전에서 디즈니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작업에 나섰던 디즈니의 손에 21세기폭스는 손쉽게 떨어질 듯했다. 기류가 변한 것은 지난 12일 미국 법원이 AT&T의 타임워너 인수·합병(M&A)을 승인하면서다. 미국 법무부가 반독점 규제를 이유로 M&A에 제동을 걸었지만 법원이 AT&T의 손을 들어줬다.  
 
킬러 콘텐트 확보를 위한 합종연횡을 모색하던 미디어 업계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컴캐스트가 21세기폭스 인수전에 가세했다. 디즈니와 컴캐스트는 호가를 높여가며 치킨 게임을 벌였다.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디즈니가 650억 달러를 부른 컴캐스트를 제치고 21세기폭스를 품에 안았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디즈니가 인수하는 21세기폭스의 자산은 영화 사업, TV스튜디오, 케이블, 국제TV사업 등 4개 분야다. 영화사인 21세기폭스와 22개 지역 스포츠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케이블 방송이 포함됐다. 매각 대상에서 제외된 폭스뉴스와 폭스 방송네트워크,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뉴 폭스’라는 언론 기업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디즈니와 21세기폭스의 결합은 콘텐트 강자의 등장을 예고한다.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와 ‘겨울 왕국’ ‘스타워즈’ ‘아이언맨’에 21세기폭스의 ‘아바타’ ‘엑스맨’ ‘심슨가족’까지 막강한 콘텐트 라인업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콘텐트 강화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 확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훌루를 사실상 손에 넣었다. 21세기폭스는 훌루의 지분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다. 훌루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이 공고하게 버티는 인터넷 스트리밍 시장에 진입할 교두보다.
 
아이거 CEO

아이거 CEO

디즈니가 훌루를 완전히 손에 넣으며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지각변동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전략에 차질이 생긴 곳은 넷플릭스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에 콘텐트 공급을 중단하고 훌루에서 독점적으로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2019년까지 디즈니의 신작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 계약을 맺고 있다. 이후 디즈니가 훌루를 통해서만 독점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면 넷플릭스는 마블과 관련된 캐릭터를 사용한 오리지널 콘텐트를 제작할 수 없게 된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콘텐트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21세기폭스를 놓친 컴캐스트도 속이 탄다. 블룸버그는 “컴캐스트가 콘텐트 강화를 위해 소니픽처스나 스카이 등의 인수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디즈니가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컴캐스트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수가격을 너무 높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디즈니 르네상스를 연 로버트 아이거 최고경영자(CEO)의 통 큰 베팅이 이번에도 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다.
 
2005년 디즈니 CEO에 오른 아이거는 스토리 텔링을 사업 중심에 두고 콘텐트 라인업 구축 작업에 매진했다. 이를 위해 공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드림웍스에 맞서기 위해 2006년 픽사를 74억 달러에 인수했다. 2009년에는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40억 달러에 사들였다. 당시 마블은 주요 작품인 스파이더맨과 엑스맨의 저작권을 소니픽처스와 21세기폭스에 넘긴 채 아이언맨과 토르 등 B급 히어로만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팥소 없는 찐빵’을 사 왔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2012년에는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등을 만든 루카스필름을 41억 달러에 손에 넣었지만 새로운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 없는 탓에 M&A 쇼핑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비난의 화살 속에도 우직하게 버틴 아이거의 선구안에 보답하듯 마블이 대형 홈런을 쳤다. 2012년 개봉한 ‘어벤저스’는 전 세계에서 15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인수금액의 37.5%를 한꺼번에 거둬들였다. 2015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20억 달러의 이익을 거뒀다.
 
21세기폭스를 손에 넣은 아이거의 전략이 또 한 번 성공을 거둘 것인지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그는 20일 “21세기폭스와의 결합으로 더 매력적인 콘텐츠를 제작해 전 세계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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