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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전교조 교육감에게 진정성을 묻는다

중앙일보 2018.06.21 01:50 종합 28면 지면보기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문교부가 전국 교육청에 요상한 공문을 내려보냈다. 제목은 ‘전교조 교사 식별법’. 참교육을 내걸고 창립한 전교조 색출 명령이었다. 다음은 대표적인 식별요령. “촌지 받지 않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상담 많이 하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자율성·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 학부모 상담 자주 하는 교사….”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었다.
 
전교조가 ‘태풍의 눈’이 되는 데도 보수 교육계는 아둔했다. 수십 년간 독차지해온 아랫목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던가. 전국 교육감 직선제가 전면 시행된 2010년까지는 그런대로 버텼다. 10명이 당선됐다. 전교조 출신은 두 명(강원 민병희, 광주 장휘국)뿐이었다.
 
보수 정부에서 전교조는 거칠었다. 반정권적이고 편향적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 특히 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온 산(교육)을 붉게 물들이는 한 마리 해충(害蟲)”이라며 전교조를 경멸했다. 2013년엔 법외노조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8명이 당선됐다. 친전교조 인사 5명을 합하면 13명이었다. 전국교육감협의회장이던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박근혜는 ‘공포(공교육 포기)’ 대통령이다”고 공격했다. 누리과정, 국정 역사교과서,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긴장감이 팽팽했다.
 
그런 전교조는 이번 선거에서 날개를 달았다. 노조위원장 출신인 장석웅(전남교육감)씨를 비롯해 뼛속까지 전교조인 10명이 교육청을 접수했다. 친전교조 인사를 더하면 실제론 14명이다. 이들은 정시 축소와 수시 확대, 수능 자격고사화는 물론 북한 수학여행까지 공약했다. 그래도 선택받았다. 대한민국 교육의 아이러니다.
 
그 원인은 얼치기 보수 교육계가 제공했다. 게으른 탓에 통일·민주시민, 인권, 양성평등 교육 등 시대 흐름에 둔감했다. 제 잘났다는 몽상적 후보, 요행과 떡고물이나 바라는 꼰대가 득실댔다. ‘보수=태극기’ 낙인이 지워질 리 없었다. 3곳(대구·경북·대전)만 겨우 살아남았다. 궤멸적 참패였다. 직선제 탓만 할 일이 아니다. 우화 속 독수리처럼 스스로 부리를 부러뜨리고, 발톱과 낡은 깃털을 뽑아내는 사즉생(死卽生)의 환골탈태가 시급하다.
 
7월 1일부터 신(新)전교조 교육감 시대가 열린다. 중앙·지방 정부 모두 파란색이다. 견제 장치도 없다. 교육감들은 요직에 전교조를 대거 기용할 것이다. 법외노조 철회도 기정사실인 양 기세등등하다. 외고·자사고 폐지 페달도 밟을 것이다. 교육부가 맞장구 쳐주니 말이다. 걱정인 건 교육감들의 가면이다. ‘내로남불’이 한둘이 아니다. 4년 전엔 남의 자식(고승덕 후보 딸), 이번엔 박선영·조영달 후보의 분열 덕을 본 조희연 서울교육감만 봐도 그렇다. 두 아들이 명덕·대일 외고를 나왔는데도 외고·자사고 폐지를 외친다. 3선의 장휘국 광주교육감은 어떤가. 아들이 과학고를 거쳐 법대에 들어갔는데도 특목고가 적폐란다. 제 자식은 엘리트 교육의 ‘꽃길’ 깔아주고, 남의 자식은 평둔화(平鈍化) ‘자갈길’로 내모는 위선이 놀랍다. 경쟁 모르는 ‘행복한 바보’ 만드는 게 참교육인가.
 
향후 4년간 전교조 교육감은 대한민국 초·중·고 교육을 뒤흔들 것이다. 물론 보수 교육의 적폐는 도려내야 한다. 그렇다고 글로벌 트렌드인 자율경쟁과 수월성 교육까지 갈아엎는 건 또 다른 적폐다. 하나만 부탁하고 싶다. 문교부 공문의 교사를 교육감으로 바꿔 2018년판 ‘전교조 교육감 식별법’을 만들어 보시라. 29년 전 참교육이 새록새록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육감’은 어떤가. 제 자식처럼 아이들을 귀히 여기면 될 일 아닌가. 평균 득표율 45%, 전체 유권자의 27%(투표율 60% 적용)만이 선택한 전교조 교육감은 진정성의 시험대에 올랐다. 부모 마음, 양 날개 교육으로 진정성을 보여주길 바란다. 과도한 기대인가.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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