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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세상] “잠 한 번 편히 못 자도 내 아이니까” 엄마는 아파도 참았다

중앙일보 2018.06.21 00:54 종합 18면 지면보기
7일 서울 노원구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미역국에 들어갈 고기를 썰고 있는 정윤우군과 어머니 김씨. [사진 밀알복지재단]

7일 서울 노원구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미역국에 들어갈 고기를 썰고 있는 정윤우군과 어머니 김씨. [사진 밀알복지재단]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시각장애인복지관 요리수업의 메뉴는 미역국이었다. 김모(46)씨가 국거리용 소고기를 칼로 토막내려는 아들 정윤우(18·가명)군의 손을 감싸쥐며 말했다. “윤우야, 손을 구부려야지. 안 그러면 다쳐. 고기 안 움직이게 잡아, 그렇지!” 어머니 김씨의 도움을 받아 정군이 서툰 칼질로 고기를 잘랐다. 수업 내내 김씨의 신경은 온통 정군에게 쏠려있었다.
 

장애아동 돌보는 부모의 삶
온전히 자식에게 맞춰진 하루
활동보조인 지원으론 부족해
자살 고위험자로 분류된 적도
“아이 이해하고 함께 성장해야”

정군은 시각장애와 자폐장애가 있는 중복장애인이다. 가족은 김씨와 정군 둘 뿐이다. 매일 아침 정군을 차에 태워 이곳저곳 지역 복지관에 보내는 게 김씨의 일과다. 하루에 복지관을 세 곳 이상 돌 때도 많다. 1년 전 학교에 적응을 못해 자퇴한 이후 복지관은 정군이 사회와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다. 김씨가 자신의 몸이 아플 때도 꼭 정군을 복지관에 보내는 이유다.
 
김씨의 팔·다리 곳곳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재작년부터 정군이 밤마다 두통·어지럼증 등을 호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해 김씨도 함께 밤을 새웠다. 피로가 누적돼 면역력이 떨어졌고 혈관부종까지 왔다. 피곤할 때마다 이렇게 두드러기가 올라온단다. 병원은 잘 가지 못한다. 1시간 정도 정군이 혼자 참여할 수 있는 복지관 수업이 있는 날, 서둘러 병원 치료를 받거나 친정에 갔다오는 등 급한 볼일들을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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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비롯해 장애인 아들·딸을 키우고 있는 부모 세 명을 만났다. 마침 청와대 인근에서는 최근까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발달장애인의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며 약 두 달간 천막 농성을 벌였었다. 이번만큼은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을 돌보는 부모의 삶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화는 하면 할수록 부모의 이야기에서 자꾸 아이의 이야기로 옮겨 갔다. 그만큼 부모의 삶은 철저히 ‘자식’에게 맞춰져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정군은 바로 앞에 있는 문턱 하나 제대로 넘기가 어렵다. 돌봐줘야 할 사람이 늘 필요해 김씨의 휴일은 거의 없다. 활동보조인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에 118시간이 전부다. 부족도 하거니와 정군과 같은 중증 중복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김씨는 “중증 장애인과 경증 장애인 사이의 급여 차이가 크지 않아 활동보조인들은 이왕이면 경증 장애인을 맡고 싶어 한다”고 털어놨다.
 
따로 경제 활동을 하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초수급비와 수당을 합쳐 월 100만원으로 모자가 살아간다. 밀알복지재단으로부터 월 20만원씩 재활치료비도 지원받지만 살림은 늘 빠듯하다. 김씨는 “내 몸은 점점 쇠약해지는데 윤우를 언제까지 돌볼 수 있을지 생각하면 막막해진다”며 “활동보조인 제도 등이 더 확대돼 윤우가 아주 작은 단순노동이라도 꾸준히 사회와 소통하며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고 했다.
 
한국장애인부모회 수석부회장인 박태성씨와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은 딸 규리양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진 박태성씨]

한국장애인부모회 수석부회장인 박태성씨와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은 딸 규리양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진 박태성씨]

◆비장애 형제들에게도 상처 남아=한국장애인부모회 수석부회장인 박태성(50)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 딸 규리(11)양이 있다. 뇌병변 장애인 박양은 항상 누워있다. 누군가 앉혀줘야 잠깐 앉고, 간단한 감정표현 정도가 가능하다.
 
딸의 장애를 알게 된 건 태어나고 사흘이 지났을 때였다. 사업을 하던 박씨는 딸의 양육을 위해 일을 내려놨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아내 혼자 돌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젖병을 빨지 못하는 박양은 콧줄로 우유를 줘야 했는데, 우유 한 통을 먹이는 데에만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애를 트림까지 시키고 나서야 1시간 남짓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쉬고 나면 또 우유를 먹여야 했다. “낮에 집사람이 아이를 돌보고 밤에 쓰러지면 그때부터 제가 아이를 맡아 새벽에 우유 먹이고 재웠어요. 그 새벽에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고등학생인 둘째 아들은 한창 어릴 때 처가댁에 맡겼다. 당시 둘째는 가족 그림을 그릴 때 여동생은 꼭 빼고 그렸다. “부모님이랑 못 사니까 동생이 너무 미웠나봐요. 6년 전쯤 두 아들에게 제가 진심으로 사과했어요. 그러니까 애들이 그때 힘들었던 일들을 털어놓더라고요. 마음이 아팠죠.”  
 
박씨는 딸이 태어난 뒤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한국장애인부모회에 가입해 10년 넘게 활동해왔다. 다른 장애인 단체들과 함께 발달장애인법 제정 운동에 앞장서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박씨는 “부모들의 노력으로 3년 전 발달장애인법이 통과됐다. 이후 장애인 고용 사업장이 많아져 상대적으로 경증인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 기회는 늘었지만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거주지인 인천에서 ‘인천가족사랑’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는 “‘힘드니까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적으로 그나마 여유가 있는 부모들이 앞장서 협동조합을 꾸리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공동체 안에 공간을 만들고, 그 보호망 안에서 장애인의 자립을 최대한 도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딸 민정양과 과 계단을 오르고 있는 김서현씨. [사진 밀알복지재단]

딸 민정양과 과 계단을 오르고 있는 김서현씨. [사진 밀알복지재단]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지난 5일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인 서울 일원동의 밀알학교 교실에서 김서현(41)씨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밀알학교 바리스타학과 보조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그에게는 발달장애인인 딸 민정(14·가명)양이 있다. 현재 대구사이버대에서 행동치료를 공부하는 김씨는 “딸이 있어 아이들을 더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씨가 처음부터 딸을 위해 공부하고, 학교에서 봉사를 한 건 아니었다. 딸이 자폐 판정을 받은 건 생후 18개월 무렵. 연년생인 둘째는 생후 6개월인 때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당시 의사가 나도 우울증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했어요. 자살 고위험자로 분류돼 무기력하게 생활했어요.”
 
가정에는 불화가 찾아왔다. 수면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를 원망했어요. 하지만 딸은 그렇게 태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고, 둘째도 그런 상황을 원한 게 아니었잖아요. 가족의 고통을 마주하고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태도를 바꾸려 노력한 뒤 공부에 빠졌다. 딸이 성인이 된 이후의 조언해줄 이가 없어 직접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땄다.
 
자살 결심까지 했던 김씨는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발달장애 부모들에게 “엄마가 건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아이로 인한 스트레스, 가족과 이웃,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가 있다. 이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한 자신만의 해소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장애에 대해 공부하며 아이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친 김씨는 수업을 마친 딸과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 학교를 나섰다. 민정양은 어느덧 엄마만큼 자라있었다. 
 
홍상지·여성국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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