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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화중심에 박경리 동상 들어섰다

중앙일보 2018.06.21 00:41 종합 23면 지면보기
박경리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크로파체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총장, 권대훈 조각가, 메딘스키 장관, 김영주 이사장,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우윤근 주 러시아 대사, 이규형 한러대화 조정위원장(왼쪽부터).

박경리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크로파체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총장, 권대훈 조각가, 메딘스키 장관, 김영주 이사장,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우윤근 주 러시아 대사, 이규형 한러대화 조정위원장(왼쪽부터).

20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러시아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동양학부 교정. 초록색 2층 건물들에 아늑하게 둘러싸인 초록 정원 사이로 『토지』를 쓴 소설가 박경리(1926~2008) 선생의 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에 한국인 동상, 특히 한국 문학가의 동상이 세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토지』 작가 동상 제막식 열려
상트페테르부르크대 교정에 세워
민간단체 ‘한·러 대화’ 주도로 성사

이번 동상 건립은 2010년부터 양국의 교류협력을 추진해온 민간 단체 ‘한·러대화(조정위원장 이규형 전 러시아 대사)’가 내놓은 주요 성과 중 하나다. ‘한·러대화’는 2012년 러시아 작가동맹으로부터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의 동상을 서울에 건립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동상은 2013년 11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 세워졌고,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제막식에 참석해 축하연설을 했다. 이에 한·러대화는 러시아에 동상을 세울 한국 작가로 격동의 근현대사를 대하소설로 풀어낸 선생을 선정했고, 이번에 결실을 보게 됐다.
 
동상은 권대훈 조각가(서울대 미대 교수)의 작품이다. 책을 두 손으로 펼쳐 든 선생의 모습을 135cm의 입상으로 표현했다. 받침대에는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는 문구를 한글과 러시아어로 새겼다. 선생의 시 ‘삶’에서 인용한 말이다. 경남 통영시 박경리기념관과 하동군 박경리문학관,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도 같은 동상이 있다.
 
제막식에서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어머니의 모습을 이곳에서 보니 더욱 감개무량하다”며 “러시아에 한국 문학이 알려지고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축사에 나선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한민국 문화계의 예술성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박경리 선생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인연도 있다”고 덧붙였다.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러시아 문화부 장관은 “한국에서 시인 장관이 와서 축하를 해주어 더욱 기쁘다”라며 “양국 간 문화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는 1724년 세워진 러시아 최고(最古)의 명문대학으로,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했다. 푸틴 대통령의 모교이기도 하다. 특히 동상이 세워진 동양학부 건물은 121년 전 한러 관계가 시작된 뜻깊은 장소다. 고종황제 말기인 1897년부터 20년간 한국인 통역관 김병옥이 세계 최초로 이곳에서 한국어 강의를 했다.
 
니콜라이 크로파체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총장(‘러·한대화’ 러시아측 조정위원장)은 “『토지』 1부 1권이 2016년 말 러시아어로 번역 출판됐고 현재 10개 주요 대학에서 문학수업 시간에 박경리 선생에 대한 특강과 강좌가 진행중”이라며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 ‘토지’를 더빙해 러시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규형 조정위원장은 “동상을 이미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박경리 선생 세미나 개최 및 관련 책자를 여럿 출간하며 때를 기다려왔다. 5년간의 노력이 이렇게 좋은 결실을 보게 되어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치하했다.
 
이날 행사에는 우윤근 러시아 대사, 민병욱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한·러대화 허승철 사무국장과 석영중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블라디미르 키릴료프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부시장, 알렉산드르 베르쉬닌 러시아 대통령도서관 관장 등 양국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글·사진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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