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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 ‘평화 이후’ 한반도에 지분 챙기기 바쁘다

중앙일보 2018.06.21 00:38 종합 26면 지면보기
[김영희의 퍼스펙티브] 한반도 지정학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3월부터 6월 석 달 사이에 세 번이나 중국으로 달려가서 시진핑과 회담한 것은 한반도의 새로운 사태 전개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김 위원장이 권력 승계 후 중국의 만류도 듣지 않고 핵 실험을 네 번 하고 미국 본토에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두 발을 발사하여 북·중 관계는 긴장되었었다. 친중파로 알려진 장성택의 처형은 이 긴장의 불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 김정은이 중국이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하러 갔다. 회담 전에 두 번, 회담 후에 한번 시진핑을 만나 트럼프와의 회담 결과를 공유하고 앞으로 비핵화 과정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중국의 역할과 중국에의 영향을 논의했다. 시진핑은 김정은에게 조언도 하고 주문도 했을 것이다. 북한의 후견국으로서의 중국의 지위가 새삼 확인됐다. 독일 통일에서의 소련의 경우처럼 중국의 참여와 동의 없이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한국과 미국에 보낸 것이다.
 
김정은과 시진핑 밀착의 먼 배경은 한국전쟁 때의 북·중 관계의 기억이다. 1950년 10월 18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은 전쟁 수행에 41억 달러의 예산을 썼다. 1949년에야 장제스의 국민당군을 타이완으로 패퇴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중국에는 마른 걸레를 짜는 전쟁 비용이었다. 소련의 스탈린은 약속과는 달리 9억5000만 달러만 중국에 지원했다.
 
뿌리 깊은 북·중 밀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이 입은 인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총 30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참전하여 전상자 110만, 전사만 15만2000명이었다. 그러나 소련의 공식 문서는 중공군의 전사자를 100만 명으로 기록하고 있다(엘리자베스 스탠리 『평화에의 길』). 전사자 중에는 마오쩌둥의 아들도 포함된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걸치는 시기, 북·중 관계가 혈맹에서 보통국가 관계로 격하되고 중국에서는 북한을 비호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국이 김정은의 5월 7~8일 중국 방문 때 처음으로 혈맹관계라는 용어를 다시 사용했다. 마오쩌둥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순망치한)면서 당시 공산 중국의 지배 연합(ruling coalition)의 주요 구성원이던 총리 겸 외상 저우언라이, 재무상 천윈, 중남부 지역군 사령관 린뱌오, 동북(만주)지역을 독점 지배하던 가오강 등의 반대를 뿌리치고 중공군의 압록강 도강 명령을 내렸다. 스탠리는 가오강의 만주 독점 지배를 분쇄하는 것이 마오쩌둥의 한국전 참전 동기의 하나라고 본다. 그때는 타이완으로 후퇴하지 않은 수십만의 국민당군 잔존 세력들이 중국 각지에서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중공군의 한국전 참전은 16세기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파병한 역사의 재판이다. 전쟁 후 조선은 조선을 다시 세우는 것을 도와준 명나라에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갚는다면서 선조와 인조는 대륙의 명청(明淸) 세력 교체에도 불구하고 친명 정책을 펴다 청나라에 의한 병자호란의 참혹한 보복을 당했다.
 
중국의 대북 지정학적 계산에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깔렸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두 나라 관계가 소원하고 때로는 긴장된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임진왜란 이래의 혈맹관계가 등장한다.
 
비핵화에서 평화협정과 북·미 수교, 그리고 북한의 정상국가화는 국제적인 규범에 맞은 외교를 해 본 경험이 없는 북한에는 힘든 과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김정은에게는 조언자와 기댈 언덕이 필요하다. 중국은 평화가 정착된 한반도가 미국과 일본의 해양세력 쪽으로 경도되는 것을 방지하는 예방 조처를 해 둘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신뢰를 쌓고 김정은이 성공적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하자 한반도에 이해를 가진 나라들이 김정은에게 러브콜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마음이 급하다. 그는 김정은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매듭짓고 북·일 국교 정상화를 서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한반도 평화 과정에서 소외시키는 ‘저팬 패싱’만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일본, ‘북방 버스’에 올라 타려 해
 
북한의 풍계리 핵 실험장의 선제적 폐쇄, 곧 있을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와 미국의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보면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안보·경제적 보상 조치는 과속이라고 할 정도의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말로는 비핵화 조치 완료 전에는 대북 제재를 완화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관련 조처를 하는데 보조를 맞추어 제재를 조금씩 풀어나갈 것이다.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의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도 그리 먼 훗날의 일은 아닐 것이다.
 
북·미 관계 개선에 한발 앞서 남북관계는 큰 걸음을 떼고 있다. DMZ의 비무장화 같은 군사적인 위험 요소 제거, 8월 이산가족 상봉, 7월 평양의 남북 농구를 시작으로 스포츠와 문화 교류가 속도를 낼 것이다. 대북 국제 제재가 완화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도 재개될 것이다. 이런 조치들은 그것 자체로서도 의미가 크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북한에 복수의 경제 클러스터를 만드는 남북경제협력 프로젝트의 실현이다. 거기에는 북·중·러 접경 지역의 공동 개발 프로젝트도 포함된다. 대륙 진출의 교두보 확보라는 숙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은 이 ‘북방 버스’를 놓칠 수가 없다.
 
안보상으로도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 후의 동북아의 지정학적 대전환에 신경이 날카롭다.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중단에도 불안을 느끼는 일본은 한반도 평화 정착 후 미국을 대리한 중국 견제의 부담을 일본 혼자 떠맡을 가능성을 크게 우려한다. 거기다 주한미군 철수라도 거론되면 일본은 주일 미군 기지를 두고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지금의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에는 동북아의 양대 강국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사태를 막아주는 완충지대다. 일본이 북한의 핵과 중거리 노동 미사일의 위협에는 민감하면서도 한반도의 현상 변경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군사적으로 굴기하는 중국을 한반도라는 완충지대 없이 직접 상대하는 사태가 두렵기 때문이다.
 
러시아, 한반도 변경에서 지분 확보 노려
 
푸틴의 러시아는 중국과 제휴하면서 한반도의 변경에서 러시아의 지분을 확보하려고 한다. 6월 22일 모스크바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는 푸틴은 머지않아 김정은을  만날 것이다. 문 대통령은 푸틴이 심혈을 기울이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 동방포럼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면서 동방포럼과 북·중·러 접경 지역 경제개발특구의 연계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동방포럼은 남북한과 중·러의 정상들이 양자 또는 3자 회담을 연쇄적으로 여는 자연스러운 기회가 될 것이다. 이 포럼의 활용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러시아의 긍정적인 역할을 유도하는 방법의 하나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은 서양 해양세력을 유라시아 대륙으로 몰고 왔다. 조선은 단군 이래 처음으로 대륙 진출을 노리는 해양세력의 대륙 전초기지가 됐다. 고려 때 원나라가 고려를 앞세워 일본을 침공한, 대륙세력이 해양세력을 넘본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 전쟁 때 적화통일의 위기를 넘긴 한국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분단선(fault line)이라는 반갑지 않은 역할을 했다. 평화가 정착되어 남북이 평화 공존을 하면서 사실상의(de facto) 통일을 누리는 날이 오면 주변 4강은 대외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는 남북한을 제 편에 끌어들이려는 치열한 외교전을 벌일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그의 후임 대통령들은 4개의 공을 한꺼번에 굴리는, 절대 쉽지 않은 곡예와 같은 저글링(juggling) 외교를 펴야 한다.
 
문 대통령, 비핵화 디테일 조율 과제
 
이런 날이 오는 것은 오히려 경사다. 싱가포르 합의는 개념적인 것, 트럼프의 표현으로는 포괄적인 것이다. 김정은·트럼프 합의에는 합의문에 나오지 않은 많은 문제가 들어 있다. 비핵화 이행을 위한 고위 실무급 협의에서 문 대통령이 말 한 수많은 디테일 속의 악마가 불쑥불쑥 나타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마실 가듯 판문점·평양·워싱턴을 왕래하면서 협상 길의 장애물들을 치우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가 주고받은 직통 전화도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계해야 한다. 그는 북한은 악이고 악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파괴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골수 네오콘이다. 그런 사람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이라도 내뱉으면 협상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과정에서 체험했다.
 
반(反)평화, 현상 유지 지지 세력은 또 있다. 군·산·정 복합체다. 군·산·정 복합체는 한국이 무기 시장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들은 19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졌을 때 동유럽을 새로운 무기시장으로 확보하기 위해 나토(NATO)의 동방 확대를 선동해 실현했다. 결과 러시아와 미국·유럽의 관계에 지금의 긴장 관계를 초래했다. 방산업체들은 미국 50개 주 중 48개 주에 무기 생산 시설들을 전략적으로 분산시켜 놓았다. 하원의원 435명 중 방산업체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의원은 20~30명에 불과하다. 군도 마찬가지다. 주한미군에는 14명의 장군이 22개의 별을 달고 있다. 22개나 되는 별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는 미군 고위 장교는 없다.
 
이렇게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은 사방이 지뢰밭이다. 문·김·트럼프 라인과 그 아래 실무급들에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개척한다는 역사적인 사명감이 중요하다. 특히 시진핑은 평화 이후의 지분 챙기기에 앞서 김정은을 상대로 비핵화에 방해되는 말을 삼갈 것을 촉구한다.  
 
김영희 전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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