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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문화 교류는 하루 이벤트지만 경협은 365일 일상”

중앙일보 2018.06.21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신한용 회장은 ’경협은 70년간 벌어진 견해차를 좁히는 데 있어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이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우상조 기자]

신한용 회장은 ’경협은 70년간 벌어진 견해차를 좁히는 데 있어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이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우상조 기자]

“생산·납품이란 단어의 뜻도 몰랐어요. 이렇게 만들면 (고객) 클레임 들어온다는 걸 북한 노동자들이 이해하는 데 2년이 걸렸어요. 경제 원리를 이해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 거예요.”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장
한반도 순풍 아직 성과로 안 이어져
입주했던 기업인들 마음 타 들어가

‘신경제 지도’ 시나리오는 좋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실패 반복 안해

외국 회사 북 진출 땐 한국 찬밥 돼
그전에 경협 충분히 진전시켜야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기중앙회 7층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건넨 명함엔 ‘황해북도 개성시 봉동 개성공업단지’란 개성법인 주소가 충남 예산 신한물산 본사 주소와 함께 적혀 있었다. 그는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언젠가 재가동 될 걸 알기에 명함을 새로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망과 그물 등 어구를 생산하는 신한물산은 2007년 개성공단에 뒤늦게 입주했다. 그해 10·4 선언에 서해에 남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신 회장은 “개성공단에서 만든 어망으로 남북이 공동 어로 작업을 하면 그것만큼 보람된 일이 없을 것 같아 주변 반대에서 불구하고 개성공단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에 이어 지난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개성공단 재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사무실 벽에는 ‘한반도 신경제 지도 개성공단 정상화로부터’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신 회장은 “한반도에 순풍은 불고 있지만, 경협인들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다”며 “한반도 신경제 지도까지 나왔지만, 아직까진 손에 잡힌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폐쇄 1년을 맞은 2017년 2월 경기도 파주시 도라 전망대에서 촬영한 개성공단의 모습. [연합뉴스]

폐쇄 1년을 맞은 2017년 2월 경기도 파주시 도라 전망대에서 촬영한 개성공단의 모습. [연합뉴스]

철도 연장부터 러시아 가스관 연결까지 다양한 남·북 경협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신 회장은 신중했다. 그는 개성공단을 주택 1층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1층 문이 아직 열리지도 않았는데 2층, 3층 집을 짓겠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30년 경협 역사를 꺼냈다. 그는 “경협이 북한을 세계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30년 경협 역사를 놓고 보면 타이틀만 바뀌었을 뿐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없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정권에서 북방정책을 가장 먼저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혁신적이었죠. 군사정권에서 경협을 제일 먼저 꺼낸 거니까. 남쪽이 자본과 기술을 대고, 북한이 노동과 토지를 대는 식이었어요. 그게 개성공단까지 이어졌어요. 현 정부의 신경제 지도는 그보단 한 걸음 정도 나아갔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북한도 자본을 대라는 겁니다. 남쪽에서 원자재 가져가서 제품 만들어 다시 가져오는 식이 아니라 북한 내수 시장에 상품을 내다 파는 경제 공동체가 되면 북한도 되돌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북한 노동자들의 눈빛에서 개성공단의 성공 가능성을 엿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3년 개성공단 에피소드를 꺼냈다. “2013년 (공단이) 닫혔다가 6개월 만에 열렸어요. 오랜만에 공단에 갔는데 다들 ‘왜 이제 왔냐’고 해요. 그들의 눈빛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읽을 수 있었어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터뷰는 2016년 개성공단 폐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갔다. “정부에서 철수 시한을 딱 하루 줘서 트럭에 물건을 주렁주렁 달아 내려왔잖아요. 그때 북한 노동자들이 상품을 날라줬어요. 가져가면 그게 돈이 되는 걸 아니까. 하나라도 더 가져가라고 하더라고요.”
 
지난해까지 ‘종북 기업’이란 말을 들었다는 그는 경협이야말로 남-북의 이해 폭을 넓힐 수 있는, 통일에 꼭 필요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70년 동안 서로 다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말만 같지 사고 체계가 완전히 다르다”며 “스포츠나 문화 교류는 하루 이틀 이벤트에 그치지만, 경협은 365일 이어지니 그만큼 사고방식의 차이를 빠르게 좁힐 수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글로벌 기업이 북한에 진출하면 남북 경협에 따른 남측 기업의 입지도 좁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이 문을 열고 글로벌 기업이 진출하면 한국 기업들이 찬밥이 될지도 몰라요. 북한이 한국 기업을 꼭 잡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그렇게 되기 전에 남·북 경협을 충분히 진전시켜야 해요. 실제로 2015년 무렵부터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북한 (정부) 관계자들도 노동자들을 못 붙잡았어요. 다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피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북한 개방이 본격화되면 머지않아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중기부, 북한 창업 지원=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0일 언론 인터뷰에서 “경협이 본격화하면 북한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창업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장관은 “남북 경제 협력 사업은 북한의 비핵화 등 조건이 이뤄지고서 본격 추진될 것”이라며 전제하며 “북한에서도 창업에 성공하면 얼마든지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중국 방문 시 베이징 중국과학원을 찾아 가상현실(VR) 헤드셋 기기 등을 체험했다. 홍 장관은 “중국이 중관춘을 조성하기 전 우리나라에 와서 배워갔는데 세계적인 기업을 탄생시켰다”며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성찰할 것은 하고 개선·발전할 것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한용(58) 개성공단기업협회장
1993년 중국으로 건너가 산둥성 룽청(榮城)에서 어망 관련 사업을 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에 어구 생산 공장을 세웠다. 연 매출 120억원을 올렸으며, 2016년 개성공단 철수 전까지 북한 종업원 230명을 고용했다. 지난해 4월부터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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