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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마을 앞에 야적한 라돈침대 1만7000개, 도로 가져가라"

중앙일보 2018.06.19 21:01
“독재정권 시대도 아니고. 정부가 밀어붙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데….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던가요?”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야적장에 쌓여 있는 라돈침대 매트리스. 주민들은 당장 매트리스를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야적장에 쌓여 있는 라돈침대 매트리스. 주민들은 당장 매트리스를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당진 송악읍 고대리 동부항만 '라돈침대 야적장' 가보니
당진 주민들 "한마디 상의 없이 힘으로 밀어붙였다" 정부 성토
환경단체 "주민 수백번이라도 설득해 합리적 처리방안 찾아야"

19일 오전 10시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라돈침대 야적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정부를 비판했다. 국무총리실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16일 자치단체와 주민 몰래 라돈침대 1만6900여 개를 이곳에 야적한 일을 지적하면서다.
 
야적장 입구에 천막을 설치한 뒤 사흘째 차량 진입을 막고 있는 주민들은 이날 오전 ‘방사능 라돈침대 즉시 반출하라’ ‘대진침대 불법 해체작업 결사반대’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농성에 참여한 주민은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주민들은 “한 개의 매트리스도 더는 들어올 수 없다. 이미 쌓아놓은 매트리스도 모두 반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부 주민은 “(정부는)나를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서다.
19일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라돈침대 야적장 앞에서 주민들이 천막을 설치하고 추가 반입을 저지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19일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라돈침대 야적장 앞에서 주민들이 천막을 설치하고 추가 반입을 저지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본지는 이날 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과 함께 라돈침대 아적장을 둘러봤다. 전날까지 열려 있던 야적장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차량은 물론 사람의 출입도 불가능했다. 침대는 5~6개씩 100m 넘게 길게 쌓여 있었다. 일부는 비닐이 벗겨진 상태였다.
 
유종준 사무국장은 “라돈침대에 대한 불안감보다 정부의 안일하고 폐쇄적인 업무방식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며 “쉽게 풀 수 있는 사안을 더 꼬이게 한 게 바로 정부”라고 강조했다.
 
유 국장은 빠른 처리보다는 안전한 처리를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속한 처리’ 주문을 정부가 ‘속도전’으로 받아들여 주민설명회 등 사전 협조 없이 야적을 강행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른 곳으로의 반출이 어렵다면 수백 번이라도 주민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도 말했다.
19일 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왼쪽)이 충남 당진시 송악읍 라돈침대 야적장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정부의 부실한 대응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19일 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왼쪽)이 충남 당진시 송악읍 라돈침대 야적장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정부의 부실한 대응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당진시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라돈침대를 이송한 트럭 350여 대와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방사능 검사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운전자와 트럭은 침대를 내려놓은 뒤 야적장에서 300m가량 떨어진 곳에 설치된 방사능측정기에서 검사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가 몸에 좋더라’ 하는 엉터리 과학에 대한 맹신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필요 이상으로 공포가 번지는 것도 사회가 건강하지 못한 증거라고 지적한다.
 
당진항 야적장에 쌓인 ‘라돈침대’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는 지나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모나자이트를 쓴 대진침대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은  기체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실내에 방사성 기체가 쌓일 경우에는 인체에 피폭될 우려가 있지만, 야외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야적장에 쌓여 있는 라돈침대 매트리스. 주민들은 당장 매트리스를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야적장에 쌓여 있는 라돈침대 매트리스. 주민들은 당장 매트리스를 당장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가 짧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반감기란 특정 방사성 물질의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모나자이트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의 성분은 통칭으로 라돈(Rn)이라 불리지만 세분류 상으로는 라돈(Rn-222)과 토론(Rn-220)이다.
 
라돈의 반감기는 3.8일, 토론의 반감기는 51.5초에 불과하다. 특히 토론은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반감기 때문에 1m만 떨어져도 피폭 수치가 뚝 떨어져 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라돈침대’를 사용한 사람들이 문제가 됐던 것은 하루 10시간 이상 침대에 누워 생활하는 것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관계자는 “모나자이트에서 나오는 방사성 기체의 주종은 토론이며 라돈은 일부”라며 “당진항에 쌓인 매트리스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대부분은 포장 비닐이 벗겨졌다고 하더라도 야적장의 담벼락조차 넘을 수 없다”고 말했다.
19일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라돈침대 야적장 앞에서 주민들이 천막을 설치하고 추가 반입을 저지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19일 충남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라돈침대 야적장 앞에서 주민들이 천막을 설치하고 추가 반입을 저지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매트리스의 외피와 스프링 등을 분리해 내고 스펀지와 속 커버에 도포된 모나자이트는 털어낸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아직 최종 결정이 나지 않았지만 여기서 분리한 속 커버와 스펀지 등은 소각하고 모나자이트는 땅에 묻을 가능성이 크다.
 
원안위 안전소통담당관실 측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라돈 매트리스 건은 방사성 폐기물로 볼 수 없다”며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에 따라 별도의 폐기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진=신진호 기자, 최준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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