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도 교과서에서 간디·네루가 사라진다? 모디 정부 '교과서 다시쓰기' 논란

중앙일보 2018.06.19 06:24
집권 5년 차를 맞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정부가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교과서 다시쓰기’를 시도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 포스트(WP), 일본 아사히신문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힌두교 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집권당의 치적을 홍보하는 내용이 새로 발간되는 교과서에 연이어 실리고 있다. 
 

라이벌 국민회의파라는 이유로 간디·네루 관련 내용 삭제
힌두교중심주의 주창, 무슬림·기독교인 '외부자'로 규정

18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인도 서부 라자스탄주의 공립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2016년부터 인도의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의 이름이 삭제됐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의 암살에 관련된 내용도 빠졌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오른쪽)와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 [중앙포토]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오른쪽)와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 [중앙포토]

역사적 인물로 꼽히는 간디와 네루 관련 내용이 새 교과서에서 사라진 것은 이들이 현 모디 총리가 이끄는 여당 인도국민당(BJP)의 라이벌 정당인 제1야당 국민회의(INC)파의 일원이었기 때문. 2014년 총선에서 인도국민당에 크게 패한 국민회의는 현재 네루의 증손자인 라훌 간디(48)가 이끌고 있다.
 
간디 암살 관여 힌두교 극단주의자, 교과서에 실려 
 
간디의 사망과 연관된 내용이 교과서에서 삭제된 것은 그를 암살한 인물이 힌두교도였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모디 총리는 인도국민당의 모체이자 힌두 민족주의 극우단체인 ‘민족봉사단(RSS)’ 출신이다. 간디를 암살했던 나투람 고드세도 RSS 소속이었다. 
 
모디 총리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간디를 비판하지 않았으나 RSS측은 “간디도 네루도 이슬람교에 저자세로, 힌두교인들을 괴롭혔다”고 비난해왔다. 
 
반면 새로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비나야크 다모다르 사바르카르(1883~1966)다. 그는 힌두교 원리주의에 입각한 ‘힌두교 국가’를 주창한 인물로 간디 암살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도 국민 약 13억 명 중 힌두교도는 80%를 차지하며 무슬림은 15% 정도다. 강력한 전국 정당을 갖지 못한 무슬림들은 종교간 화합을 내세우는 국민회의파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중앙포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중앙포토]

2014년 집권한 모디 총리는 힌두교 중심주의를 적극 내세우며 무슬림과 기독교인들을 ‘외부인’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교과서 다시쓰기는 이런 시도의 일환이다. 인도 헌법은 모든 종교를 평등하게 여기는 ‘세속국가’의 기치를 내걸고 있으나 인도국민당 소속 각료 중 일부는 이러한 헌법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타지마할은 인도 문화를 대표하지 않는다"  
 
연방제 국가인 인도에서 교과서 내용은 주 정부가 결정한다. 라자스탄주 외에도 인도국민당이 집권한 여러 주에서 교과서 개정이 진행 중이다. 모디 총리가 과거 주 총리를 지냈던 구자라트주에서는 RSS의 단체곡을 교과서에 실어 학생들에게 교육한다.  
 
세계 유산에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우타르 프라데시주는 지난해 제작한 새 관광 가이드북에서 대표 관광상품이었던 타지마할을 뺐다. 타지마할은 17세기 이슬람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아내를 위해 지은 무덤이다. 힌두교 승려 출신의 요기 아디티아나트 주 총리는 그동안 “(이슬람 제국의 유적인) 타지마할은 인도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다.   
지난 달 16일 라마단 금식시간이 끝난 것을 기념해 타지마할에 모인 무슬림들. [EPA=연합뉴스]

지난 달 16일 라마단 금식시간이 끝난 것을 기념해 타지마할에 모인 무슬림들. [EPA=연합뉴스]

모디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무슬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인도 마이너리티위원회의 자훌 칸 위원장은 “모디 정권은 힌두교도야말로 ‘본래 인도 사람’이며 무슬림과 소수 종교인들을 ‘이방인’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과반수 획득을 위해 소수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길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델리 대학의 산자이 스리바스타바 교수(사회학)도 “모디 총리는 고대 인도와 힌두교인들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세계 무대에서 인도의 존재감 향상이나 경제 성장이 이런 정부의 행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모디의 역사 왜곡, 나치 연상시켜"
 
교과서는 모디 총리의 업적을 홍보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WP에 따르면 인도 매체 인디아 익스프레스가 인도 전국 25개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모디 정부에서 추진한 주력 정책을 소개하는 내용이 다수 발견됐다. 인도 가정에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하는 ‘클린 인도(Clean India)’ 프로젝트나, 급여 지급 체계를 디지털로 전환한 ‘디지털 인도(Digital India)’ 등이다. 
 
WP는 인도 교과서에 실린 이런 내용들은 정부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로 일관, 학생들의 정치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역사 교과서 집필에 종사했던 인도의 역사학자 아르준 데브(82)는 “모디 정부의 역사 다시 쓰기는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유대인을 박해했던 나치를 연상시킨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가 쓴 역사책은 모디 정부 출범 후인 2015년 출판을 금지 당했다. 인도 독립운동사에서 힌두교 우월주의자들의 활약에 대한 언급이 적었던 것이 출판 금지의 이유로 추정되고 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