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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아마추어를 위하여

중앙일보 2018.06.19 01:43 종합 28면 지면보기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창가에 방치했던 나무 의자의 틈새가 흉하게 갈라지고 칠도 벗겨졌다. 햇빛에 지나치게 노출된 탓이리라. 눈에 거슬리면서도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버리자니 아깝고 고치자니 비용이 많이 들고. 그러던 차에 우연히 듣게 된 친구의 셀프 인테리어 무용담. 어렵지 않으니 일단 해 보라나. 그래서 용기를 내었다. 직접 사포질을 하고 칠을 고르게 펴서 바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바니쉬 칠까지 끝냈을 때 느꼈던 만족감이란. 내 눈에는 그 어떤 명품가구보다 근사하다. 이런 게 DIY의 매력인가보다.
 

목공도 노래도 자기가 직접 하는 즐거움이 최고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아마추어가 되기를

노래 역시 자기가 직접 부를 때가 최고다.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노래하는 재미를 따라가기는 어렵다. 1조 원이 훨씬 넘는다는 국내 노래방의 매출 규모가 이를 증명한다. 최초의 음악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악보시장도 직접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아마추어들이 없었으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술적으로야 16세기 초에 악보를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인쇄 기술이 개발되었지만, 형편없이 작았던 직업 음악가들의 수요를 생각하면 손으로 사보하는 것이 더 저렴했을 테니까.
 
악보를 읽고 연주할 수 있는 아마추어의 등장은 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새로운 음악 장르를 만드는데 이들의 기여가 그만큼 컸으니까. 처음에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나타났던 아마추어는 그 후 중산층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음악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교양인의 필수적 덕목으로 여겨진 탓이다. 이들이 자기 나라말로 노래하는 것을 즐겼던 덕에 프랑스에서는 샹송이, 이탈리아에서는 마드리갈이 각각 고유의 장르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인기가 높았던 마드리갈은 2000개가 넘는 선곡집이 출판되었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오늘날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종종 실력이 형편없거나 초보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 본래 의미는 어떤 일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실력의 우열이 아니라, 어떤 일을 취미로 하는지 아니면 직업으로 하는지의 문제일 뿐이다. 대개는 프로가 아마추어보다 실력이 좋지만 아마추어들 중에는 프로 못지않은 음악적 재능이나 실력을 갖춘 경우도 없지 않다. 게다가 열정만을 놓고 보면 프로를 능가하는 아마추어가 얼마나 많은지.
 
요즘은 취미로 음악을 즐기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반주는 물론이고 디제잉과 작곡까지 가능한 기계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싼 가격은 차치하고라도 정확한 음감과 숙련된 기술이 없으면 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전통적 악기들과 비교하면 이제 누구나 아마추어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셈이다. 게다가 자신의 곡이나 연주 장면을 온라인 플랫폼에 올려 공유하면서 시청 회수가 많아지면 돈도 벌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그래서인지 유튜브는 참신한 아마추어 음악가들로 가득하다.
 
자기 직업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올라야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취미를 논하는 것이 때로 사치일지 모른다.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것이 냉혹한 현실이니까. 그렇다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잘하는 일은 직업으로 하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라는 조언은 절묘한 타협안이다. 그래서 취업이 잘되는 길을 택하기는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도 그만큼 크다. 늦은 나이에 취미를 직업으로 바꾸는 일이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일상에서 실현 가능한 행복이야말로 힘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에너지가 아닐까.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아마추어가 되어볼 일이다. 프로라고 인정받지 못해도 좋고, 잘하지 못해도 좋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할까. 그리고 그것만으로 인생의 큰 후회 하나는 없어지지 않을까.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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