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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했던 미국 공화당, 생활 이슈 선점 … 레이건 때 꽃피웠다

중앙일보 2018.06.19 01:07 종합 10면 지면보기
미국의 보수 정치도 암흑의 시기가 있었다. 보수정당의 기치를 내건 공화당은 1860년대부터 1930년대 초까지 70년간 15명의 대통령 중 13명을 배출했다. 당시 미국의 자본주의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지만 양극화도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고 있었다.
 

미국 보수는 어떻게 수렁서 탈출했나
대공황, 닉슨 하야로 두 번의 위기
헤리티지재단 같은 싱크탱크 설립
작은 정부, 반규제·감세정책 앞세워

은퇴자들 따뜻한 지방 이사에 착안
남부 공략해 보수 텃밭 만들기도

허버트 후버(1929~33년 재임)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 정치인들은 보호무역의 장벽을 쌓아올리는 데 바빴고, 결국 세계 대공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공화당은 대공황에 대한 대처 미흡으로 긴 수렁에 빠졌다. 국민적 지지가 높았던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소수인종-유대인-이민자-노동자-농민으로 구성된 강력한 지지기반, 이른바 ‘뉴딜 라인’을 구축했다.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참신한 뉴딜 정책을 내건 민주당에, ‘과거의 영광’에만 의존했던 공화당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를 상징하는 숫자가 있다. 1936년 대선 당시 선거인단 확보 수는 ‘공화당 8명, 민주당 523명’이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의회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은 상원 82%, 하원 76.7%의 의석을 싹쓸이했다. 공화당은 33년부터 53년까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정권을 잡지 못했다. 좌파와 진보의 천국이었다. 공화당엔 말 그대로 ‘잃어버린 20년’이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화당의 2차 위기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74년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리면서 찾아왔다. 상대 정당에 대한 도청과 뻔뻔한 거짓말, 국민은 넌더리를 냈다. 닉슨의 사임 후 후임 포드 대통령이 이 사건을 사면하면서 공화당은 ‘도덕성의 위기’에 휘말렸다. 모두가 “보수와 공화당은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포기하지 않았다. 순간적인 위기 모면을 위한 주먹구구식 반대가 아니라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정교한 반박, 그리고 보수세력의 체계적 규합에 나섰다.
 
먼저 보수 지식인들이 ‘내셔널 리뷰’와 같은 잡지와 책을 통해 꾸준히 보수주의 사상을 전파했다. ‘바보들의 무리’란 조롱까지 받던 보수주의가 부활하는 사상적 기초를 정립한 보수의 정신을 집필한 사상가 러셀 커크는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를 6가지로 제시했다.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 ▶획일성과 평등주의 배격 ▶문명화 사회에는 질서와 위계가 필요하다는 믿음 ▶자유와 재산은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신념 ▶법률과 규범을 믿음 ▶급격한 개혁보다는 신중한 개혁 선호였다. 이 같은 보수의 정신을 일관성 있게 정립하기 위해 헤리티지재단 같은 싱크탱크도 이 무렵 생겨났다.
 
헤리티지재단 창립자인 에드윈 퓰너 이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70년대 워싱턴은 민주당이 백악관,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진보진영엔 브루킹스 같은 강력한 싱크탱크가 즐비해 브루킹스가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보고서를 (카터 대통령에게) 내면 며칠 뒤 카터가 그대로 발표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보수의 브레인’을 자처한 헤리티지재단은 이때부터 복지비용 삭감, 국방비 증액을 근간으로 하는 부국강병 노선을 개발했다. 또 “동성애와 낙태운동 등 진보좌파 ‘문화혁명’이 사회를 타락시키고 있다”며 그에 맞서는 보수 정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그 정책들을 ‘고루한 이미지’를 탈피해 ‘시대에 맞는 것’으로 포장하느냐였다. 이를 위해 보수진영은 대학생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공부 모임을 조직해 보수의 영역을 넓혀가도록 유도했다. 또 근본주의 신앙을 내세우는 복음주의자 등 각종 사회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진보주의자 낙선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쳤다. 한마디로 전국적인 ‘보수 운동(movement)’을 일으킨 것이다.
 
인구통계학 데이터를 활용한 전략 마련도 효과를 거뒀다. 72년부터 80년에 이르는 시기에 정년퇴직한 중장년층이 따뜻한 날씨를 찾아 남부지방으로 대거 이동한 점을 간파, 남부를 보수의 터전으로 삼는 데 성공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남부, 공화당은 북부가 텃밭이었다. 민주당과의 텃밭 바꾸기 전술, 일명 남부전략(Southern Strategy)에 성공한 공화당은 결국 82년 중간선거에서 남부지방인 플로리다주와 텍사스주에서 하원의석 4석과 3석을 추가로 얻으며 승리를 거둔다. 퓰너 이사장은 “정치적 사이클상 부침은 있는 법이다. 하지만 흐름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온다. 결국 중요하고 오래가는 건 이념과 아이디어”라고 강조했다.
 
보수 회귀의 최대 공헌자는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는 공화당의 오랜 정책개발의 결과물이었다. 작은 정부, 반규제와 감세를 골자로 한 1000쪽짜리 정책보고서 ‘리더십 지침’은 레이건 정부의 교과서가 됐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와 공화당이 내놓은 각종 아이디어들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진보는 이상론을 외치지만 보수는 ‘현실적 이슈’를 선점한다”는 이미지를 굳히게 했다. 실제로 레이거노믹스는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무기력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미국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일등 공신이 됐다. 게다가 소련과의 오랜 냉전에서의 승리는 미국을 유일한 ‘수퍼 파워’ 자리에 올려놓았다.
 
한때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으로 여겨졌던 미국의 보수정당이 부활에 성공한 것은 결국 ‘뜨내기 보수’가 아니라 일관성 있는 철학과 정신을 계속 논리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업데이트하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또 “사회보장 증가 등 순간적 혜택을 제시하는 진보정당보다 자유시장경제, 기업의 자유를 신봉하는 보수정당이 청년들에게 더 지속적인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며 과학적·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호소 전략이 청년층에 먹혀들어간 점도 큰 효과를 봤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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