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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사] #16. 몸에 좋은 집사는 쓰다…전할 수 없는 마음들

중앙일보 2018.06.19 00:00
글에서 수차례 언급했듯 나무는 체중관리 중이다. 다이어트 사료를 하루 65g씩만 먹고 있다. 다른 간식은 자제해야 한다. 참치 캔 따는 소리를 듣지 못한 지도 오래됐다. 부엌에서 냉장고 문이나 밀폐 용기 뚜껑을 여는 소리만 나도 혹시라도 저에게 먹을 걸 줄까 봐 후다닥 뛰쳐나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해”뿐이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감정도 눈치도 없지는 않다. 사람과 동물 간의 교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물며 매일 보는 주인과 반려동물 사이라면,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끈끈한 뭔가가 생긴다. 그렇지만 반려동물이 인간의 선한 의도를 모두 이해해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나무에게 하는 행동은 다 나무를 위해서인데, 나무가 이 사실을 알 리 없다.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방송작가인 루이스 C.K.가 초콜릿 먹은 반려견을 살려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한 토크쇼에 나와, 초콜릿 바를 삼킨 반려견의 입 안에 과산화수소를 들이부었던 이야기를 했다. 개나 고양이에게 초콜릿은 심장 독성 등을 발생시켜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음식이다. 영문도 모르고 이상한 액체를 삼켜야 했던 루이스의 개는 갈색 거품을 한 바가지 토하고 생명을 건졌다. 루이스는 그 순간 개의 눈빛에서 “우리 관계는 끝이야”라는 신호를 읽었다고 했다. 몇 년 전 박장대소를 하며 봤던 영상인데 이젠 남 얘기 같지 않아서 마냥 웃을 수가 없다.
 
나도 웬만하면 나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 사료는 먹다 지쳐 남길 때까지 그릇에 채워 주고, 입이 심심하다고 울 때마다 참치 캔이나 츄르도 주고 싶다. 내가 먹는 음식을 탐내면 까짓거 조금 나눠주고도 싶다. 목욕도 귀 청소도 시도만 하면 도망가니까 그냥 안 하고 넘기고 싶다. 병원 가기도 싫어하는데 굳이 안 데려가면 나도 편하다. 그럼 나무는 귀찮고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돼서 행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나무는 몰라도 나는 그 행동들의 유해함을 알기 때문이다.
 
달라는 대로 다 먹게 해주는 건 절대 사랑이 아니다. 고양이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다. 뚱냥이가 귀엽다고 마냥 살이 찌게 두었다가는 관절에 무리가 와 보행 장애가 생길 수 있다. 당뇨병·심장질환·호흡기질환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사람이 먹는 음식은 나트륨이 많아 대체로 유해하다. 특히 마늘·양파·부추, 포도·사과, 초콜릿 등은 절대로 먹어선 안 된다. 체중관리를 위해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도, 위험한 음식에 고양이의 발이 닿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집사의 역할이다.
 
발톱을 세워 나를 할퀴고 온몸을 비틀어 도망가는 나무를 붙잡아서라도 귀 청소는 해야 한다. 나무는 길냥이 시절 귓속에 진드기가 많았고 이 때문에 외이염이 심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소독약으로 귀지를 닦아줘야 한다. 귀 청소를 안 하면 가려움증이 심해져 발톱으로 긁다가 생채기가 나기도 한다.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야!” 매번 설명하지만, 나무는 들은 체도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은 귀 상태를 확인하고 심장사상충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심장사상충은 모기를 매개로 감염되는데, 고양이 감염은 극히 드물다. 수요가 적은 만큼 치료약물이 개발되지 않아 꼼짝없이 수술을 해야 한다. 우리집은 여름에 모기가 많고, 모기 사냥꾼이라고 해서 모기에 물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예방접종이 필수다. 나무가 병원 갈 타이밍을 눈치채고 냉장고 뒤에 숨더라도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이동 가방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병원에 다녀오면, 나무는 한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
 
좋은 집사가 되는 길은 이처럼 외롭고 고단하다. 매번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덤벼들어야 한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뒤엔 나무가 이대로 화를 풀지 않으면 어떡하나 불안해질 때도 있다. 과산화수소를 먹인 루이스 C.K.를 다시는 좋아하지 않았다는 그의 반려견처럼.
 
나무가 싫어하는 일의 끝판왕은 목욕이다. 목욕물을 닦아줄 틈도 주지 않고 욕실을 빠져나가 하악질을 해대는 나무를 보면 적어도 며칠은 나를 미워할 것만 같다. 그러나 너그러운 나의 주인님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뒤 이내 다가와 몸을 기대고 체온을 나눈다. 나를 용서하는 듯한 나무의 다정한 행동에서 어렴풋이 읽는다. “너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난 네가 좋아”라는 속삭임을. 뭐, 아니면 말고….
 
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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