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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7개월…'102번' 일상화된 지진에 익숙해진 시민들

중앙일보 2018.06.17 12:59
텐트 안은 비좁았다. 약봉지와 생수, 먹다 만 빵 조각이 누군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줬다. 행과 열을 맞춰 질서 정연하게 배치된 연분홍색 텐트들에 붙은 숫자는 이 ‘집’들의 주소였다.

 
14일 경북 포항시 북구의 흥해체육관에 지진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는 텐트들. 송우영 기자

14일 경북 포항시 북구의 흥해체육관에 지진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는 텐트들. 송우영 기자

 
14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의 흥해체육관. 지난해 11월 15일 ‘포항 지진’이 발생한 지 7개월 만에 찾은 체육관 안에는 아직도 240명의 ‘지진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었다. 체육관 벽에는 “많이 힘드시죠? 하지만 서로 배려하고 질서를 지킵시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반찬거리를 들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던 박모(77·여)씨는 지난해 지진 이후 계속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화장실 이용부터 잠자리까지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갈 곳이 없다. 아직은 괜찮은데 여름이 오면 너무 더워 잠을 못 잘까 봐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옆 텐트에 살던 사람이 여진이 느껴지니까 쓰려져 119구급대에 실려 가는 걸 봤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진이 올 때마다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 '포항 지진'으로 기울어진 경북 포항시 북구의 대성아파트. 송우영 기자

지난해 '포항 지진'으로 기울어진 경북 포항시 북구의 대성아파트. 송우영 기자

 
흔적으로 남은 지진, 일상이 된 여진
규모 5.4의 지진 이후 7개월간 포항시에는 규모 2.0이 넘는 여진이 102번 발생했다. 포항 시민들에게 지진이 일상화되고 있는 셈이다. 흥해읍에 사는 김모씨는 “여진이 올 때마다 흔들림을 느낀 적도 있고 느끼지 못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어쨌든 일상처럼 조금은 무덤덤하게 느껴진다. 불안하다고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하소연한다고 해서 여진이 멈추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왼쪽은 지난해 11월 지진 당시 한동대의 한 건물 외벽이 부서진 모습이고, 오른쪽은 15일 복구 공사가 끝난 모습이다. 송우영 기자

왼쪽은 지난해 11월 지진 당시 한동대의 한 건물 외벽이 부서진 모습이고, 오른쪽은 15일 복구 공사가 끝난 모습이다. 송우영 기자

 
지진 당시 진앙에서 가까워 피해가 컸던 한동대는 15일 대부분의 복구가 끝나 있었다. 무너졌던 건물 외벽이 다시 세워졌고, 강의실 내부에는 금이 간 곳을 보수한 흔적만 남았다. 한동대 학생인 전지원(24·여)씨는 “지난해 지진 당시에는 무섭다며 다른 도시로 떠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여진도 진동이 크게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은 무덤덤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왼쪽은 지난해 11월 지진 당시 대동고의 건물 외벽이 부서진 모습이고, 오른쪽은 15일 복구 공사가 끝난 모습이다. 송우영 기자

왼쪽은 지난해 11월 지진 당시 대동고의 건물 외벽이 부서진 모습이고, 오른쪽은 15일 복구 공사가 끝난 모습이다. 송우영 기자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장이었던 포항시 북구의 대동고 건물 외벽도 복구가 끝나 있었다. 지진 당시 벽돌벽이 무너지고 내부에 수많은 금이 갔던 곳이다. 여전히 깨져 있는 건물 입구 바닥과 균열들은 당시의 심각했던 상황을 말해줬다.  
 
경북 포항시 북구의 한 빌라는 최근 지진 대비용 보조 기둥을 설치했다. 송우영 기자

경북 포항시 북구의 한 빌라는 최근 지진 대비용 보조 기둥을 설치했다. 송우영 기자

 
포항시 북구 양덕동의 한 빌라 기둥 옆에는 보조 기둥이 더해졌다. 세입자 A씨는 “건물 주인이 세입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지난해 발생한 지진은 포항의 여기저기에 많은 흔적들을 남겼다”고 말했다.  
 
“땅은 흔들렸어도 우리의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진 이재민들이 이주한 '11.15 지진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에는 32개의 주택이 있다. 송우영 기자

지진 이재민들이 이주한 '11.15 지진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에는 32개의 주택이 있다. 송우영 기자

 
포항시 북구 옥성리에는 지진 이재민들이 모여 사는 임시 주택 단지가 만들어졌다. 32개의 조립식 주택들로 이루어진 조그만 마을이다. ‘11.15 지진 희망보급자리 이주단지’라는 팻말은 이 마을의 정체성을 잘 설명해줬다. 포항시가 ‘아름다운동행’‘대교’ 등의 지원을 받아 마련한 이 단지는 흥해 지역의 지진 이재민 중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힘든 사람들에 한해 희망을 받아 지난 4월 입주가 마무리됐다.  
 
지진은 계속되고 있지만 많은 포항 시민들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포항의 유명 어시장인 죽도시장에서 물회를 파는 이모(52·여)씨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기사도 나오던데, 체감상 그 정도는 아니다”며 “지진 직후 잠시 그랬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관광객이 많이 보이고 물회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주택 거래가 뚝 끊기고 상권이 활력을 잃었다는 것도 진앙에서 가까워 피해가 컸던 흥해 지역의 일부에 해당하는 얘기다”고 덧붙였다.
 
“괜찮다더니 다시 위험하다고…주먹구구식 지진 행정 바꿔야”
거리에서 만난 다수의 포항 시민들은 포항시가 주택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절차가 엉터리였다고 비판했다. 김모씨는 “지진 이후 안전하다고 해서 주민들이 다시 들어갔던 한 아파트는 주민들이 지하층이 거의 무너진 것을 보고 알리자 포항시가 다시 위험 판정을 내리고 전부 대피하라고 했다”며 “이렇게 체계 없는 행정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또 “포항시의 의뢰로 안전성을 진단하는 업체는 특별한 도구도 없이 문밖에서 대충 눈으로 판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덧붙였다. 
  
포항시는 지진으로 피해를 본 주택들을 전파(완전 파손)·반파(절반 파손)·소파(일부 파손)로 나누어 지원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흥해읍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주택 일부가 파손된 소파의 경우 포항시가 지원금을 준다는 홍보를 처음에는 하지 않아 많은 시민들이 몰라서 신고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후 사진만 제출하면 100만원씩 준다는 소문을 들은 일부 시민들이 자기 집이 아닌 다른 건물의 파손된 부위를 찍어 보내고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경우 도시가스관이 터져서 250만원을 주고 고쳤는데, 시에 신고해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내용으로 나보다 몇 주 먼저 피해 신고를 했던 옆 가게 주인은 100만원을 받았다길래 황당했다”고 덧붙였다.
 
시민들 “지열발전소가 지진의 원인이라고 믿어”
15일 포항시 북구의 한 도로에 "지열 발전이 지진의 원인이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송우영 기자

15일 포항시 북구의 한 도로에 "지열 발전이 지진의 원인이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송우영 기자

 
15일 포항시 곳곳에는 “지열 발전이 지진의 원인이다. 피해 주민 보상하라” 등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많은 시민들은 지열발전소의 물 주입이 지난해 규모 5.4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동대에 다니는 안세은씨(19·여)는 “지열발전소가 지금처럼 멈춰 있는 이상 지난해처럼 큰 규모의 지진을 다시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시민들이 믿고 있다”며 “그게 작은 여진이 많이 생겨도 사람들이 크게 불안해하지 않는 이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지진 이후 몇몇 전문가들은 포항의 지열발전소를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최근 김광희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포항지진은 지열 발전소의 물 주입이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한동대·포스텍 교수와 포항의 시민단체, 지역단체 등으로 구성된 ‘11.15 지진∙지열발전 공동연구단’도 지난 4월 만들어졌다. 이들은 정부 조사와 별도로 지진의 원인에 대한 조사를 한 후, 지열발전소가 지진의 원인으로 밝혀지면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도 검토할 계획이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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