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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중앙일보 2018.06.15 01:2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촌 ‘궁중 족발의 비극’은 제도적이라 더 비극적이다. 제도적이란 말은 한 개인의 힘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구속된 김 사장이 건물주를 향해 휘두른 망치는 우리 사회의 질기디질긴 고질병 하나를 정조준하고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상가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모순이 그것이다.
 
김 사장은 ‘20년 서촌지기’다. 분식집, 실내포장마차로 10여 년 돈을 모아 2009년 족발집을 차렸다. 권리금 3000만원, 보증금 3000만원, 월 263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사달은 2015년에 났다. 10년 새 집값·땅값이 두세 배 오른 게 화근이 됐다. 새 건물주는 보증금은 1억원으로, 월세는 1200만원, 네 배로 올렸다. 사실상 “나가 달라”는 말이다. 소송을 하며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상가 임대차 보호법은 ‘계약 갱신 청구권’을 5년만 보장한다. 7년을 장사한 김 사장은 대상이 아니다. 12차례의 강제 퇴거명령 집행 끝에 지게차가 가게 벽을 허물던 2018년 6월, 마지막 그의 선택은 망치였다.
 
김 사장의 비극은 인화성이 짙다. 어제오늘, 한두 사람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서촌 궁중 족발의 비극 뒤에는 미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역시 서촌에서 봉평막국수 가게를 하는 또 다른 김 사장이다. 그도 족발집 김 사장과 비슷한 처지다. 이 청원에는 14일 오후 현재 2400여 명이 동의했다.
 
사실 해답은 진작 나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년 전 “계약 갱신 청구권을 10년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10년이면 권리금과 시설 투자비를 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권리금 양성화다. 건물주가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배경엔 권리금이 있다. 예컨대 1억원의 권리금을 주고 들어온 세입자는 5000만원쯤 임대료를 올려 달라고 건물주가 요구해도 거절하기 어렵다. 장사를 계속해야 권리금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권리금 양성화는 금융실명제처럼 단칼에 해치우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궁극적으로는 권리금이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형태의 임대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스타벅스가 좋은 예다. 한국 스타벅스 1160개 매장은 권리금이 없다. 절반 정도는 월정액이 아니라 매출에 따라 임대료를 낸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스타벅스의 매출이 늘면 건물주가 받는 임대료도 불어난다”며 “건물주와 스타벅스가 윈윈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권리금·임대료 폭등은 건물주에게도 독이 될 수 있다. 10년 새 임대료가 10배나 오른 가로수길이나 청담동 명품 거리는 지금 어떻게 됐나. 한때 점포당 4억원가량 권리금이 붙었던 1층 점포 곳곳이 세입자를 못 구해 비어 가고 있다.
 
더 근본적인 처방도 필요하다.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원흉, 자영업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8.5%포인트 높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경쟁이 치열한 생태계가 돈이 될 리 없다. 올 1분기 자영업자 가구 소득은 월 362만원으로 3년 전보다 되레 줄었다. 자영업자 비중을 낮춰야 노동 소득 비중(노동소득분배율)도 높일 수 있다. 그러려면 퇴직 후에도 자잘한 일거리가 주어지는 사회, 유연한 노동 생태계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자영업자가 확 줄어들면 혹시 아나, 자영업자를 모시려고 건물주들이 경쟁하게 될지. ‘조물주 위의 건물주’도 사라지고 서촌 족발집의 비극도 끝날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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