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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보수지만 한국당 폭망해라…그게 민심이었다"

중앙일보 2018.06.15 01:13 종합 1면 지면보기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당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당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6·13 지방선거는 보수진영에 대한 완벽한 탄핵이었다. 자유한국당은 수도권과 PK(부산·경남)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며 ‘TK(대구·경북)당’으로 전락했다. 국회 30석의 바른미래당은 광역·기초단체장을 하나도 못 건졌고, 기초·광역의회 당선인 수는 민주평화당·정의당에도 뒤졌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물로 바친 채 자신은 무관한 듯 여전히 권력에 기생해 온 보수 정치인에게 국민이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임동욱 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는 평가가 나온다.
 
2016년 충격적인 총선 패배로 시작된 보수의 몰락은 2017년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를 거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부 붕괴를 맞았고 이번엔 최후의 일격으로 초토화 단계에 이르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은 “문재인 정부가 높은 지지율을 구가한 지난 1년간 보수는 나아지긴커녕 더 퇴행했다”는 것이었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14일 “나도 보수지만 선거 전부터 ‘이참에 한국당이 폭삭 망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주변에 천지였다”며 “홍준표 대표 체제는 보수를 대표하는 체제가 아니었고 보수의 품격을 갉아먹었다”고 말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2007년 대선 이후 친노는 스스로 폐족이라며 정치권에서 퇴장했는데 지난해 탄핵 이후 친박·친이 가리지 않고 보수 인사 중 정계은퇴를 택한 이가 있나”라며 “물러나지 않으니 유권자가 내쫓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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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패배 이후 보수 정치권은 분열과 내홍의 악순환이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사사건건 내부 갈등만 표출했다. 6·13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 공천 과정에선 자신의 최측근을 유리한 지역에 공천해 사당화 시비를 자초했다. 홍 대표를 견제해야 할 당 중진들은 눈치만 봤고 초·재선은 침묵했다. 
 
바른미래당 역시 전혀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개혁보수’란 공허한 구호만 있었다. 갈수록 유승민-안철수계가 대놓고 불협화음을 드러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6.13 지방선거 패배 책임에 대한 대표직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6.13 지방선거 패배 책임에 대한 대표직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보수층 중엔 ‘한국당=보수’라는 게 수치스럽다고 하는 이가 많다”며 “문제의식이 있나, 방향감각도 없고 어젠다도 못 내놓는다. 그러니 막말밖에 더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철학의 부재’는 보수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반공과 국가주의에만 기댄 탓에 보편적 가치를 모조리 진보에 빼앗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흔든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88만원 세대, 흙수저 등의 이슈는 전부 진보 진영에서 내놓은 화두였다. 
 
김광웅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은 “교육·문화·역사 등 사상과 담론 전쟁에서 진보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보수가 정치권력까지 내줬으니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던 것”이라고 했다.  
 
“나는 보수” 갈수록 줄어 … 진보가 독점해온 보편적 가치로 외연 넓혀가야 
 
여기에 보수의 무기였던 안보 이슈마저 남북화해 무드가 무르익으면서 평화 이슈로 넘어가자 보수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대중은 한국 사회의 불공정성과 자신을 가로막은 사회·경제적 절벽에 절망하고 있는데 보수만이 여전히 철 지난 산업화·안보·성장만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마이너리티로 전락한 보수의 현주소는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본인의 이념 성향은 어느 쪽인가”라는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보수라고 규정한 비율은 계속 줄어드는 반면 “나는 진보”라는 응답은 증가하는 경향이다. 2016년 초만 해도 보수 성향의 응답이 31%로 진보 성향보다 6%포인트가량 높았으나 올 5월 조사에선 21%로 14%포인트나 뒤지고 있다. 
 
성기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는 “2030세대에게 보수라는 용어 자체가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될 금기어처럼 치부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보수는 재기할 수 있을까. 이른 시일 안엔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치란 쉽게 창출되는 게 아니기 때문”(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란 이유다. 특히 보수 진영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창출해 유권자들의 재평가를 받으려면 인물 교체가 필수적인데 지금은 그 맹아(萌芽)조차 구하기 어렵다. 보수 특유의 웰빙형 체질도 개선해야 한다. 
 
임동욱 교수는 “진보는 70, 80년대 남산 대공분실에 끌려가며 목숨을 걸고 싸운 끝에 권력을 쟁취하지 않았나”며 “보수는 겨우 암흑기 초입에 들어섰을 뿐이다. 고난의 강을 어떻게 건널지는 보수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최민우·김준영·홍지유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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