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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하루 250명에게만 허락된 한국 1호 람사르 습지

중앙일보 2018.06.15 00:43 종합 18면 지면보기
대암산 정상부에 있는 한국 1호 람사르 습지 ‘용늪’은 하루 250명만 오를 수 있는 진귀한 생태관광지다.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장진영 기자]

대암산 정상부에 있는 한국 1호 람사르 습지 ‘용늪’은 하루 250명만 오를 수 있는 진귀한 생태관광지다.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장진영 기자]

화산 분화구인가, 아니면 운석이 충돌해 푹 꺼진 땅인가. 해발 1280m. 강원도 인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는 대암산 정상부에는 신비한 풍광이 숨어 있다. 람사르 협약 한국 1호 습지 용늪이다.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부가 엄격히 출입을 통제해 하루 250명만 방문을 허락한다. 일찌감치 탐방을 준비해 지난 8·9일 두 번에 걸쳐 용늪을 올랐다. 첫날은 두 발로, 이튿날은 자동차를 타고. 이른 더위에도 대암산 오르내리는 길은 빽빽한 숲 덕분에 선선했다. 안개 자욱한 용늪은 전설처럼 용이 승천할 듯 장엄했다.
 
 
 
족도리풀꽃 핀 대암산 들머리
 
용늪 탐방 코스는 모두 3개다. 인제 가아리 코스와 서흥리 코스, 그리고 군부대를 관통하는 양구 코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대암산(1316m)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서흥리 코스(10.4㎞)를 선택했다. 탐방 2주일 전인 5월 24일, 인제군청 홈페이지에서 신청했다. 6월 8일 9시 출발 예약자는 모두 20명. 다행이었다. 서흥리 코스는 주말에는 예약 경쟁이 치열하고, 평일에는 인원이 모자라 출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였다.
대암산 용늪을 오르는 코스는 모두 3개다. 대암산의 정취를 느끼며 산행을 즐기는 인제군 서흥리 코스가 가장 인기다. 왕복 5시간 소요된다. [장진영 기자]

대암산 용늪을 오르는 코스는 모두 3개다. 대암산의 정취를 느끼며 산행을 즐기는 인제군 서흥리 코스가 가장 인기다. 왕복 5시간 소요된다. [장진영 기자]

 
8일 아침, 내비게이션에 ‘용늪마을자연생태학교’를 입력하고 서울을 출발. 2시간 만에 심심한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같은 시간 탐방을 신청한 산행객, 마을 주민 김종율(71)씨와 함께 탐방 안내소로 이동했다. 용늪 탐방은 어느 코스를 택하든 안내자 겸 감시자 역할을 하는 마을 주민이 동행한다. 용늪은 천연기념물이자 람사르 습지, 산림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돼 있는 데다, 일부 구간은 민간인통제구역에 포함돼 있다. 하여 문화재청·환경부·산림청·국방부가 함께 용늪을 관리한다. 방문 신청부터 탐방까지 깐깐할 수밖에 없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출입허가증을 받았다. 대암산 들머리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내내 따라다녔고 제법 큰 폭포도 보였다. 낙엽송 우거진 숲길에는 햇볕이 설핏설핏 들었다. 김씨는 해설사도 아닌데 산길에서 만난 식물과 마을 역사를 쉴 새 없이 들려줬다.
 
“노루귀 빼곡한 이 자리는 이른 봄에는 천상의 화원 같습니다. 아쉽게도 그때는 탐방이 금지돼 있지요.”
 
대암산 숲길에서 본 족도리풀꽃. [최승표 기자]

대암산 숲길에서 본 족도리풀꽃. [최승표 기자]

6월 초는 화려한 꽃 잔치를 만나긴 어려운 계절이었다. 봄꽃은 대부분 지고, 여름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그래도 눈길 가는 꽃은 있었다. 바닥에 포복 자세로 엎드린 채 얼굴을 치켜든 족도리풀꽃, 이름 그대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함박꽃이 탐방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용늪까지 오르는 길은 등산을 자주 안 하는 사람도 적당히 땀 흘리며 걸을 만했다. 단 마을 주민의 “저 고개만 넘으면 돼요.” “10분 남았어요.” 같은 말은 주의해야 한다. “다 왔다”는 말을 듣고도 두 번은 더 쉬고 간식을 먹은 뒤에야 용늪 전망대가 보였다.
 
 
 
제주 오름 같은 풍광
 
용늪에 들어가기 전에는 신발을 털어야 한다. 탐방객의 신발을 통해 외지 식물이 들어올 수 있어서다. [장진영 기자]

용늪에 들어가기 전에는 신발을 털어야 한다. 탐방객의 신발을 통해 외지 식물이 들어올 수 있어서다. [장진영 기자]

용늪이 가까워져 오니 시야가 탁 트였고 바닥엔 평평한 돌이 쫙 깔려 있었다. 김씨는 “탐방로를 정비하면서 충남 보령에서 가져온 돌인데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돌 하나하나를 증기 소독했다”고 설명했다. 전망대로 들어가기 전에는 신발 터는 기계에 모래를 털었다. 탐방객 신발을 통해 외래식물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란다.
 
여기서부터는 용늪에 상주하는 김호진(51) 해설사가 안내를 맡았다. 전망대에 섰다. 푹 꺼진 산등성이에 초록 융단 깔린 습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흡사 제주 오름 같았다. 뾰족뾰족 울퉁불퉁한 산이 대부분인 강원도에 이런 풍광이 숨어 있다니, 놀라웠다.
 
김 해설사는 “빙하기 때 만들어진 분지인데 독특한 기후 때문에 이탄(泥炭) 습지가 형성됐다”며 “4500년 이상 식물이 썩지 않고 켜켜이 쌓였다”고 설명했다. 용늪 일대는 한 해 170일 이상 안개가 끼어 습도가 높고, 5개월 이상 평균 기온이 영하에 머문다.
 
큰용늪은 안쪽을 걸어볼 수 있도록 데크로드를 설치했다. [장진영 기자]

큰용늪은 안쪽을 걸어볼 수 있도록 데크로드를 설치했다. [장진영 기자]

전망대에서 보이는 건 큰용늪이다. 면적은 약 3만㎡. 인근에 작은용늪, 애기용늪도 있는데 이미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한다. 김 해설사의 설명이다. “작은용늪 쪽에 군부대가 있었는데 예전에는 습지의 가치를 전혀 몰랐죠. 오죽하면 큰용늪 한가운데 스케이트장을 만들었을 정도죠.”
 
옛사람들이 용이 승천할 것 같은 풍광이라 하여 ‘용늪’으로 부르던 이곳을 정부가 발견한 건 1966년이다. 7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람사르 협약은 97년 용늪을 한국 1호 습지로 지정했다. 이후 습지 복원 작업이 본격화했다. 환경부는 2005~2015년 큰용늪 내부 출입을 통제하다가 정책을 바꿨다. 소수의 탐방객만 입장을 허용해 생태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에서 군부대가 이전했고, 용늪 안쪽을 걷는 데크로드도 설치했다.
용늪은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벼잎처럼 생긴 뚝사초. [장진영 기자]

용늪은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벼잎처럼 생긴 뚝사초. [장진영 기자]

 
데크를 걸으며 습지를 관찰했다. 곳곳에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고, 벼잎 같은 뚝사초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김 해설사가 손가락으로 땅을 눌렀다. 스펀지처럼 탄력 있었다. “흙이 아니라 이탄입니다. 이탄층의 깊이는 최대 180㎝에 이릅니다. 저 밑바닥에 고조선 때 식물이 깔려있는 거죠.”
 
 
 
금강산이 눈앞에 아른아른
 
용늪에 서식하는 끈끈이주걱. [중앙포토]

용늪에 서식하는 끈끈이주걱. [중앙포토]

용늪에는 독특한 식생도 많다. 비로용담·개통발 같은 식물은 용늪에서만 발견되며, 기생꽃·닻꽃·제비동자꽃 같은 멸종위기 식물도 많이 산다. 개화 시기가 아니어서 이런 진귀한 꽃은 못 만났지만, TV에서만 봤던 식충식물 끈끈이주걱 군락은 봤다. 이 녀석도 한여름에 꽃을 틔운단다.
 
휴전선이 가까운 대암산에는 곳곳에 미확인 지뢰지대가 있다. 탐방로만 벗어나지 않으면 안전하다. [장진영 기자]

휴전선이 가까운 대암산에는 곳곳에 미확인 지뢰지대가 있다. 탐방로만 벗어나지 않으면 안전하다. [장진영 기자]

용늪만 둘러보고 하산하는 사람도 있지만, 탐방객 대부분은 대암산 정상까지 오른다. 관리사무소 앞에서 챙겨온 도시락을 먹고 신발 끈을 고쳐맸다. 주민 김종율씨가 다시 안내에 나섰다. 진입로는 살벌했다. 새빨간 ‘미확인 지뢰지대’ 표지판이 길 곳곳에 붙어있었다. 김씨는 미확인 지뢰도 있지만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격전지가 멀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상까지는 네 차례 설치된 밧줄을 잡고 올라야 했다. 큰 바위를 온몸으로 비비며 겨우 오르니 대암(大巖)이라는 이름이 비로소 와 닿았다. 꼭대기에서는 장쾌한 전망이 펼쳐졌다. 설악산 대청봉과 점봉산이 뚜렷했고, 양구 펀치볼 마을과 그 너머 북한 땅도 보였다. 연무가 짙어 금강산은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한국 100대 명산에 꼽히는 대암산 정상에 오르면 금강산이 보인다. 큰용늪에서 1.5㎞ 거리지만 큰 바위가 많아 온몸을 써야 한다. [장진영 기자]

한국 100대 명산에 꼽히는 대암산 정상에 오르면 금강산이 보인다. 큰용늪에서 1.5㎞ 거리지만 큰 바위가 많아 온몸을 써야 한다. [장진영 기자]

 
김씨는 “통일이 되면 금강산 가는 최단 거리 육로가 인제군에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맑은 가을날, 다시 이 산을 찾아야겠다 다짐했다. 금강산에서 대암산을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도 생각해봤다.
 
다시 용늪 쪽으로 가지 않고 서흥리 방향으로 가는 하산 코스를 택했다. 내려오는 길은 다소 지루했다. 이따금 새 우는 소리만 길게 메아리쳤다.
 
이튿날 다시 용늪을 올랐다. 이번엔 가아리 코스로 차를 몰았다. 이른 아침 안개 낀 장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 코스도 2주일 전에 예약했다. 광치터널 입구 샛길로 들어서서 용늪 안내소까지 13㎞ 길이의 임도가 이어졌다. 중간중간 포장도로도 있었지만, 사륜구동차가 아니라면 버거울 길이었다.
 
약 40분 산길을 달려 용늪 관리소에 도착했다. 날이 맑았는데 큰용늪 안에 들어서니 희뿌연 안개가 자욱했다. 바람의 향방에 따라 안개가 격정적으로 휘몰아쳤다. 용이 아니라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장면이었다. 용늪에는 산양·삵·담비·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산다는 해설사의 말이 생각났다. 한 발짝 한 발짝이 조심스러웠다. 
 
람사르 슾지 인제 용늪 지도

람사르 슾지 인제 용늪 지도

◆여행정보
용늪 탐방은 인제군청(sum.inje.go.kr)이나 양구군청(yg-eco.kr) 홈페이지에서 신청해야 한다. 인제군은 탐방 2주일 전, 양구군은 20일 전까지 신청해야 한다. 탐방 가능 기간은 5월 중순부터 10월 31일까지다. 인제 서흥리 등반 코스는 매일 9·10·11시 세 차례 출발하며, 생태 프로그램 체험비 명목으로 10만원을 내야 한다. 예약 인원에 따라 나눠 미리 입금해야 한다. 20명이 모이면 1인 5000원인 셈이다. 탐방 3일 전 ‘용늪영농조합법인’에서 안내 연락을 준다. 인제 가아리·양구 코스는 매일 한차례 탐방할 수 있다. 무료다.

 
인제=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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