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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 못 낸다고 … 말기암 환자 퇴원시켜 방치한 대학병원

중앙일보 2018.06.15 00:35 종합 14면 지면보기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 병원비를 내지 못한 말기암 환자를 퇴원시켜서 병원 1층 로비에 방치한 사실이 드러났다. 병원 측이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강제 퇴원시킨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의 A병원은 지난 4일 입원 중이던 말기 대장암 환자 B씨를 퇴원시킨 뒤 병원 1층 로비로 안내했다. 60대 남성인 B씨는 지난달 15일 길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119구급차에 실려왔다. B씨는 치료 과정에서 간 등 다른 장기로 암 세포가 퍼져있었다. 대장암 4기였다. 항암 치료를 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그런 치료는 안 했다. 위장에서 피가 나 그걸 줄이는 치료를 했다.
 
병원 측은 20일 정도 치료하다 “더 이상 할 게 없다”며 환자에게 퇴원을 요구했다. 병원비는 176만원가량 나왔다. B씨는 “돈이 없다”고 했고, 병원 연락을 받은 그의 아들·딸 등도 납부를 거부했다. B씨는 꽤 오랜 기간 거리를 떠돈 노숙자였다. 병원 측은 B씨에게 병원비를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담은 ‘미지급 확인서’에 서명하도록 한 뒤 퇴원 처리했다. 이후 B씨는 휠체어에 앉은 채 병원 로비에서 2시간가량 머물렀다. 그가 “혼자 걷기 힘들다”고 호소하자 보안요원이 사설 구급차를 호출했고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됐다. B씨는 응급실·수술실·중환자실을 오갔고, 일주일 만에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A병원 측은 강제 퇴원 의혹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처음 응급실에서 검사한 결과 위장관 출혈이 확인돼 소화기내과 병동에서 충분히 치료했고, 스스로 걷기 힘들다고 해서 재활치료까지 했다. 의료진이 더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판단해 정상적으로 퇴원한 것이고 환자도 동의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A병원의 조치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서울의 다른 대형병원 관계자는 “환자가 병원비를 내지 못하거나 가족에게 연락이 안 되면 경찰을 통해 다른 가족을 찾아야 한다. 보호자가 없으면 사회복지기관으로 연계하거나 공공병원에 보낼 수도 있다”며 “온전하지 않은 환자를 강제로 퇴원시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병원 관계자도 “A병원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터라 도의적 책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측은 “암 덩어리가 항문을 막아 변을 보지 못해 인공장루(항문) 수술을 한 뒤에 간신히 안정을 찾았다”라고 설명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으로 전원 조치하고 진료 정보를 넘겨줬다면 초기 치료가 수월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조사에 착수했다. 오성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서기관은 “관할 보건소에 사실관계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며 “만약 환자가 계속 진료해달라고 요청했는데도 돈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퇴원 조치 했다면 의료법상 진료 거부 행위로 볼 수 있다” 말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없이 진료를 거부하는 의료인·의료기관에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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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은 “노숙자 환자를 위한 전용 병원과 전용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이 둘 사이에 연계가 잘 이뤄져야 국립병원·공공병원으로 내몰리거나 노숙환자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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