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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누가 태극무공훈장의 가치를 떨어뜨리나

중앙일보 2018.06.14 02:3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재 정치부 차장

이철재 정치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의 브릿 슬래빈스키 예비역 원사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다. 그는 2000년 5월 4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총탄을 뚫고 헬기 조종사인 닐 로버츠 준위를 구출한 공로가 인정됐다.
 
명예훈장은 미군 최고의 무공훈장이다. 적과 전투 중 목숨을 아끼지 않은 용맹을 보인 군인에게만 주어진다.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의 명예훈장 수훈자 21명 가운데 9명이 사후에 받았다.
 
그런데도 슬래빈스키의 수훈에 논란이 따른다. 그가 팀 동료인 존 채프먼 하사를 버렸다는 의혹 때문이다. 슬래빈스키는 전사한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가 동료들이 떠난 뒤 홀로 싸우다 숨진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슬래빈스키 논란은 미국이 명예훈장을 얼마나 귀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엔 모두 5등급의 무공훈장이 있다. 최고는 태극무공훈장이다. 6·25전쟁 이후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한국인은 모두 104명이다. 병사 3명, 부사관 6명, 장교 86명 등 군인 95명, 군무원 2명, 기타 2명. 경찰 5명 등이다.
 
계급으로만 따지면 한국군은 전쟁터에서 장교만 열심히 싸운 것처럼 보인다. 물론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수많은 부하를 구한 강재구 소령, 베트남에서 적 벙커에 수류탄을 던진 뒤 전사한 임동춘 대위 등 훌륭한 장교가 많다.
 
하지만 기준이 불명확한 경우도 있다. 무공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의심까지 든다. 전장 근처에도 가 본 적 없는 후방 지휘관의 이름들이 수훈자 명단에서 제법 보이기 때문이다.
 
태극무공훈장의 명예를 떨어뜨린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그는 1980년 8월 23일 태극무공훈장을 달았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최고 실력자였다. 자신이 자신에게 훈장을 준 셈이다. 정부는 후에 그의 태극무공훈장을 취소했다.
 
반면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장렬히 싸우다 산화한 윤영하 소령과 박동혁 병장은 충무무공훈장에 추서됐다. 충무무공훈장은 셋째로 높다. 국방부는 “적절한 심사를 거쳐 훈장을 수여했다”고 해명했다.
 
미국도 한때 명예훈장을 남발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싸움에 불과한 1871년 신미양요 참전자 15명이 무더기로 받았다. 이후 엄격한 기준을 세워 깐깐하게 운영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다. 태극무공훈장, 이제는 제 제 가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철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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