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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 기분까지 맞춘 ‘닥터 리’와 ‘1호 통역’

중앙일보 2018.06.13 00:02 종합 21면 지면보기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통역을 하고 있는 미 국무부 소속 이연향 국장(오른쪽 둘째)과 북한 측 김주성 통역관(왼쪽 첫째). [뉴시스]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통역을 하고 있는 미 국무부 소속 이연향 국장(오른쪽 둘째)과 북한 측 김주성 통역관(왼쪽 첫째). [뉴시스]

12일 열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단독 회담·확대 회담·업무 오찬에 이어 역사적인 공동성명 서명까지 총 3시간 가까이 함께했다. 이 대부분의 시간에 두 명의 통역관이 함께해 두 정상의 소통을 도왔다.
 

미 이연향 국장, 북 김주성 통역관
회담부터 서명까지 그림자 수행
“현장에서 오간 대화 바로 잊어야”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통역을 맡은 미국 측 인사는 미국 국무부 소속 이연향(61) 통역국장이다. ‘닥터 리’로 불리는 이 국장은 지난달 워싱턴DC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자리에도 배석했다. 지난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나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가 통역을 맡았다.
 
이 국장은 전업주부에서 세계 최강 지도자의 눈과 귀가 된 인생 역정으로 유명하다. 영어 이력은 아버지 일 때문에 이란 국제중학교를 나오고 연세대 재학 중 교내영자지에서 활동한 것, 그리고 결혼 후 남편 유학을 따라 2년 정도 미국에서 산 게 전부였다. 아이 둘을 키우며 살던 1989년, 33세 나이에 친구 권유로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했다. 전문통역사의 길을 걷던 중 96년 미국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에 한영과가 만들어지자 담당자로 채용됐다. 다국적 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두고 아이 둘과 미국으로 건너갔다.
 
2015년 본지와 인터뷰할 당시 이연향 미국 국무부 통역국장. [중앙포토]

2015년 본지와 인터뷰할 당시 이연향 미국 국무부 통역국장. [중앙포토]

2005년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로 임용돼 귀국했고 짬짬이 국무부의 통역 업무를 도왔다. 2009년 국무부에 정식 채용됐다. 현재는 미 정부가 참여하는 국제 회의와 각종 회담의 통역을 전담하는 통역국의 책임자다. 아시아계로 이 자리에 오른 이는 이 국장이 처음이다.
 
이 국장은 2015년 본지와의 인터뷰 때 정상회담 통역의 에피소드를 묻자 “통역사의 기본은 보안”이라며 “현장에서 오간 대화는 현장을 벗어나면 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측 김주성 통역관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전담 통역팀인 ‘1호 통역’으로서 앞서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할 때도 통역을 맡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영철 부위원장에게 뉴욕의 마천루를 내려다보게 안내하는 장면에서 사진에 함께 찍히기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30일 저녁(현지시간) 맨해튼 고층빌딩에서 마련한 환영만찬에 앞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에게 창밖의 뉴욕 스카이라인을 소개하고 있다. 김영철 뒤에서 통역하고 있는 인물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호 통역'인 김주성 통역관. [사진 미국 국무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30일 저녁(현지시간) 맨해튼 고층빌딩에서 마련한 환영만찬에 앞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에게 창밖의 뉴욕 스카이라인을 소개하고 있다. 김영철 뒤에서 통역하고 있는 인물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호 통역'인 김주성 통역관. [사진 미국 국무부]

 
태영호 전 주영국북한대사관 공사가 최근 펴낸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선 김 위원장 통역을 전담하는 당 국제부 8과 부원으로 소개됐다.
 
김 통역관은 평양외국어대 영어학부를 졸업하고 외국어대 동시통역연구소를 거쳐 외무성 번역국 과장으로 근무하다 국제부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인 11일 김 위원장과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 간 회담에도 통역사로 활약했다.
 
이날 회담을 지켜본 블룸버그통신의 샘 김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이 국장이 두 정상 사이에서 기분을 조절하는 역할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제임스 쇼프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이 국장과 함께 일해본 적이 있다”며 “실력이 매우 뛰어나고, 한국과 미국 정부의 최고위급 회담을 주로 다룬다. 북한 사투리를 통역하기가 얼마나 어려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신뢰할 수 있고 재능이 있다”고 소개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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