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어쩌다 집사] #15. “그래도 귀엽지 않아요?”…뚱냥이 집사의 변명

중앙일보 2018.06.12 12:01
 늦었지만 나의 죄를 고백한다. 고의는 없었으나 결과를 완전히 예측하지 못한 행동도 아니었다. 사랑해서 그랬다는 변명은 진부하지만 진실이다. 지금은 깊이 뉘우치고 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잘못을 바로잡기부터가 쉽지 않다. 나는 ‘고양이 확대범’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학대’가 아니고 ‘확대’다. 처음 공원에서 데려올 때 3.8kg에 불과했던 나무의 몸무게가 지금은 6.2kg에 달한다. 최고로 쪘을 때는 6.5kg까지 갔다. 한번 찌고 나니 잘 안 빠진다. 이처럼 고양이를 너무 잘 먹여 살을 포동포동 찌우고 몸집을 확대한 집사를 우스갯소리로 ‘고양이 확대범’이라 부른다. 나는 나무 한 마리만 키우니까 전과 1범이지만, 여러 마리씩 키우는 집사 중엔 상습범도 많다. 고양이 확대란 한번 맛(?)을 보면 끊기 힘든 범죄임이 틀림없다.
 
집으로 막 데려왔을 때의 나무. 그때도 키는 지금과 비슷했지만 몸매가 늘씬했다.

집으로 막 데려왔을 때의 나무. 그때도 키는 지금과 비슷했지만 몸매가 늘씬했다.

고양이 확대는 나무와 같은 길냥이나 유기묘를 데려온 집사들이 주로 저지른다. 영양 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지 못해 마른 체형이었던 고양이일수록 확대가 쉽기 때문이다. 집사가 밥 달라고 애원하는 고양이를 떨쳐내지 못하는 맘 약한 성격이거나, 이왕 먹이는 거 최고로 영양가 높은 음식을 제공하는 타입일수록 확대는 빠르게 진행된다.
 
난 마음이 유독 약한 사람도 아니었고, 나무에게 최고로 비싼 사료를 사주지도 못했다. 그저 나무가 평소에 먹어오던 만큼의 사료와 참치캔과 ‘츄르(싫어하는 고양이를 거의 찾을 수 없는 대표 간식. 짜 먹는 형태다)’를 챙겨줬을 뿐이다. 하루 한 번은 사료 위에 고양이용 가다랑어포도 솔솔 뿌려주었다. 밖에 살 때도 캣맘들이 늘 밥그릇에 사료를 넉넉하게 채워주고 수시로 간식도 줬으니, 집사 된 도리로 그 이상은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에는 줄어든 운동량에 대한 계산이 빠져 있었다.
 
길냥이 나무는 너른 공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심심하면 나무도 탔다. 항상 가득 채워져 있는 사료 그릇에서 원하는 만큼 밥을 먹었지만, 운동량이 상당했기 때문에 살이 찌지 않았다. 집냥이 나무는 좁은 방 안을 걸어 다니고 캣타워를 오르내리는 게 고작이다. 간식의 양을 줄이거나 어떻게든 운동을 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는데, 집냥이 생활 초반엔 살이 좀 붙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두었다. 확대범으로서 가장 뼈저리게 반성하는 부분이다.
 
후덕해진 최근의 나무. 갈비뼈가 뱃살에 파묻혔다.

후덕해진 최근의 나무. 갈비뼈가 뱃살에 파묻혔다.

나 혼자만 저지른 일은 아니어서 억울한 면도 있다. 사실은 공범이 있다. 바로 가족들이다. 나는 어머니께 손주를 안겨드릴 수도 있는 나이에 고양이를 안겨드렸다. ‘고양이는 눈빛이 음산해서 싫다’던 어머니는 이제 ‘세상에 고양이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운 존재는 없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으레 할머니가 손주에게 그러하듯 나무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나무를 보러올 때면, 내가 ‘사료는 정해진 시간에만 줘야 한다’ ‘간식을 추가로 줘서는 안 된다’고 아무리 당부를 해도 ‘저렇게 우는데 어떻게 그냥 두냐’며 황태 채를 물에 불려 주곤 했다.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동생이 집에 오면 나무는 하악질로 첫인사를 한다. 이제 친해질 때도 됐는데 좀처럼 형으로 인정할 마음이 없나 보다. 나무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동생은 간식을 이용한다. 지난 4월엔 내가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나무가 살이 엄청나게 쪄있었는데, 나무를 돌봐줬던 동생이 양심 고백을 했다. “그때 사실 간식을 좀 많이 줬어.” 단기간 고양이 확대에 있어서는 동생이 나보다 더 프로다.
 
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면 확대범에게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체중 증가는 중성화 수술의 가장 일반적인 부작용이다.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를 잃어버린 고양이는 식욕을 해소하며 모든 스트레스를 푼다. 나무도 예전에는 그릇에 사료를 남겨뒀다가 나중에 먹기도 했는데, 요즘은 사료가 주어지자마자 설거지하듯 싹싹 비운다. 제 사료를 다 먹고 매번 집사의 밥까지 탐낸다. 불과 5분 전에 사료를 먹고도 5시간 전에 먹은 것처럼 울 때도 있다.
 
물론 모든 고양이가 사료 봉지 모델처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무는 원래 조금 마른 편이었으니, 몸무게 숫자가 늘어난 게 꼭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갈비뼈가 만져지지 않으니 살을 좀 빼야겠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뚱냥이(뚱뚱한 고양이) 인증’까지 듣고 나서는 더 이상 나의 혐의를 부정할 수 없었다.
 
고양이 확대범은 대략 다음과 같은 벌을 받는다. 다이어트 때문에 늘 고양이에게 만족스러울 만큼 사료를 주지 못해 마음이 아프고, 간식을 주며 교감하는 즐거움도 포기해야 한다. 6kg이 넘는 고양이를 넣은 이동장을 들고 병원을 다녀올 때면 어깨가 끊어질 것 같다. 문제는 나쁜 손버릇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아서, 가끔 나도 모르게 소량의 간식을 주게 된다는 점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정당화를 한다. ‘병원에서도 천천히 빼야 된댔어. 나무는 그리 심한 비만은 아니야. 봐봐, 이렇게 귀여운데.’ 아무래도 벌 받는 기간이 빨리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