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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비핵화 수싸움, 정상 회담 뒤가 진짜다

중앙일보 2018.06.12 01:42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오늘 펼쳐질 북·미 정상회담이란 드라마가 어떻게 막을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건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때 장담했던 일괄타결식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는 사실 말이다. 그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다. 단칼에 비핵화를 이루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미 상원 비준 문제 등 곳곳이 지뢰밭
회담 결과에 너무 흔들리지 말아야

그러니 진짜는 이번 정상회담 후다.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언제, 어떻게 끝낼지를 놓고 북·미 간에 치열한 수 싸움과 지루한 합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진이 빠진 미국이 두 손 들 때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게 북한의 전략일 수 있다.
 
막연한 추측이 아니다. 지루한 협상 투쟁 끝에 원하는 바를 얻는 게 공산국가의 특기다. 베트남전을 끝낸 파리 평화협상이 딱 그랬다. 1968년 시작된 협상을 앞두고 미 대표단은 호텔을 일주일간 예약했다. 북베트남 측은 달랐다. 파리 근교의 낡은 성을 1년 빌렸다. 그러면서 “의자가 썩을 때까지 앉아 있겠노라”고 선언한다. 결국 협상은 5년 뒤인 1973년 끝났다.
 
이 협상에서 북베트남 측은 툭하면 미 제국주의의 병폐를 회담 시간 내내 늘어놓기 일쑤였다. 중요한 건 이게 북베트남만의 전매 특허가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은 한술 더 뜬다. 그동안 협상장에 나온 북한 대표들 역시 회담 내내 미국을 헐뜯은 것은 물론이고 단 한마디 없이 두 시간 넘게 앉아 있기만 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챙길 만큼 챙긴 까닭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트럼프와의 만남을 통해 정상국가의 지도자로서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얼마나 계속될진 모르지만, 상당 기간 미국의 공격 걱정 없이 발 쭉 뻗고 잘 수 있게 됐다. 중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동시에 대북제재를 늦출 계기를 마련한 것도 큰 수확이다. 이런 터라 북한이 굳이 서둘러 협상을 매듭지을 까닭이 없어진 것이다.
 
설사 이번 정상회담에서 굵직한 합의가 도출돼도 구체적 조치로 현실화되느냐는 전혀 다른 얘기다. 당장 앞길을 막는 건 미 상원에서의 비준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미 간 합의가 이뤄지면 이를 미 상원에서 비준받겠다고 공언해 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북한의 체제 보장 약속이 지켜지도록 합의 내용을 법률화하겠다는 뜻이다.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임자인 빌 클린턴 대통령이 했던 약속이 깨진 걸 본 북한으로서는 확실한 보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북·미 간 합의가 상원에서 비준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개헌을 위한 의결정족수와 같은, 쉽지 않은 수준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측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건 이 때문이다.
 
북·미 협상을 망칠 또 다른 위험 요소도 있다. 바로 중국이다. 얼마 전 시진핑 정권의 속내를 대변하는 환구시보는 “중국이 빠진 북·미 또는 남·북·미 간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없으며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의 국익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훼방꾼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렵지도 않다. 슬며시 대북제재의 뒷문을 열어 주면 그만이다. 중국 제재가 풀리면 아쉬울 게 없어진 북한이 배짱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듯 아직도 비핵화 앞길은 여기저기가 지뢰밭이다. 그러니 이번 정상회담 한방으로 모든 게 풀릴 것으로 기대하면 안 된다. 극락에 이르는 저승의 열두 대문 중 하나쯤 통과한 셈이랄까. 회담 결과에 흔들리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갈 굳센 심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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