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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전용기 타고 세상에 나온 김정은

중앙일보 2018.06.11 01:39 종합 1면 지면보기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주석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주석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은둔의 지도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침내 서방 외교무대에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12일)을 위해 10일 오후 2시36분(현지시간)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6시간가량 앞선 시점이었다. 비비안 빌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의 영접을 받은 김 위원장은 사각테 안경에 군청색 인민복 차림이었다. 북한에서 인민복은 가장 격식을 갖춘 자리에서 입는 정복이다.
 

북·미 정상 어제 싱가포르 도착
김정은 “세계가 보는 역사적 회담”
트럼프 “베리굿” 한 마디만 남겨

두 정상 570m 거리 호텔에 묵어
로이터 “김, 회담 5시간 뒤 귀국길”

김 위원장의 이번 싱가포르행은 그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밟지 않은 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권 이후 열차만을 이용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했다. 김일성 주석은 1965년 인도네시아 방문, 86년 소련 방문 때 등을 제외하곤 모두 열차를 탔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첫 일정으로 이날 저녁 리셴룽(李顯龍) 총리를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제외하면 외국 정상과의 첫 만남이었다. 회담은 리 총리가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했다. 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전 세계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은둔의 지도자에서 적극적인 정상외교를 펼치는 지도자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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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세계가 지켜보는 역사적인 회담을 위해 싱가포르 정부가 자기 집안 일처럼 성심성의껏 편의를 봐줬다”고 감사의 뜻을 표한 뒤 “조·미 상봉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면 싱가포르 정부의 노력이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리 총리는“우리는 오랫동안 한반도의 정세 발전에 주목해왔다.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이고 조선 인민들의 재능이 발휘될 날이 오리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행은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치밀한 의전과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경비는 물론 이동 수단인 항공편의 보안 유지까지 모든 것이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 속에서 이뤄졌다.
 
모두 세 대의 비행기가 동원된 이동 수단부터 그랬다. 북한 화물기 일류신(IL)-76은 김 위원장의 도착에 앞서 전용차량인 벤츠 S클래식 600 방탄차량과 마이바흐 등을 미리 공수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전용기가 아닌 시 주석의 전용기 중 하나인 에어차이나(CA) 여객기를 이용해 방문 했다. ‘최고 존엄’의 체면보다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연막 작전’이었다.
 
전용기인 참매 1호(IL-62M)는 그보다 한 시간가량 뒤에 도착했다. CA 여객기에서 내린 김 위원장은 활주로에서 바로 전용차량을 타고 곧장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로 향했다. 지난 3월과 4월 중국과 판문점을 방문했을 때 탔던 번호판 없는 벤츠 차량이었다. 차량 앞쪽엔 북한 인공기가 내걸렸다.
 
경찰은 호텔 앞 약 100m부터 차단 장치를 설치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관광객에게까지 보안요원이 접근해 삭제를 요구하고 일일이 확인했다. 호텔 입구엔 천으로 된 가림막을 치고 검색대를 설치했으며 비표를 달지 않은 이들의 출입을 막았다. 북한 당국자들과 경호원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일부 경호원은 셔츠 두 번째 단추를 떼고 배지를 거꾸로 달아 비표로 대신 사용했다. 
 
김정은 숙소 100m 밖 일반인 접근 차단 

김 위원장의 의전을 책임지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전날부터 이 호텔에 직접 숙박하며 현장 상황을 총지휘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도 김 위원장을 수행해 싱가포르에 도착한 것이 확인됐다.  
 
호텔에 도착한 수행원 중 이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이용호 외무상 등의 모습이 목격됐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선글라스를 쓴 채 들어가는 장면도 언론에 포착됐다.
 
김 위원장의 11일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지 소식통들은 “11일엔 김 위원장이 참모들과 함께 숙소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이번 처럼 두 정상들이 회담 이틀 전에 도착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이는 비핵화를 둘러싼 양국 간 의제 조율 등에 있어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상회담 직전까지 논의를 한 뒤 결국 트럼프와 김정은 두 지도자가 담판을 지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12일 오전 회담을 마치고 이날 오후 2시에 싱가포르를 떠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럴 경우 정상회담 시작 후 불과 5시간 만에 귀국길에 오르는 셈이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날 밤 에어포스원을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이날 밤 에어포스원을 타고 싱가포르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8시22분에 파야 레바르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의 트랩을 내려오며 손을 두 차례 흔들었지만 표정은 여느 때와는 달리 굳어보였다. 50m가량 떨어져 있던 취재진이 “회담 성공할 것 같냐”고 큰소리로 질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좋다. 매우 좋다(very good)”고만 짧게 답했을 뿐 추가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마중 나온 싱가포르 정부 인사들과 악수를 하고 몇 번 손을 흔든 뒤 전용 차량에 탑승했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12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장한 각오를 보인 것인지, 아직까지 원하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 데 대한 초조함인지는 명확지 않지만 다소 긴장한 것은 틀림없다는 것이 현장의 백악관 출입기자들의 분석이다.
 
차량에 탑승한 트럼프 대통령은 삼엄한 경비 속에서 바로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로 직행했다. 김 위원장의 숙소와는 약 570m  떨어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리셴룽 총리를 만나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특별취재팀
김현기·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예영준·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정용수·이철재·전수진·유지혜·박유미·윤성민 기자, 강민석 논설위원,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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