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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과 인생은 닮은 꼴, 끝내기 과욕 부리면 대마 잡힌다

중앙일보 2018.06.10 07:02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4)
인생에는 발달단계가 있다. 보통 아동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 등으로 구분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더 많은 단계로 나누기도 한다. 에릭슨이라는 미국의 학자는 심리·사회적 발달에 따라 인간의 삶을 8단계로 구분했다.
 
에릭슨은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은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며 자신의 생애가 가치 있는 삶이었는지를 음미해 본다고 한다. 한창 시절에 활동을 왕성하게 한 사람은 마지막 단계에서 생에 대한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별로 이룬 것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헛살았구나” 하며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의 시계를 되돌릴 수는 없으니 절망감에 빠진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라. 아직 기회는 있다. 저승사자가 데리러 와도 아직 할 일이 있어 못 간다는 이애란의 ‘백 세 인생’ 가사처럼 시니어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인생의 단계를 좀 더 쉽게 구분하는 방식이 있다. 바둑처럼 3단계로 나누는 방식이다. 바둑에서는 흔히 한판의 과정을 초반·중반·종반의 3단계로 나눈다. 초반은 포석(布石)하는 단계다. 포석이 끝나면 본격적 전투 단계인 중반으로 들어간다. 중반전이 끝나면 마무리작업인 끝내기를 한다.
 
인생살이도 바둑처럼 3단계로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초반은 직업전선에 나가려고 준비하는 시기, 중반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 종반은 노년기를 가리킨다. [일러스트=김회룡]

인생살이도 바둑처럼 3단계로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초반은 직업전선에 나가려고 준비하는 시기, 중반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 종반은 노년기를 가리킨다. [일러스트=김회룡]

 
이 세 단계는 종종 인생살이에도 비유된다. 초반은 직업전선에 나가려고 교육을 받으며 준비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중반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30대에서 노년기에 접어들기 전까지의 기간이다. 종반은 노년기를 가리킨다.
 
대략 인생의 각 단계는 30년 정도씩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초반 포석이 너무 긴 것 같다. 캥거루는 어미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활동을 시작하는데, 사람은 30년 가까이 준비를 한다.
 
그런데 바둑의 3단계 중에서 마지막의 종반 단계는 약간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바둑팬들은 초반에 구도를 짜는 포석과 중반의 본격적인 싸움이 중요하다고 본다. 반면에 종반은 밋밋하게 마무리하는 작업 정도로 치부한다.
 
그래서 수많은 바둑책 중 종반에 관한 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대학에서도 종반에 관한 과목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다. 인생에서도 종반인 노년기는 비슷한 취급을 받는 것 같다. 노년층은 조용히 지내며 마무리한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
 
종반의 기술로 바둑 세계를 제패한 이창호 9단 
소년 시절 종반의 기술로 세계를 제패했던 이창호 9단. [중앙포토]

소년 시절 종반의 기술로 세계를 제패했던 이창호 9단. [중앙포토]

 
그러나 이것은 편견이다. 종반을 올바로 처리하지 않고서는 승리의 영광을 맛보기가 힘들다. 바둑 최강자로 명성을 떨친 이창호 9단은 소년 시절 종반의 기술로 세계를 제패했다. 
 
당시 이창호는 포석과 중반전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종반은 군계일학이었고 ‘신산(神算)’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창호로 인해 종반의 기술에 관한 인식과 관심도가 달라졌다. 또한 다른 프로기사들의 끝내기 능력도 향상돼 한국이 세계 최강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은퇴 이후의 노년기에 해당하는 종반을 바둑에서는 어떻게 보낼까? 종반에는 중반에 벌어놓은 영토의 경계선을 마무리하는 일을 주로 한다. 이 작업을 ‘끝내기’라고 한다. 끝내기는 야구에서 ‘끝내기 홈런’과 같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종반이 되면 먼저 벌어놓은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는 작업을 한다. 이것을 ‘형세판단’이라고 한다. 그 후 가장 가치가 큰 곳이 어디인가를 식별하는 일을 한다. 끝내기에서도 여전히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무리작업을 하면서 안전관리도 필요하다. 갑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일이 생기면 곤란할 것이다. 또한 집 속에 빈틈이 없는가를 모니터하는 일도 한다.
 
이렇게 보면 종반의 활동이 결코 무미건조한 마무리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자산분석, 가치계산, 안전관리 등 다채롭고 고급스러운 활동을 해야 하는 단계가 바로 종반이다.
 
바둑의 노년기인 종반에 대해 알아보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의 종반도 바둑처럼 밋밋하지 않고 풍성한 요소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인생 종반, 형세판단·계산·안전 관리 잘해야  
바둑에서처럼 형세판단과 계산, 안전관리를 잘해 인생의 종반을 멋지게 장식해보자. [중앙포토]

바둑에서처럼 형세판단과 계산, 안전관리를 잘해 인생의 종반을 멋지게 장식해보자. [중앙포토]

 
먼저 자신이 그동안 쌓아놓은 자산을 정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때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나 경험 또는 콘텐츠 등 다양한 자산도 평가해야 한다. 이것을 활용해 뭔가를 이뤄보도록 하자.
 
그다음에는 가장 가치가 큰 곳이나 일을 찾도록 한다. 이때 냉정한 계산이 필요하다. 바둑에서 하수는 10집짜리를 놔두고 3집이나 5집짜리를 두는 수가 많다. 또한 과욕을 부리다가 갑자기 대마가 잡히기도 한다.
 
세 번째는 안전관리다. 시니어에 건강관리는 필수 중의 필수다. 또한 집안에 문제점이 없는가도 모니터해야 한다. 안전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일대 풍파가 일어날 수 있다.
 
종반의 기술로 세계를 제패한 이창호 9단처럼 인생의 종반을 멋지게 장식해 보면 어떨까. 바둑에서처럼 형세판단과 계산, 안전관리를 잘해 만족스러운 종반을 보내보자.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shjeong@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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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필진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 바둑에 올바른 길이 있듯이 인생에도 길이 있다. 중년과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수가 아닌 꼼수와 속임수에 유혹을 느끼기 쉽다. 인생의 축소판으로 통하는 바둑에서 삶의 길을 물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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