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환경보호하랬더니 환경파괴 앞장서는 미 환경보호청장

중앙일보 2018.06.09 04:00
‘환경보호론자 보다 환경오염 유발자와 더 끈끈한 환경보호청장’.
미국 환경보호청(EPA)을 이끌고 있는 스캇 프루이트(50)를 두고 하는 말이다.

에너지ㆍ화학업체와 유착관계 드러나
화학공장 안전관련 규제 철폐에 앞장
사적인 이익을 위해 부하 직원 동원도

 
취임 초기부터 이런 저런 별명을 많이 붙이고 다니더니 최근엔 연일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에너지ㆍ화학업체 등 환경오염 유발업체와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연이어 밝혀지고, 자신의 사익을 위해 EPA 직원들을 동원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왔기 때문이다.
 
온갖 기행으로 비난을 사고 있는 스캇 프루이트 미 환경보호청장. [UPI=연합뉴스]

온갖 기행으로 비난을 사고 있는 스캇 프루이트 미 환경보호청장. [UPI=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프루이트 청장은 지난해 취임 3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스케줄 비서에게 ‘칙필레(Chick-fil-A)’ 최고경영자(CEO)인 댄 캐시를 연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칙필레는 치킨 전문 패스트푸드 브랜드로, 가맹점의 수익률이 상당히 높은 체인이다.
 
비서가 연락을 취해 미팅 일정이 잡혔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프루이트 청장의 아내인 말린 프루이트에게 가맹점을 하나 내어달라는 청탁 자리란 것을 칙필레 측이 미리 파악하고 만남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비서를 통해 칙필레 CEO와 만남을 추진하던 프루이트 청장이 막판에 자신이 직접 칙필레 측과 접촉하면서 드러난 사실이다. 말린이 레스토랑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어 가맹점 최종 계약은 맺어지지 않았지만, 명백하게 EPA청장의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요구라고 WP는 지적했다.
 
EPA 직원을 사적인 용도로 동원한 의혹은 또 있다. 프루이트 청장이 자신의 아내 말린이 관여하는 워싱턴의 비영리단체 콘코디아를 돕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했다는 것이다. 말린은 콘코디아 행사에 컨설팅을 한 대가로 2000달러(약 210만원)을 받았다.
 
EPA를 최근 사직한 비서는 WP와의 익명 인터뷰에서 “고향인 오클라호마와 워싱턴 두 군데 집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 자신의 아내가 더 많은 일을 맡을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동원했다”고 증언했다. 칙필레ㆍ콘코디아와 접촉하면서 자신이 EPA 청장이라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에 지위를 이용한 공직자 윤리법 위반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연방정부 기록에 따르면 EPA청장의 1년 소득은 18만 9600달러. 프루이트 부부는 부동산담보대출로 85만 달러의 빚을 지고있어 매달 5500달러를 갚고 있으며, 지난해 부동산세로 1만7793달러를 납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내 말린의 소득은 ‘제로’였다. 부족한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직원들까지 동원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한 것이다.
 
취임 초기에는 워싱턴에 있는 로비스트의 콘도를 하루 50달러의 헐값에 임대해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자신의 집무실에 방음장치가 돼 있는 전화부스를 설치하는데 4만3000달러(약 4500만원)를 사용하고, 로비스트가 제공한 10만 달러로 모로코 여행을 다녀온 사실도 드러났다. 취임 첫날부터 줄곧 24시간 경호를 받는데 300만 달러 이상의 EPA 예산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그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만든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을 뒤집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청정전력계획은 전력부문에서 탄소배출 규제를 담은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에너지업체들이 반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같은 환경정책에 불만을 품고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를 선언한 상태다.
 
오클라호마 주정부의 검찰총장 출신인 프루이트 청장은 오클라호마주의 석유개발업체를 비롯한 미 중부의 에너지업체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환경보호청장 스콧 프루이트.[중앙포토]

환경보호청장 스콧 프루이트.[중앙포토]

 
최근 켄터키주립대의 농구경기 맨 앞자리에서 아들과 함께 관람하는 프루이트 청장이 목격됐는데, 이 자리의 주인은 시즌권을 구매한 조셉 크라프트 3세였다는 사실이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보도됐다. 크라프트 3세는 미 중부의 대형 석탄개발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에 100만 달러 이상을 후원하는 ‘큰손’이기도 하다.
 
프루이트 청장은 화학업체와도 유착의혹을 받고있다. 2013년 텍사스주 웨스트의 한 비료공장 폭발로 15명이 사망한 뒤에 만들어진 안전규정을 철폐하는 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프루이트 청장은 트럼프 대통령 뺨칠 정도로 주요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진행된 EPA 연례 발표회에서는 “자리가 꽉 찼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출입을 막았다. 하지만 행사장 내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있다는 사실이 행사 참석자의 휴대전화 사진을 통해 드러나 큰 비난을 받았다. 지구온난화 연구과제 연구비를 대폭 축소하고,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몰아주는 ‘기행’까지 드러나 언론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