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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왜 국민을 섣부른 실험 대상으로 삼는가

중앙선데이 2018.06.09 01:00 587호 34면 지면보기
안개가 자욱해 시계(視界)가 좋지 않으면 속도를 줄이는 게 안전운전의 기본이다. 경제 정책도 다르지 않다. 청와대는 아직 최저임금의 부작용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가격(최저임금)을 올리면 수요(일자리)가 영향 받는 게 상식이라며 속도조절론을 제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올해 고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자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KDI가 해외 자료를 부적절하게 인용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최저임금의 영향은 진짜 모른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최저임금 인상을 옹호하는 청와대의 주장이 옳다고 해도 지금의 정책이 곧바로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아직 잘 모르니 이제까지 해 온 대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한다는 주장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정책 효과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광범위하게 경제 주체에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정책이라는 무리수를 계속 두겠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옳다는 증거도 없이 정책을 덜컥 결정해 놓고 나중에 뒤늦게 ‘증거’를 애타게 찾다 보니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공감하기 힘든 대통령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KDI가 증거에 기반을 둔 정책 수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야 정책 이견을 줄일 수 있고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여 정책 추진 동력마저 사라지는 사태도 피할 수 있다.
 
다음 달 시행되는 주당 근로시간 단축도 국민 상대의 정책 실험이 될 우려가 크다. 기업들은 혼란스러워하는데 고용노동부는 아직 명확한 지침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준비가 잘 돼 있다”며 “시행해 보고 보완할 부분은 보완하겠다”고 말했다니 어이가 없다. 국민은 섣부른 정부 정책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더니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란 ‘아름다운’ 정책 탓에 땜질 대책이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재정만 축나는 일이 자꾸 반복될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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