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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 빠진 일가족 질식사…사건 단서는 카톡에 있었다

중앙일보 2018.06.07 15:18
지난 2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에서 경찰 등이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곳에 살던 70대 노부부와 20대 손자 등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전북일보]

지난 2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에서 경찰 등이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곳에 살던 70대 노부부와 20대 손자 등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전북일보]

미궁에 빠진 일가족 3명 사망 사건 
 
"아파트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문을 안 열어줘요."
지난 2월 8일 오후 6시38분 전북 전주시 우아동의 한 아파트에서 아중119안전센터에 신고가 들어왔다. 다급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집 며느리 김모(52)씨였다.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119대원 7명이 현관문을 강제로 뜯고 들어가자 집 안에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거실에는 김씨의 시아버지 배모(78)씨와 김씨의 아들 배모(24)씨, 화장실에는 김씨의 시어머니 윤모(71)씨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모두 숨진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배씨 등 3명의 사망 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질식사'였다.
 
지난 2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에서 경찰 등이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곳에 살던 70대 노부부와 20대 손자 등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전북일보]

지난 2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에서 경찰 등이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곳에 살던 70대 노부부와 20대 손자 등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전북일보]

카톡 메시지에 숨겨진 사건 단서  
 
일가족 3명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었지만, 집 안에선 유서나 타살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원인은 미궁에 빠졌다. 당시 전북경찰청 과학수사팀과 국과수·한국가스안전공사·전북도시가스가 공동으로 도시가스 보일러에서 샌 가스가 집 안으로 유입된 경위를 밝히기 위해 정밀 감식에 나섰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가스 누출 원인이 기계적 결함 때문인지, 집 구조의 문제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도대체 이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사건 발생 당일은 뇌경색으로 입원한 윤씨가 오후 2시쯤 병원에서 퇴원한 날이었다. 병원에서 아내를 보살핀 배씨도 집을 비운 지 5일 만에 귀가했다. 익산에 사는 손자 배씨는 이날 할머니 윤씨의 퇴원을 돕기 위해 전주를 찾았다. 아내·손자와 함께 집에 돌아온 배씨는 "보일러에서 가스가 새는지 작동이 안 된다"며 오후 3시50분쯤 보일러 수리 기사 C씨(39)를 불렀다. 4시10분쯤 배씨 집에 도착한 C씨는 보일러실 등을 눈으로 둘러보고 코로만 냄새를 맡아본 뒤 "이상 없다"며 돌아갔다. 점검 나온 지 20분 만이었다.  
 
하지만 보일러 기사가 돌아간 뒤 1시간 사이에 사달이 났다. 당시 상황은 손자 배씨가 어머니 김씨와 오후 5시12분부터 5시22분까지 10분간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에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 2월 70대 노부부와 20대 손자 등이 숨진 채 발견된 아파트 현관문. [사진 전북일보]

지난 2월 70대 노부부와 20대 손자 등이 숨진 채 발견된 아파트 현관문. [사진 전북일보]

"엄마가 집으로 갈까" 대답 없는 아들 
 
어머니 김씨가 "할머니 잘 계셔?"라고 묻자 배씨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문제야"라고 답했다. 김씨가 "왜?"라고 되묻자 배씨는 "(할아버지) 손발(이) 차갑고 계속 어지럽다 하시고"라고 설명했다. 김씨가 "할머니 또 쓰러지실까봐 긴장하셔서 그런 듯하다"고 하자 배씨는 "계속 누구냐고 물어봐도 대답도 못하고. 계속 고개 한쪽으로 처지고 지금 계속 깨우는데 의식도 있다 없다 그러시고"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김씨가 "따뜻한 설탕물 드렸어? 엄마가 집으로 갈까?"라고 물었지만, 배씨의 답변은 더 이상 없었다.
 
놀란 김씨가 부랴부랴 전주 아파트에 갔지만, 문이 잠긴 채 인기척도 없었다. 119의 도움으로 들어간 집 안에선 방금 전까지 메시지를 주고받은 김씨 아들과 시부모가 숨져 있었다. 이날 조부모와 함께 변을 당한 배씨는 지난해 의무소방원으로 병역을 마치고,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번 일가족 사망 사건은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한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부른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세 명의 목숨을 구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아무도 막지 못했다.
 
지난 2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에서 경찰 등이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곳에 살던 70대 노부부와 20대 손자 등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전북일보]

지난 2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아파트에서 경찰 등이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이곳에 살던 70대 노부부와 20대 손자 등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전북일보]

공동배기구가 뭔지도 모르면서 폐쇄 맡긴 아파트 운영위원장
전주지검은 7일 "주민에게 알리지 않은 채 아파트 공동배기구를 폐쇄해 이곳에 사는 노부부와 손자 등 일가족 3명을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해당 아파트 운영위원장 A씨(60)와 공사업자 B씨(57), 피해 가정의 의뢰를 받고도 가스 누출 점검을 소홀히 한 보일러 기사 C씨와 업주 D씨(40)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아파트 동 대표 겸 관리자인 A씨는 2017년 10월 해당 아파트의 공동배기구를 폐쇄하는 과정에서 배기가스가 역류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 없이 공사업자 B씨에게 공사를 맡긴 혐의다. B씨는 이런 위험성을 알고도 공동배기구를 쓰는 가구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해당 공사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1980년에 지어진 해당 아파트는 3개 동, 95세대가 산다. 주민 대부분이 65세 이상 고령이다.  
 
조부모와 함께 숨진 배모(24)씨가 사고 직전 어머니 김모(52)씨와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 [사진 전북일보]

조부모와 함께 숨진 배모(24)씨가 사고 직전 어머니 김모(52)씨와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 [사진 전북일보]

조부모와 함께 숨진 배모(24)씨가 사고 직전 어머니 김모(52)씨와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 [사진 전북일보]

조부모와 함께 숨진 배모(24)씨가 사고 직전 어머니 김모(52)씨와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 [사진 전북일보]

안전불감증이 참사 키웠다 
 
입주자 전체가 연탄보일러를 쓰던 초기엔 일종의 '굴뚝' 구실을 하는 공동배기구가 있었다. 하지만 점차 가스보일러가 보급되면서 공동배기구를 쓰던 집도 거의 사라졌다. 집집마다 별도로 창문을 뚫어 단독 배기구를 설치해서다. 사고가 난 배씨 집도 2016년 9월 가스보일러를 설치했지만, 연통을 공동배기구에 연결해 써온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검찰에서 "주민 일부가 '겨울에 공동배기구를 통해 찬바람이 들어오니 방풍 조치 좀 해달라'고 해 업자를 불러 공동배기구를 막았다"고 말했다. 김한수 전주지검 차장검사는 "공동배기구 폐쇄를 의뢰한 A씨조차 해당 시설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공사를 맡겼고, 주민들에게 공지도 안 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8일 일가족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된 아파트 현관에 붙은 가스 검침서. [사진 전북일보]

지난 2월 8일 일가족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된 아파트 현관에 붙은 가스 검침서. [사진 전북일보]

코 킁킁거린 뒤 "가스 누출 없다"고 떠난 보일러 기사  
 
사고 당일 배씨 집을 방문한 보일러 기사 C씨는 일산화탄소 검출 장비 없이 '관능 검사'로만 가스 누출 여부를 점검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능 검사란 어떤 대상의 특징과 상태 등을 시각과 후각 등 오감(五感)으로만 감지해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당시 배기구 연결 부위나 벽면 등에서 가스가 새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사고 직후 국과수 등이 측정한 결과 배씨 집 보일러와 공동배기구가 연결된 벽면 등에선 최대 263ppm의 일산화탄소가 검출됐다.  
 
더구나 C씨는 보일러 설치 자격증이 없는 '경력 10개월 차 초보 기사'였다. 가스 누출 관련 애프터서비스(AS) 출장 경험도 두 차례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업주 D씨는 제대로 된 교육은커녕 검출 장비 없이 C씨를 배씨 집에 보내 화를 키웠다.
 
이 사건을 수사한 전주지검은 전북도 도민안전실에 노후 공동주택 공동배기구 점검을 요청했다.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또 가스안전공사와 도시가스 공급업체에는 일산화탄소 측정 장비를 다량으로 구입해 보일러 설치 업체에 빌려주는 제도를 도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 보일러 업체 대부분이 영세하다 보니 일산화탄소 계측 장비를 갖추기 어렵다고 봐서다. 검찰에 따르면 일산화탄소 계측기는 50만원~수백만원에 달한다. 검찰 측은 "농업기술센터에서 비싼 농기계를 농민들에게 싼 값이나 무료로 빌려주는 방식을 차용했다"고 설명했다. 전주지검은 전국적으로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산업자원부와 국토교통부에도 공소장 등 참고 자료를 보냈다.
 
김한수 전주지검 차장검사가 7일 차장검사실에서 지난 2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일가족 사망 사건에 연루된 보일러 기사 등 4명을 기소하면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김한수 전주지검 차장검사가 7일 차장검사실에서 지난 2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진 일가족 사망 사건에 연루된 보일러 기사 등 4명을 기소하면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김한수 차장검사는 "일산화탄소는 무색·무취한데 이걸 오감으로만 검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안전 점검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고, 주무 부처는 '일산화탄소 측정 장비 구비 의무화' 등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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