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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비핵평화의 마지막 길목에서

중앙일보 2018.06.06 00:55 종합 27면 지면보기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세계와 우리가 그토록 소망하던 한반도 비핵평화가 결정적인 최후 길목에 들어서고 있다. 자유주의와 급진주의, 자유세계와 공산세계의 세계 내전의 역사가 세계 분단의 마지막 경계선인 한반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정면 대치해 온, 전자를 대표하는 미국과 후자의 최후 잔기국가인 북한 사이의 건곤일척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세계 제국의 표상 미국과 민족유일주의 국가 사이의 문명사적인 대면이다. 일단 깊은 안도와 큰 희망을 품는다.
 

한국, 북핵과 ICBM 문제에는
중재자 넘어 당사자로 참여해야
처칠과 브란트의 교훈 살펴보라
안보와 평화에는 일관성이 생명
5년 단임을 뛰어넘어 지속해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기적 대면이 문명사적 지각변동을 창출할지, 아니면 상호 국가 이익의 적절한 교환 속에 일시적 미봉으로 귀결될지는 곧 판가름날 것이다. 특별히 문제는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합의 이후다. 또는 원칙적, 일반적 합의 이후의 세부적, 구체적 이행 단계다.
 
세계는 이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제네바 기본합의, 9·19 공동성명, 10·4 정상선언의 ‘합의’ 자체보다는 ‘합의 이후’ 약속 이행이 훨씬 더 큰 문제였음을 반복 체험한 바 있다. 실패의 대가는 컸다. 한국과 세계의 안보·평화의 악화였다. 한반도 문제요 세계 문제인 북핵과 ICBM 문제에서 한국이 중재자를 넘어 반드시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참여 없는 이익이 불가능하듯 참여 없는 부담도 불가능하다.
 
첫째는 북핵의 상수화 국면 또는 상수화 전략에의 대응이다. 북핵과 ICBM이 북·미 합의를 통해 대치, 은폐 또는 퇴출 과정의 ‘상수’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남북 교류협력이 요청되는 이중 국면을 말한다. 비핵평화 국면과 민족주의 국면의 불균등 진행이다. 특히 미국이 북핵과 ICBM 제거에 합의하며, 또는 합의의 조건으로 (한·중·일의) 대북 지원을 요청할 때는 비핵평화의 교착과 국론 분열은 불문가지다. 안보와 경제, 타협과 지원 주체를 분리하는 제네바 기본합의 방식의 실패는 한 번으로 족하다.
 
박명림칼럼

박명림칼럼

둘째는 미국의 국익 우선주의에의 대응 문제다. 미국의 북핵 문제 장기간 방치와 ICBM 성공 이후 적극적 대응 사이의 간극은 정녕 예리한 판독이 필요하다.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ICBM 능력에서 북한은 러·중을 잇는 군사강국이다. 적극 대화는 그 직후부터였다. 핵·ICBM 분리와 관련해 프랑스·중국·인도·이스라엘·파키스탄의 핵에 대한 미국의 수용·묵인·방치의 속내는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게다가 지금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익 제일주의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다. 파리 기후협약,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이란 핵합의의 일방적 탈퇴·파기 사례에서 보듯 보편적 원칙과 국제적 합의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한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북핵·ICBM 문제에서 미국이 끝까지 한국과 세계의 비핵평화와 보편규범을 함께 준수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셋째는 내부 갈등과 정책단절을 넘을 지속성과 일관성이다. 이념과 정당을 넘는 비핵평화·남북관계·외교안보 정책을 말한다. 즉 연합·타협·통합이 필수다. 미증유의 국가 위기 앞에서 처칠은 놀랍게도 “위기를 맞아 국가를 위해 일하려는 가능한 모든 사람을 모아 가장 강력한 정부를 조직하는 것”, 즉 거국연립내각을 구성했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수인 극소수 전시내각에조차 반대당을 둘이나 참여시켰다. “현재로 과거를 심판하려고 한다면 미래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이때 그는 “자칭 이단 사냥꾼인 양 하는 자들”을 억제해야 했다. ‘자칭 종북 사냥꾼, 자칭 친일 사냥꾼인 양 하는 자들’을 넘어야 통합도, 지속도 가능하다. 그는 영국의 승리와 유럽 평화와 세계질서를 정초했다.
 
동방정책을 통해 동서화해·독일통일· 유럽통합의 토대를 놓은 브란트는 자신이 선택한 대연정을 ‘화해 정부’라고 부른다. 전후 과거 청산을 하지 않은 결과 그의 옆자리에는 나치 선전 담당 출신 키징거 총리와 나치 국방군 장교 출신의 재무장관이 같이 앉아 있었다. 정치에서 진영과 이념은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브란트는 ‘신성불가침한 자들과의 싸움’ 대신 ‘아니오. 공통분모의 방향 설정!’이라고 외쳤다. 특별히 외교안보 정책은 지속성을 위한 통합과 화해가 목표였다.
 
우리는 처칠과 브란트가 어떻게 나라를 구하고 평화를 이루었는지, 왜 존경을 받는지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안보와 평화는 일관성과 지속성이 생명이다. 한 진영과 한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은 단명하며 때로는 전면 부정된다. 우리의 경우 5년 단임을 넘지 못한다. 지금 우리에겐 대통합과 대평화의 연결 지혜가 절실하다. 우리의 후손들과 후손들의 후손들은 그 지혜의 터전에서 내부 타협과 내부 평화가 이끄는 핵 없는 세상, 전쟁 없는 영구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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