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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그저 지켜볼 뿐" 미세먼지, 라돈 사태 사각지대 노인들

중앙일보 2018.06.05 07:00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충청남도 천안시 대진침대 본사를 방문,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검출돼 수거된 침대 매트리스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충청남도 천안시 대진침대 본사를 방문,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검출돼 수거된 침대 매트리스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명동 YWCA 강당에서 '라돈침대 사태와 시민안전'을 주제로 긴급좌담회가 열렸다. 최근 대진침대 라돈 사태로 인해 불안한 날을 보내고 있는 70대 노인 김모씨는 이날 좌담회를 찾았다. 김씨는 "뉴스를 보고 내가 쓴 침대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온라인 카페가 있다는데 잘 몰라 전화로 알아보고 좌담회에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인터넷보다 만남이나 전화가 편하다"며 "사람들을 직접 만나니 답답함이 풀렸다"고 덧붙였다.
 
미세먼지·라돈 사태 온라인 모여 대처, 환경·보건 피해 사각지대 몰린 노인들
라돈 침대 사태나 미세먼지 문제 등 계속되는 환경 보건 이슈에 대해 최근 소비자들은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해 대응을 모색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카페 등을 개설한 이들은 시민단체와 연대해 피해를 호소하고 정부와 기업에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이 가운데 김씨와 같은 고령층들은 피해를 당해도 온라인 접근이 쉽지 않아 적극적 대처가 어려워 피해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광진구 대진침대 중곡직영점의 문이 닫혀있다. 김지아 기자

서울 광진구 대진침대 중곡직영점의 문이 닫혀있다. 김지아 기자

네이버 카페 '대진침대 라돈 사건 집단소송' 회원은 1만8000여 명, 다음 카페의 경우 1만4000명이 카페에 가입해 대책 마련을 논의하고 소송을 준비한다. 정부나 회사가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 규모를 파악하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스스로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지난 3일 서울 광진구의 대진침대 중곡직영점 인근 상인들에 따르면 논란이 된 이후 매장은 문을 닫았지만, 60대 이상 노인들의 발길은 계속됐다. 인근 편의점 직원 신모씨는 "직영점은 3주 전 문을 닫았는데 '여기 영업 안 하냐'고 묻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다"고 전했다.  
 
올해 논란이 된 미세먼지 대처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젊은 층들은 미세먼지 정도 기준이 엄격한 해외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미세먼지 농도를 수시로 체크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KF(Korea Filter) 인증 마크가 표시된 마스크를 착용한다. 직장인 성지현(34)씨는 "포털이나 기상청보다 미세먼지 기준이 엄격한 해외어플을 사용한다"며 "미세먼지 차단 효과가 높다는 KF94 인증 마스크와 미세먼지 피부 보호 화장품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학부모인 박모(38)씨는 "맘 카페나 미세먼지 대응 커뮤니티를 통해 대처법을 확인하고 KF인증 마스크를 공동구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5월 개설된 카페 '미대촉(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 회원 수는 8만4000여 명으로 가입자는 20~40대가 대부분이다.
 
미세먼지 농도가 오전 한때 '나쁨' 수준으로 예고된 지난 4월 2일 아침 서울 시내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세먼지 농도가 오전 한때 '나쁨' 수준으로 예고된 지난 4월 2일 아침 서울 시내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에 정보 접근이 어려운 노인들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지난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에서 만난 노인들은 미세먼지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차환(80)씨는 "옛날에도 하늘보면 뿌옇고 그랬다. 지금은 더 잘살게 돼 월등히 좋아졌다"며 "방송 뉴스를 보고 미세먼지 얘기는 알았지만, 마스크는 안 낀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대부분의 노인은 일반 마스크와 KF 인증 마스크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노년층 디지털정보화 수준 취약…대처 조치 필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17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ㆍ노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국민 대비 58.3%에 그쳤다. 이는 다른 디지털 취약계층인 저소득층(81.6%), 장애인(70%), 농어민(64.8%)보다도 낮은 수치로 가장 취약한 수준이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앉아있는 노인들은 미세먼지에 둔감했다. 김지아 기자

지난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 앉아있는 노인들은 미세먼지에 둔감했다. 김지아 기자

전문가들은 미세먼지나 라돈 침대 사태 등 계속되는 환경 보건 문제에 정보 접근이 어려운 노인들은 피해 사각지대에 놓여 문제 해결과정에서도 배제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가습기살균제 사태 당시 인터넷 카페 활동이 어려운 분들이 센터로 직접 피해신고를 접수했다"면서 "홈페이지 접속 자체가 어려워 피해신고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세먼지나 환경 문제 이슈에 대한 유인물을 소개하고 환경보건문제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대처할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인들과 젊은 세대간 정보격차(Digital Divide)는 정보화 사회 초장기부터 문제가 됐지만 ICT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정보격차는 줄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노인을 위한 정보기기 지원, 교육 프로그램이 있지만 일부 사람들만 사용하는 게 문제"라며 "지자체가 라돈침대 등과 관련해 노인들의 민원을 처리할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국·김지아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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